범본 금강경

제12 尊重正敎分

동산/혜산방 2011. 10. 28. 13:16

本文(12 尊重正敎分)

61) 또한 수부티야, 어느 곳에서든 이 법문 가운데 예를 들어 네 구절로 이루어진 게송 한편만이라도 받들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드러낸다고 하자. 그때 그 땅 그 지역은 천신들과 인간과 아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있어 탑묘와 같은 곳이 될 것이다.

하물며 이 법문의 전모를 완전히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드러낸다면 수부티야, 그러한 사람들은 가장 경이로운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수부티야, 그 땅 그 지역에는 스승이 계시는 것이며 혹은 이런 저런 슬기롭고 존중할만한 자가 있는 것이다.”62)

61) [12장 존중정교분]

62) 경전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12 尊重正敎分에서 알아야 할 것은 탑묘와 같은 곳에 대한 느낌가장 경이로운 것에 대하여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경전을 읽을 때는 그 느낌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전은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며 2500년 전의 그 상황을 느껴야 理解가 빠르기 때문이다.

 

먼저 탑묘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당시 印度人들이 느끼는 感情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당시 印度人들이 느끼는 탑묘라는 곳은 가장 尊重되어야 하고 恭敬되어야 하며 가장 神聖한 또 이를 위해서는 戰爭도 불사하는 그런 장소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사당이라든가 탑이라든가 묘라고 하면 어쩐지 어둡고 음울하고 두려운 곳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도문화권에서의 Caitya(탑묘)라고 하면 밝고 생기 넘치며 존경하며 추앙하는 그러한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印度人의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건 자료를 참고하여 숙지할 필요가 있다.

 

 

Caitya. 祠堂. 塔廟

이는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 부처님의 사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8개국의 왕자들이 군대를 동원하고 와서 전쟁도 불사할 정도의 분위기에서 이를 중재하고자 나선 도나 바라문의 중재로 시작된다.

 

여러분들! 모두 和合하여 합치된 結論을 냅시다. 부처님의 사리를 여덟 부분으로 나눕시다. 부처님께 귀의한 大衆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대륙 모든 곳에 부처님을 공경하는 탑을 세우게 합시다.”

다투던 왕자들은 동의했다. 그들은 말했다. “바라문 선생님.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직접 부처님의 사리를 여덟 부분으로 나누십시오.”

 

좋소. 여러분들.” 하면서 도나 바라문은 응답한 뒤 사리가 담겨있는 황금 함을 열었다. 황금 함안에 움직임 없이 누워있는 황금 빛깔의 사리를 보면서 모든 왕자들은 슬피 울었다.

! 모든 것을 아는 부처님이시여. 과거에 저희는 황금 빛 안색을 지니셨고 위대한 사람의 서른두 가지 특징을 갖추셨고 여든 가지 작은 특징으로 아름답게 꾸미셨고 여섯 가지 광채를 방광하는 부처님의 화려한 용모를 친견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부처님의 황금 빛 사리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볼 뿐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불행이 도 어디 있겠습니까!”

 

도나 바라문은 슬픔에 빠진 왕자들이 자신을 주목하지 않고 있음을 알고는 부처님의 오른 쪽 송곳니를 슬쩍 취하여 머리 장식 속에 숨겼다. 그들이 평상심으로 돌아오자 그는 사리를 정확히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바구니에 담아 나누어 주었으니 각각 2 알하카(20 알하카가 1도나임) 분량이 되었다. 원래 사리 전체의 분량은 16 알하카였던 것이다.

 

도나 바라문이 사리를 나누고 있는 동안 삭카(제석천)가 지켜보고 있었다. “人間天神의 마음에서 모든 疑心을 제거하는 四諦法을 설하셨던 세상에 尊貴한 분인 부처님의 오른쪽 송곳니는 어디에 갔을까? 누가 그것을 가졌을 까?” 하고 생각한 뒤에 그는 그것을 취했다.

말하자면 도나 바라문에게는 도둑질 당한 도둑의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삭카는 그것을 황금 바구니에 공손히 담아서 삼십삼천으로 가지고 왔고 출라마니(Culamani)사당에 안치했다.

 

여덟 청구권 자들에게 사리를 분배하고 난 뒤 도나 바라문은 머리 장식 속에 숨겨 놓은 사리를 자기 손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만일 그가 지금 자신의 배당을 선언한다면 왕자들은 아마 스승님, 당신은 스스로 사리를 분배 하셨습니다. 왜 당신은 당신 자신의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말하고 말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리를 나누는데 측량도구로 사용된 이 바구니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나는 이것을 안치하는 탑을 세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왕자들에게 말했다.

 

! 여러분들. 나는 사리를 나누는데 정확한 알하카를 측량하려고 도구로 사용된 이 바구니를 간직하려고 합니다. 나는 이것을 공경하여 탑을 세울 것입니다.”

왕자들은 동의했고 도나 바라문은 사리를 나누기 위해 알하카를 측량했던 그 바구니를 가졌다.

 

13. 마우리야의 왕자들이 그곳에 뒤늦게 도착하다

핍팔이와나(Pippalivana)의 마우리야 족 왕자들도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도 아자타삿투 왕처럼 사리의 몫을 요구하는 사절을 쿠시나라로 보냈고 무장한 네 종류의 군대(步兵. 騎兵. 象兵. 戰車兵)들로 이루어진 완전한 전투대형을 갖추어 쿠시나라를 향해 진군했다. 그런데 그들은 늦게 그곳에 도착했다.

 

쿠시나라의 말라 족 왕자들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대들 몫으로 줄 남아있는 부처님의 사리란 없소. 모든 청구권 자들이 서로 나누어 가지고 갔소. 화장한 장소에서 숯 조각들을 가지고 가시오.” 그리하여 마우리야 족 왕자들은 화장한 장소에서 숯 조각을 가지고 가야만 했다.

 

14. 부처님을 공경하여 사리탑을 세우다

(1) 마가다의 국왕 아자타삿투가 라자가하 시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2) 웨살리에 사는 릿차위 족 왕자들도 웨살리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3) 가필라왓투의 사캬 족 왕자들도 카필라밧투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4) 알라캅파에 사는 카불리 족 왕자들도 알라캅파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5) 라마 마을 에 사는 콜리야 족 왕자들도 라마 마을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6) 벳타디파에 사는 바라문들도 벳타디파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7) 파와에 사는 말라 족 왕자들도 파와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8) 쿠시나라에 사는 말라 족 왕자들도 쿠시나라에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여 그것을 안치한 큰 탑을 세웠다. (9) 도나 바라문도 사리를 나누기 위해 알하카를 측량했던 그 바구니를 공경하여 그것을 위한 큰 탑을 지었다. (10) 핍팔이와나의 마우리야 족 왕자들도 화장한 장소에서 가져온 숯 조각을 공경하여 그것을 위한 큰 탑을 지었다.

 

이리하여 부처님 사리를 모신 탑이 여덟이고 아홉째 측량 바구니의 탑. 열 번째로 숯의 탑이 세워져 모두 십 탑(十塔)이 만들어졌다.

 

15. 아자타삿투 왕이 세운 탑

아자타삿투 왕은 라자가하 시에 부처님의 사리를 공경하여 큰 탑을 세웠다. 부처님의 사리나 측량용 바구니 및 숯 조각을 얻은 다른 왕들이나 바라문들도 사리를 공경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도시에 탑을 세웠다.

이러한 사실들은 탑을 세움으로서 사리를 공경하다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그곳에는 마가다 국왕 아자타삿투가 부처님의 사리를 공경하여 라자가하에 탑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두 번째 세 번째 결집 대회에서 합송된 내용이다.

 

16. 마하카싸파 존자와 아자타삿투 왕의 협동비밀스런 사리 안치소를 짓는데 협동하다

여러 왕과 바라문들이 자신들의 지역에서 여러 탑을 세웠고 그 속에 사리를 안치하자 마하 카싸파 존자(대가섭존자)가 신통력에 입각해 그 사리들의 미래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1) 이 사리탑들은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 의해 도굴당할 우려가 있었고 (2) 만일 비밀 안치소를 지어 놓는다면 그 사리가 아소카 왕에게 발견되어 그가 남쪽의 잠부디파 대륙 전체로 그 사리를 유포하여 천신과 인간들의 큰 이익이 되게 할 것임을 보았다.

 

그래서 마하 카싸파 존자는 아자타삿투 왕에게 가서 엄숙하게 말했다. “대왕이여, 사리의 안전을 위해 비밀 안치소를 짓는 것이 참으로 권할만합니다.” “존자시여. 좋습니다.” 라고 아자타삿투 왕은 답한 뒤에 비밀 안치소를 짓는 것은 저에게 맡기시고 다른 곳의 사리들을 어떻게 모아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대왕이여, 다른 왕들과 바라문들이 가지고 있는 사리를 모으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지 왕의 소관이 아닙니다.” “좋습니다. 존자시여. 존자들께서는 사리를 모으십시오. 저는 비밀 안치소를 짓겠습니다.”

 

이렇게 파악한 뒤 마하 카싸파 존자는 사리를 받은 자들에게로 가서 그들에게 자신이 보는 바를 설명했다. 그리하여 사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작자 자신의 집에서 개인적으로 공경할 수 있을 정도의 사리만을 남긴 채 대부분의 사리를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아진 사리는 라자가하로 가져 왔다.

 

단지 라마 마을의 사리만은 예외였다. 그곳에는 이 사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리하여 사리가 도굴범들로부터 안전하였다. 마하 카싸파 존자는 나중에 라마 마을의 사리는 스리랑카에 마하위하라(Mahavihara)승원의 마하체티야(Mahacetiya) 사당이 세워질 때 그곳에 안치될 것임을 보았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사리는 그때 한꺼번에 모을 때 제외되었고 라자가하로 가져오지 않았다.

라자가하의 북동쪽에 있는 한 지역에서 마하 카싸파 존자는 엄숙히 원했다. “이 지역의 땅은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할 것이다. 만일 바위가 있다면 지금 사라져야 할 것이고 물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아자타삿투 왕은 그 지역에서 땅을 파게 했고 그 파낸 흙으로 벽돌을 만들게 했다. 그런 뒤 그는 80명의 큰 제자들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80 탑을 건설하도록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어떤 작업인가를 질문 받을 때 아자타삿투 왕은 80명의 큰 제자를 공경하기 위해 탑을 건설하는 작업이라고 답했다. 어떤 사람도 그 아래에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될 것임을 모르게 했다.

 

1) 일련의 함들 속에 사리를 안치하다

80 완척의 깊이에 구리로 된 보랑을 놓고 그 위에 구리 방을 일반적인 탑의 규모로 만들어 넣었다. 그런 뒤에 여덟 쌍의 황금으로 된 전단향 나무함과 황금으로 된 전단향 나무 탑이 여러 크기로 준비되었는데 이것은 용기로 사용될 것이었다. 그것들이 다음의 순서로 차례차례 서로 속에 들어갔다.

 

부처님의 사리가 먼저 황금으로 된 전단향 나무함 속에 놓였다. 그런 뒤 이것이 두 번째 같은 재질의 함 속에 들어갔다. 그런 뒤 세 번째 같은 재질의 함 속에 들어갔고 이런 식으로 여덟 개의 황금으로 된 전단향 나무함 곳에 차례로 들어가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황금 전단향 나무함이 되었다.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황금 전단향 나무함을 역시 황금으로 된 전단향 나무 탑 속에 안치했다. 그리고 그 탑을 차례차례 다음 탑 속에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황금 전단향 나무 탑을 여덟 개의 상아로 된 함 속에 차례로 넣었고 그리하여 다시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상아함이 이루어졌다.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상아함을 여덟 개의 상아로 된 탑 속에 차례로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상아탑이 이루어 졌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상아탑을 여덟 개의 칠보로 꾸민 함속에 차례로 넣었고 그리하여 다시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칠보 함이 이루어졌다.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칠보 함을 여덟 개의 칠보로 꾸민 탑 속에 차례로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칠보 탑이 이루어졌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칠보 탑을 여덟 개의 은으로 된 함 속에 차례로 넣었고 그리하여 다시 여덟 개의 은으로 된 탑 속에 차례로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은 탑이 이루어 졌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은 탑을 여덟 개의 청옥으로 된 함 속에 차례로 넣었고 그리하여 다시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청옥 함이 이루어졌다.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청옥 함을 여덟 개의 청옥으로 된 탑 속에 차례로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청옥 탑이 이루어졌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청옥 탑을 여덟 개의 홍옥으로 된 함 속에 차례로 넣었고 그리하여 다시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홍옥 함이 이루어졌다.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홍옥 함을 여덟 개의 홍옥으로 된 탑 속에 차례로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홍옥 탑이 이루어졌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홍옥 탑을 여덟 개의 묘안석으로 된 함 속에 차례로 넣었고 그리하여 다시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묘안석 함이 이루어졌다.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묘안석 함을 여덟 개의 묘안석으로 된 탑 속에 차례로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묘안석 탑이 이루어졌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묘안석 탑을 여덟 개의 수정으로 된 함 속에 차례로 넣었고 그리하여 다시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수정함이 이루어졌다. 이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수정함을 여덟 개의 수정으로 된 탑 속에 차례로 넣어서 결국 여덟 겹으로 된 하나의 수정 탑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차례차례 안치하고 나니 최종적인 수정 탑은 스리랑카에 있는 투파사마 사당(Thupasama cetiya)크기가 되었다. 이 수정 탑은 칠보로 짜진 탑(사당)에 안치되었고 이것은 다시 황금 탑(사당)안에 은폐되었다. 黃金 塔은 다시 銀 塔(사당)안에 은 탑은 다시 구리 탑(사당)안에 은폐되었다.

 

이 구리 탑 안에는 모래 바닥처럼 칠보가 뿌려졌고 그 위에 땅에서 자라는 수천의 꽃들이 흩뿌려졌다. 그리고 부처님의 55십 가지 본생 담. 80명의 대 제자들. 고타마 부처님의 부왕인 숫도다나. 고타마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하 마야 데위. 고타마 부처님과 같은 시기에 태어난 유명한 일곱 명의 짝들을 새긴 작은 조각상들이 그 안에 놓였다. 물을 가득 채운 500개의 황금 항아리와 500개의 은 항아리. 500개의 황금 깃발. 하얀 천 심지를 넣고 향기 나는 기름을 채운 500개의 황금 등잔과 500개의 은 등잔 등이 그 안에 비치되었다.

 

그런 뒤 마하 카싸파 존자는 엄숙히 서원했다. “꽃들은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 향들은 향기를 유지해야 한다. 등불은 그대로 빛나고 있어야 한다.” 황금 판위에 존자는 이런 명문을 새겼다.

어느 미래에 피야다사(Piyadasa)라는 이름의 왕자가 아소카(Asoka)라는 이름의 법왕으로 등극할 것이다. 그 아소카 왕이 이 사리를 남쪽의 밤부디파 대륙 전체에 유포할 것이다.”

 

이처럼 모든 방식으로 사리를 공경한 뒤에 아자타삿투 왕은 칠보로 꾸민 안쪽 사당의 모든 입구를 봉쇄했다. 마찬 가지로 안쪽 사당을 차례로 계속해서 수용하고 있는 황금사당과 은 사당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가장 밖에 있는 구리로 만든 사당의 문을 잠갔다. 강철로 만든 자물쇠에는 미래에 궁핍한 왕이 있으면 이 홍옥을 부처님 사리를 공경하는데 비용으로 사용하시오.”라고 새긴 홍옥을 붙여놓았다.

 

천신들의 왕 삭카가 위수캄마(Visukamma)에게 말했다. “착한 위수캄마야. 아자타삿투왕은 사리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네가 安置所安全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위수캄마는 사리 안치소로 내려와 복잡한 機械裝置를 장치했다. 그 장치는 끔찍한 熱氣放出했고 무서운 形象을 드러내는 機械였는데 내부와 연결된 움직이는 부분을 지니고 있었다. 이 움직이는 부분은 풀처럼 빛나는 강철 날을 가진 것으로 회오리바람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방향에 귀신 형상의 나무 조각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조각상의 손에 그 돌아가는 기계가 들려 있었다. 돌아가는 강철 날을 지닌 이 복잡한 기계는 단 하나의 열쇠 교환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사리 안치소를 안전하게 만든 다음 위수캄마는 그의 천상의 세계로 돌아갔다.

 

아자타삿투 왕은 여기에 더하여 사리 안치소 주위로 돌로 된 승원을 세울 때와 같은 형식의 건축물을 세웠다. 그 건축물 벽 위 전체에 하나의 바위 돌 판을 덮었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었다. 그 흙은 평평하게 정돈되었고 그 위에 돌로 된 탑들이 세워졌다.

시리 안치소를 위해 이토록 정교한 조처를 취해 놓고 난 뒤 마하 카싸파 존자는 자기 수명의 끝에 이르도록 살다가 열반에 들었다. 아자타삿투 왕도 자신의 업에 따라 다음 생으로 재생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전부 죽고 사라졌다.

!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든 유위법은 저토록 무상한 본성을 지니고 저토록 불안정한 본성을 지니고 저토록 무서운 본성을 지닌다.

 

17. 아소카 왕이 널리 다른 곳에 탑을 세우다

부처님이 涅槃에 든 지 200년이 지나 피야다사(Piyadasa)라는 한 왕자가 아소카(Asoka)왕으로 등극했다. 그가 마하 카싸파 존자가 보존해 놓은 부처님의 사리를 발굴하여 남쪽 잠부디파 대륙 전체에 걸쳐 많은 탑들을 세웠다. 그 이야기가 아래에 나온다.

 

아소카 왕은 닉로다 사미의 도움과 지원을 통해 부처님의 큰 신자가 되었다. 그가 부처님과 그 가르침에 얼마나 헌신했는가 하는 것은 84천의 승원을 건설한데서 알 수 있다. 그는 승원을 건설한 뒤에 승단에 말했다.

 

존자들이시여. 저는 84천의 승원을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사리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존자들은 말했다.

대왕이여. 우리는 마하 카싸파 존자와 아자타삿투 왕이 사리 안치소를 만들었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아소카 왕은 먼저 라자가하 시에서 사리를 찾아보았다. 사리를 발견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는 아자타삿투 왕이 원래 사리탑을 세운 곳을 찾아보았으나 그곳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원래 상태로 그 탑을 복원했다.

그런 뒤 그는 비구 비구니와 남녀 재가 신자로 구성된 사부대중을 조직하여 웨살리로 갔다. 웨살리에서 릿차위 족 왕자들이 세운 원래의 탑을 허문 다음에 그 안에 사리가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탑을 복원하고는 카필라왓투에서 행운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실패하자 라마 마을로 갔다. 그러나 라마 마을의 사리는 용이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그 작업에 사용된 모든 장비가 조각조각 부서졌다.)

 

라마 마을에서 실패한 뒤에 아소카 왕은 이전에 사리가 안치되었다고 알려진 다른 지역으로 갔다. 알라캅파(Allakappa) 지방. 웻타디파(Vetthadipa) 지방. 파와(Pava). 쿠시나라(Kusinara)를 차례로 찾아갔다. 각 지역에서 탑을 허물었으나 어떤 사리도 발견 할 수 없었다.

그는 모든 탑들을 원래 상태로 복원한 뒤에 라자가하로 다시 돌아왔다. 라자가하에 돌아와서 아소카 왕은 사부대중과 함께 회의를 열어서 물었다. “아자타삿투 왕이 사리를 안치했다고 하는 장소에 대하여 들은 사람이 누구 없습니까?”

 

그때 한 장로 비구가 말했다. “대왕이여. 정확한 장소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한 장로 비구가 어떻게 나에게 말했는가를 기억합니다.

. 사미야. 수풀이 수북이 자란 어떤 어 떤 곳에 돌탑이 놓여 있다. 우리 그곳으로 가서 예를 올리자. 그곳에 꽃을 바치자.’ 그곳에 가서 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미야. 이곳을 잘 챙겨라!’

이것이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아소카 왕은 그 지역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이 아자타삿투 왕이 사리를 안치한 곳이 틀림없다.” 그는 발굴하기로 결정하고 명령했다. 식물들이 수북이 자라 있는 것을 제거하자 돌탑을 발견했다. 돌탑과 그 아래 흙을 걷어내자 바위 판이 드러났다.

벽돌과 반죽을 부수자 안치소가 보였다. 그들은 바닥 위에 칠보가 부려져 있는 것을 경이롭게 보았고 윙윙 돌아가는 강철 날이 둥근 열을 이루고 있는 귀신 형상의 조각상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소카 왕은 강신술을 통해 그 보호 장치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는 강철 날의 비밀을 풀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소카 왕은 천신들을 불렀다. “저는 84천의 승원에 부처님 사리를 안치하고 공양하려고 합니다. 천신들께서 아무쪼록 저의 이 진실한 노력을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때 천신들의 왕 삭카가 여행 중에 이 일을 보았다. 그는 위수캄마에게 말했다. “착한 위캄마야. 아소카 왕이 지금 사리 안치소 구역 안에서 사리를 얻고자 바라고 있다. 그대는 가서 그 보호 장치를 제거하도록 해라.”

위수 캄마는 머리털을 다섯 매듭으로 묶은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채 아소카 왕에게 가서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대왕이여. 내가 이 귀신기계 장치를 제거해 주겠습니다.”

 

왕은 기쁘게 말했다. “아이야. 어서 해 보아라.” 그러자 어린 소년 모습을 하고 있던 위수캄마는 그 기계 장치의 열쇠 구멍으로 굴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모든 귀신 형상에 달린 기계들이 조각났다. 이어 아소카 왕은 입구에 있는 자물쇠를 살폈는데 그 위에 새겨진 문장을 보게 되었다.

 

미래에 궁핍한 왕이 있으면 이 홍옥을 부처님사리를 공경하는데 비용으로 사용하시오.”

 

아소카 왕은 그 문장을 보고 기쁘지 않았다. “어떻게 누가 나를 궁핍한 왕이라고 부르는가?”라고 그는 말했다. 계속 애를 써서 그는 입구에 놓여있는 많은 장애물들을 제거했고 드디어 사리 안치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218년 전에 켜진 등불이 아직도 빛을 내고 있고 청련화가 여전히 새로웠으며 바닥 위에 뿌려진 꽃의 침상도 역시 그러했다.

향들도 새로이 준비한 것처럼 향기로웠다. 아소카 왕은 황금 판을 들었고 그곳에는 마하 카싸파 존자가 문장을 새겨 놓았었다. “어느 미래에 피야다사라는 이름의 왕자가 아소카라는 이름의 법왕으로 등극할 것이다. 그 아소카 왕이 이 사리를 남쪽의 잠부디파 대륙 전체에 유포할 것이다.”

 

왕은 기운이 나서 소리쳤다. “벗들이여! 마하 카사파 존자는 미리 나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의 왼 팔을 오른 손에다 부딪쳤는데 그 때문에 큰 박수 소리가 났다. 아소카 은 그 지역의 숭배자들을 위해 적정량만을 그 안치소에 남겨두고 대부분의 사리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안치소의 모든 입구를 신중하게 이전처럼 모두 닫고 건축물 전체를 원래 상태로 복원했다. 그리고 새로운 돌탑을 세웠다. 아소카 은 자신이 시주하여 건설한 84천의 승원 안에 그 사리들을 봉안했다.

 

 

위의 자료는 석가모니 부처님般涅槃 하신 以後의 이야기 이므로 탑묘(塔墓)에 대한 印度人의 생각이 부처님 當時와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 이 탑묘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불종성경에 남아 있음을 보면 부처님 당시에도 탑묘란 매우 神聖한 곳이며 매우 공경하고 尊敬할만한 곳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불종성경에서 확인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授記를 해주신 부처님이 前生24분이나 계셨으며 그분들을 모두는 아니지만 그 遺骨caitya(탑묘)에 모셨다는 내용이 있음을 볼 때 당시 인도인들의 탑묘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2 尊重正敎分의 마지막구절에서

 

<하물며 이 법문의 전모를 완전히 지니고 외우고 讀誦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드러낸다면 수부티야 그러한 사람들은 가장 경이로운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수부티야, 그 땅 그 지역에는 스승이 계시는 것이며 혹은 이런 저런 슬기롭고 尊重할 만 한 자가 있는 것이다.>

 

라고 되어 있는데 漢譯 經典은 이를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若是經典所在之處 卽爲有佛 若尊重弟子

 

라고 번역하여 경이로운 것이란 最上의 그리고 第一希有成就할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만약 그 經典이 있는 곳이라면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며 부처님의 큰 제자들이 계신 곳이다. 라고 하고 있다.

 

산스크리트原典에는 부처님이라든가 부처님의 큰 제자라든가 最上第一希有法을 이야기 한 적이 없으나 구마라집 스님은 직설법으로 희유법과 부처님과 부처님의 큰 제자를 바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으로서 이는 정확한 뜻을 直說法으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思想經典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思想이며 法身佛槪念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法身. 化身. 補身의 개념은 1000년 이후에 나타나는 思想인데 어떻게 초기대승경전인 金剛經에 이 개념이 나타나는 것인가?

 

그러나 初期佛敎에 그것도 太初經에 이 法身佛槪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法身. 化身. 補身의 개념은 後代에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初期經典에 근거를 둔 槪念임을 볼 수 있다. 따라서 法身佛에 관한 내용을 확인하여 볼 필요가 있다.

 

法身佛관념

tumhe khv attha vasettha nana-jacca nana-nama nana-gotta nana-kula agarasma anagariyam pabbajita. "ke tumhe ti?" puttha samana, "samana sakya-puttiy'amhati" patijanaatha. yassa kho pan'assa vasettha tathagate saddha nivittha mula-jata patitthita dalha asamharika samanena va brahmanena va devena va marena va brahmuna va kenaci va lokasmim, tass' etam kallam vacanaya: "bhagavato 'mhi putto oraso mukhato jato dhamma-jo dhamma-nimmito dhamma- dayado" ti. tam ktssa hetu? tathagatassa h' etam vasettha adhivacanam _ "dhamma-kayo iti pi brahna-kayo iti pi, dhamma-bhuto iti pi brahma-bhuto iti piti." [장니타야의 태초경,xxvii. agganna-suttanta]

 

와셋타야. 여기의 너희들은 (과거에) 여러 다른 出身 여러 다른 이름 여러 다른 姓氏 여러 다른 家庭을 지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出家해 있다. 그런데 너희들은 누구인가.’ 라고 질문 받으면 나는 修行者 釋迦의 아들이다.’라고 공언해야 한다.

와셋타야. 如來에 대해 믿음이 확고하고 (그 믿음이) 뿌리로부터 하여 확립되어 있고 사문. 바라문. 天神. 惡魔. 브라흐만 또는 世上의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 믿음이) 破壞되지 않도록 굳건한 가 있다.

그는 公言하기를 나는 세존의 아들이다. 품에 안겨 있고 그 입으로부터 태어났고 으로부터 낳고 으로부터 變化되었고 相續者이다.’라고 한다.

그때 그의 공언은 적절하다. 왜냐하면 와셋타야. 如來本質的으로 表現하면 如來法身이기도 하고 梵身 이기도 하며 法有이기도 하고 梵有이기도 하다.”

 

 

위의 글에서 相續者(dhamma-dayado)라는 말은 부처님과 同格으로 하는 말이며 相續者임은 부처님의 相續者임으로 부처님의 相續者는 바로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世尊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衆生kamma-dayado로서 相續者라고 하고 있다.

 

본래 世尊의 아들이라는 말은 原語samanaa sakya-puttiya로서 沙門 釋迦族의 아들에 속한다. 라는 말인데 沙門 釋迦族의 아들이란 바로 釋迦牟尼佛을 말하며 속한다는 뜻은 相續者라는 뜻에서 아들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佛子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또 위에서 믿음이 파괴되지 않고 굳건한 자라고 하면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무엇을 믿는 다는 것인가?

바로 如來의 깨달음을 무조건 믿으라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면 모든 면에서 論理的佛敎가 왜 여기 와서는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가?

바로 如來의 깨달음은 깨달아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므로 무조건 믿으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깨달아보면 알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믿고 修行해 보아라. 이런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보여줄 수가 없으니 달리 좋은 方法이 없을 것 같다.

 

위 문건에서 마지막 구절을 살펴보면 如來를 본질적으로 표현하면 如來法身이기도 하고 梵身 이기도 하며 法有이기도 하고 梵有이기도 하다.”

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法身梵身 法有梵有를 분석해서 그 뜻을 헤아려야 비로소 法身思想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dharma-kaya 法身 l

brama-kaya 梵身 l - 이 모두를 tathagata(如來)라고 한다.

-dharma-bhuta 法有 l

-brama-bhuta 梵有 l

 

먼저 bhuta四大에서의 maha bhuta 중에서 maha를 떼고 나면 남는 것이 bhuta로서 이것이 를 뜻한다. 그런데 bhutabhu(되다)에서 온 과거분사 형으로서 된 것(to becom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라는 말은 우리가 아는 경험세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나타난 형상 즉 . . 에서 을 뜻한다. 그리고 法身에서의 (kaya)本體를 뜻한다. (여기서 (kaya)는 육신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며 부처님의 육신이라도 육신을 나타내는 단어는 반드시 사리라고 한다.)

 

그러나 思想的인 술어로서 太初世界에서의 本體를 뜻한다. 이는 印度부라만 思想에서 太初부라만 分有되어 즉 세상만물을 만들어 그 속으로 들어감으로서 原理이자 質料인 것이다. 그러므로 梵身에서는 도 본체를 뜻하고 本體를 뜻하므로 = 의 뜻을 가진다.

 

그러나 法身에서는 약간 다르면서 종국에는 같은 뜻을 내포한다.

먼저 (dharma)dhr(지니다. 간직하다)에서 온 말로서 dharma지니는 것의 뜻이 되므로 法身이란 本質을 지니는 것이란 뜻이 되므로 이를 다른 말로 표시하면 法性(dharmata)을 지니는 것이란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法性이란 을 이루기 위한 原理이자 質料인 것이다.

그러므로 法身이란 法性을 지닌 것이 되며 梵身과 일맥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法有(dharama-bhuta)이 된 것. 으로 된 것 이라는 뜻이므로 = 로 놓을 수 있다. 은 무엇이 으로 된 것이므로 이 된 것이라고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梵有는 그렇게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本質을 뜻하므로 와 동일시 할 수 없으니 로 놓아야 한다. 로 되는 것. 또는 이 된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보면 法身이 된 것이므로 이 된다.

그런데 法身(dharma-kaya)에서의 ci(모으다)에서 온 말로서 모음이란 뜻이 되며 이것이 첫 번째의 뜻이며 이는 의 모음이란 뜻이니 의 집합이라는 뜻으로서 法門(dharma-paryaya)이 되는 것이다.

 

結論的으로 이라는 말을 빼고 설명하면 如來法性이요 이요 法門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法性의 관계모든 法性을 드러낸다.”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大乘經典에 오면 諸法空性을 드러내나니 그러므로 이 곧 空性이요 空性이 곧 이니라.” 라고 하는 것으로서 法性大乘經典式으로 표시하면 空性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法門의 관계 法門을 지배한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法性法門의 관계는 모든 空性을 드러내므로 法性이 드러난 것이므로 法性이 된 것이다. 그런데 法門을 드러낸다고 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法門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法性法門의 관계法性法門은 일치한다.”라고 할 수 있으므로 法性 = 法門 으로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如來를 다른 말로 하면 如來法性이요 이요 法門이나니 라. 라고 할 수 있다.

 

結論的으로 佛身

佛有 이다.

라고 놓을 수 있으므로 제12 尊重正敎分에서 이 법문의 전모를 완전히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드러낸다면 수부티야, 그러한 사람들은 가장 경이로운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수부티야, 그 땅 그 지역에는 스승()이 계시는 것이며 혹은 이런 저런 슬기롭고 존중할만한 자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法門은 바로 如來의 몸이요 如來의 피와 땀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 이 經典이야말로 바로 如來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12 尊重正敎分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은 바로 이런 내용임을 깊이 알아야 할 것이며 깊이 생각하여 이 法門 즉 이 經典의 내용이 바로 부처님이니 이를 받들어 지극히 禮敬해야할 내용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阿含經의 입장에서는 以生에서 부처님을 만난다는 것은 自身前生에 쌓은 功德이 많은 경우의 일로 생각되게 하는 입장인 반면에 大乘經典에 오면 부처님이 衆生을 지극히 가엽게 생각하여 衆生을 위해 나투어서 이루어진 일이며 衆生의 어떤 功德 정도로는 감히 부처님을 만난다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입장으로 변해 버린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만나는 일 자체가 지극히 경이롭고 공경스러우며 존경스럽고 공양해야하는 대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만난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그 衆生은 예류과 이상에 들게 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金剛經의 제12尊重正敎分에서는 바로 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존중. 존경. 예경. 공양의 정신 내지 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며 이 바로 부처이고 부처가 바로 이며 梵身 이므로 지극히 禮敬해야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法門의 전모를 완전히 외우고 독송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드러낸다면 그런 사람들은 가장 경이로운 것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이며 부처님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은 최소한 예류과 이상을 얻게 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경이로운 것을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또 여기서 法門의 전모라는 것은 이 經典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서 부처님 당시에는 經典이라는 말은 偈頌이라는 말과 같이 쓰였으며 부처님의 말씀은 法門이라고 호칭되고 있었으므로 現代의 시각으로 보면 法門經典은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法門의 전모라는 말은 이 經典 전체를 나타내는 말이 되는 것이다.

 

또 여기서 네 句節로 이루어진 偈頌이라는 말을 분석하면 1句節8音節로서 네 句節로 이루어진 偈頌이란 32음절로 된 偈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金剛經은 당시 300頌 般若經으로서 네 句節로 이루어진 偈頌 300개로 되어있는 經典을 말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270僧團이 모여서 한번 合誦하는 偈頌(1결집 시 여러 比丘들이 모여서 한번 합송하는 량. 그리고 쉬었다가 다시 다음을 합송함)이 되는데 金剛經300송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다른 經典에 비하여 매우 설득력 있고 가장 짧으면서도 완전한 내용으로 된 經典이므로 그 어떤 經典에 대해서도 경쟁력을 가지므로 후대에 널리 분포되고 애독되는 經典이 된 것이다.

 

12 尊重正敎分에서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존중과 공양에 대한 불자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라면 이러한 내용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희귀한 자료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大乘佛敎圈에서는 彌勒佛에대한 이야기뿐이지만 彌勒佛(미륵불)本生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된 經典은 아주 드물다고 할 수 있다. 彌勒佛本生經에 나오는 시리마타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前生菩薩시절 授記를 준 24분의 부처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본래 24분의 前生부처님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의 前生授記를 준 부처님만을 기록한 것으로서 인연이 닿지 않아서 授記를 주지 못한 부처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시리마타 부처님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彌勒佛本生에 대한 다음내용을 참조해 보자.

 

 

彌勒佛本生 에 관한자료

 

멧테야 보살의 발심 또는 수기와 관련된 사건을 다루는 기사는 여러 팔리 문헌들[DasabodhisattuppattikathaDasabodhisatta-uddesa]에 설해져 있는데 정전의 편집 이후에 기록되어 내려오고 있다. 가장 자세한 이야기 하나 소개한다.

 

멧테야 보살이 발심하는 기사는 사리풋타 장로가 동원 녹자모 강당에 머물 때 설해진다. 옛날 멧테야 菩薩은 상카 라는 전륜왕으로서 쿠루 국의 인다팟타 시에 살고 있었다. 물론 이 상카 전륜왕은 본문의 경전에 나오는 상카 전륜왕과 다른 인물이다.

 

本文에 나오는 상카 전륜왕은 멧테야 부처님께 출가하는 상카 이고 이 기사에 나오는 상카 전륜왕은 그 자체로 멧테야 부처님의 本生 菩薩이다. 바로 이 멧테야의 本生 菩薩로서의 상카 전륜왕의 왕도가 인다팟타 이다. 이 큰 도시는 天神들의 도시를 방불케 했다.

전륜왕은 온 대륙을 다스리고 있었고 일곱 보배가 있었다. 상카는 七寶로 만들어진 七層 宮殿에 살고 있었다. 宮殿은 상카 왕이 지닌 善業의 힘에 의해 땅에서 솟아난 것이었다. 상카 왕은 다른 사람들도 善趣에 날 수 있도록 善業을 지도했다. 그리고 치우친데 없이 정의롭게 통치했다.

 

상카가 전륜왕이 된 뒤에 시리마타 부처님이 출현했다. 菩薩이 자신의 최후의 삶으로 再生하기로 될 때마다 그보다 천 년 전에 부처님과 관련한 외침이 있게 된다. 정거천의 브라만들이 인간 세계를 통해 여행하다가 이렇게 외친다. “지금부터 천년이 지난 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신다.” 상카 왕은 이 외침을 들었음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하루는 왕가의 흰색 日傘이 드리우고 있는 자신의 황금 좌석에 앉아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에 부처님이 출현하리라는 외침이 있었다. 나는 전륜왕의 자리를 걸고 三寶에 대해 알고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찾아야겠다. 나는 수승하신 부처님을 찾아뵈어야겠다.”

 

시리마타 부처님은 그때 상카 왕의 王都에서 16요자나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승단의 여러 사미중에 한 가난한 가정 출신의 사미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노예였기에 그 사미는 어머니를 자유롭게 해드리려고 그 도시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야차라고 생각하여 그를 막대기로 괴롭혔다.

 

유감스럽게 그는 궁정으로 가서 왕 앞에 섰다.

젊은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라고 왕이 물었다.

오 대왕이시여. 저는 사미라고 불립니다.” 라고 그 사미가 답했다.

왜 너는 너 자신을 사미라고 부르는가?”

왜냐면 대왕이시여, 저는 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저는 戒律을 확고하게 지킵니다. 그렇게 저는 거룩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사미라고 불립니다.”

누가 너에게 그 이름을 주었는가?”

저의 스승입니다. 대왕이시여.”

젊은이 그대의 스승은 어떻게 불리는가?”

저의 스승께서는 比丘라고 불립니다. 대왕이시여.”

젊은이여, 누가 너의 스승에게 比丘라는 이름을 주었는가?”

오 대왕이시여, 저의 스승의 이름은 값을 매길 수없는 僧寶에 의해 베풀어진 것입니다.”

喜悅(희열)에 젖어 상카 왕은 자신의 玉座에서 일어나 그 사미의 발아래 엎드렸다. 그리고 누가 僧團에게 그 이름을 주었는가?”라고 물었다.

오 대왕이여, 거룩하고 수승한 부처님 시리마타님께서 僧團에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

수백천겁이 지나더라도 듣기 어려운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고 상카 喜悅에 까무러쳤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린 뒤 물었다.

장로시여, 거룩하고 수승한 부처님 시리마타 님께서 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 사미는 부처님이 지금 여기서 16 요자나 떨어진 동원의 녹자모 강당에 계신다고 말했다.

 

상카 왕은 전륜왕의 권력을 그 사미에게 이양했다. 상카왕은 자신의 王國을 포기했고 많은 수의 친지도 포기했다. 부처님을 뵙는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충만하여 그는 동원을 향해 북쪽으로 나아갔다.

첫째 날 상카의 발바닥은 찢어졌으니 그의 발바닥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 때문에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날 그의 발은 피가 나기 시작했으니 급기야 셋째 날은 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손과 무릎으로 나아갔다.

네 번째 날 그의 손도 피가 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슴으로 나아가겠다고 결의했다. 부처님을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인해 그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모두 극복했던 것이다.

 

시리마타 부처님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아는 눈으로 세상을 관찰했고 상카 왕의 정진력을 보았다. 이에 이렇게 생각했다. “상카 전륜왕은 분명히 씨앗이다. 부처님 싹이다. 그는 나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구나. 진실로 내가 그에게 나아가야겠다.” 부처님은 신통력을 나투어 자신의 위대한 영광을 숨긴 채 수레를 모는 童子로 변신했다. 童子는 상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상카의 精進力을 시험하기 위해 길을 막아 버렸다.

 

동자는 그곳에 있는 당신! 당신 온 곳으로 돌아가시오. 나는 수레를 몰아 이 길을 내려가야 하오.”라고 상카 왕에게 말했다. 그러나 상카 왕은 부처님을 뵙기 위해 이 길을 가야만 한다며 童子의 제안을 거부했다. 한편 삼십삼천에서 天女 수자타가 내려와 소녀의 모습을 한 채 음식을 供養했다. 童子는 그 음식을 상카에게 주었다. 또한 소년의 모습을 한 帝釋天이 내려와 이번에는 물을 바쳤다. 이러한 天上의 음식과 물 덕분에 상카 의 모든 상처는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동원에 도착했을 대 부처님은 승원에 준비된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여섯 색조의 광채를 뿜어내는 원래의 영광을 갖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상카는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을 뵙자 다시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부처님께 다가가 공손히 절했다.

어른이시여, 세상의 수호자여, 세상의 피난처여, 제가 듣고 편안해질 수 있는 가르침을 한 가지 베풀어주옵소서.”

좋다. 잘 들어라.”라고 답한 뒤 부처님은 열반의 교리를 살핀 뒤 열반과 관련된 가르침을 베풀었다. 이것은 에게 에 대한 尊敬心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가르침의 아주 일부만을 듣고 난 왕은 이렇게 요청했다.

世尊이시여, 멈추십시오. 더 이상 하지 아십시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부처님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 때는 그것에 보답할 만한 보시물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모든 가르침 중에서 世尊께서는 涅槃을 지적해 주셨으니 그것이 가장 높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몸의 모든 부분들 중에 머리를 가지고 부처님의 歸意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기 목을 자신의 손톱으로 깊이 상처를 내며 자르면서 말했다.

높으신 시리마타 부처님, 부처님께서 먼저 不死에 이르셨습니다. 저는 제 머리를 보시함으로써 뒤이어 涅槃에 이르려고 합니다. 단지 이 몇 마디를 마친 뒤에 저는 涅槃歸意합니다. 이제 이것이 一切智를 얻는데 方便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한 뒤 그는 자신의 손톱으로 자기 목을 절단해 바쳤다.

 

 

이러한 마음 자세로 부처님에 대한 禮敬하는 마음을 갖추어야하며 이제 이 바로 부처님임을 말함으로서 에 대한 禮敬하는 마음을 갖추었을 때 다음에 나오는 제13 如法受持分에서는 수보리가 이 法門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야바라밀다라고해라. 라는 부처님의 답은 後代의 산스크리트의 내용이다. 구마라집 스님이 번역한 금강경에는 金剛般若波羅蜜多經 이라고 하라고 하면서 金剛이란 말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년대로 보면 구마라집 스님이 앞선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자료로 검토해 보자.

 

 

금강과 능단과 바라밀다에 관한 문건

金剛般若波羅蜜多經

般若波羅蜜多

能斷金剛(, 般若波羅蜜經)

佛說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

 

漢譯諸本에서 經 題目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고 한 경우는 구마라집23) 보리유지(菩提流支, Bodhiruci)24) 진제(眞諦, Paramartha)25)譯本들이다.

그리고 로 한 경우는 굽다(笈多, Dharmagupta)26) 의 역본이다. 다음 로 한 경우는 현장(玄奘, Hstian-tsang)27)의 역본이다. 끝으로 로 한 경우는 의정(義淨,Yi-ching)28)의 역본이다.

여기서 현장(玄奘)이 문제 삼은 것은 chedika(Tib. gcod-pa)의 부분이 구마라집역 등에는 없다는 것이다.

 

梵本과 아울러 이 부분을 나머지 역본에서는 모두 능단(能斷)으로 옮기고 있는 것과 분명 대조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두고 현장역본 등과 같이 能斷을 옮겨 넣는 것은 原典에 충실한 직역 형이고 구마라집 등은 경명(經名)에까지 다소 지나친 달의형(達意形)을 취한 것으로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金剛經 자체 내에 經名을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29)가 정해지고 있거니와 그 부분에 대한 공관이 우리로 하여금 속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역시 梵本 서장본 漢譯 제본의 순서로 붓다의 답을 보자.

 

prajnaparamita nama-ayam subhute dharma - paryayah(수보리야, 法門의 이름은 반야바라밀이니라).30)

rab-hbyor chos-kyi-grans -hdi ses -rab-kyi -pha- rol -tu-phyin-pa shes-bya-te(수보리야, 法門智慧의 건너편에 다다름이라고 불러야 하거니와).31)

㉰ ⓐ 是經名 金剛般若波羅蜜 (羅什譯).

是法門名爲 金剛般若波羅蜜 (流支譯).

此經名爲(金剛)32) 般若波羅蜜 (眞諦譯).

智慧彼岸到名 此, 善實, 法本 (笈多譯).

今此法門. 名爲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 (玄奘譯).

是經名爲般若波羅蜜多33) (義淨譯).

 

범본과 일치하는 것은 서장 역본과 ⓒⓓ본뿐이다. 그리고 ⓐⓑⓒ본은 梵本과 다르지만 자신들의 표제와 상응하도록 모두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蜜)로 번역하여 능단(能斷)은 없되 금강(金剛)은 반드시 들어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그들의 저본(底本)의 제목이나 부분이나 실로 vajra-prajnaparamita(금강-반야바라밀다)로 모두 같은 것처럼 보인다.

 

23) 大正藏 8,pp.748~72: 서기 402(弘始4)譯出. 407년에 거듭 교정보아 완성(Conze400譯出이라고 함). (구라라집역)

24) 大正藏 8, pp.752~761: 北魏 宣武帝 永平2(서기509)역출(Conze520譯出) (보리유지역)

25) 大正藏 8, pp.762~766: 陳 天嘉3(서기562). (진제역)

26) 大正藏 8, pp.766~772: 隋開皇10(서기590) 譯出(Conze600譯出). (굽다역)

27) 大正藏 7, pp.980~985: 唐顯度 5~龍朔3(서기660~663)譯出: 이는 大般若波羅蜜多經 577권 제9으로 편입되어있다. (현장역)

28) 大正藏 8, pp.772~775:서기 703譯出. (의정역)

29) E.Conze, Text, p.37."nama-ayam Bhagavan dharma-paryayah"

30) Ibid

31) 西藏大藏經 20. pp.252-5-8~253-1-1.

32) 大正藏經底本에는 金剛이 없으나 . . 明 三本에는 金剛이 들어있다고 함(大正藏 8, p.763 ).

33) 다른 經名의 대화가 以三十二相 見如來?”의 문답 앞에 위치하는데 이은 그 뒤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각 인용문의 소재는 大正藏 8, p.750754763768大正藏 7, p.982大正藏 8, p.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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