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文(제26 法身非相分)
83)4) “수부티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상호의 구족으로써 보아야 하는가.”
수부티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세존의 말씀을 이해한 바로는 여래는 상호의 구족으로써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기특하다. 기특하다. 수부티야, 바로 네가 말한 대로이다. 여래를 상호의 구족으로써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수부티야, 만일 여래를 상호의 구족으로써 본다면 전륜왕 또한 여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를 상호의 구족으로써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5)
수부티 존자는 세존께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 말씀하신 것을 제가 이해하는 한, 여래는 상호의 구족으로써 보아서는 안 됩니다.”6)
그때 세존은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색으로써 나를 보는 자,
소리로써 나를 찾는 자,
그들은 잘못되어 버려야 할 것에 빠져 있는 자,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리.84)
붓다는 법85)으로써 보아야 하며,
또한 세간을 인도하는 분은 법을 몸으로 하는 분,
그러나 법성86)은 알려지지 않으니,
식별87)하는 것이 불가능하리.88)
83) [제26장 法身非相分]
84) 색과 소리는 상이다.
85) 법은 법성과 상으로 되어 있다.
86) 법성(dharmata)은 우리말로는 알맹이에 해당한다. 그러한 알맹이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不生不滅이다. 金剛經에 설해진 “不生의 法性”[제17 구경무아분 참조]이라는 표현에 주의하라. 不生은 그 자체로 不滅이라는 표현을 내재한다.[불교를 이해하는 요령 : 생략된 걸 잘 파악하라.] 그러면 dharmata는 무언가. “sarvadhamah dharmata-laksanah" (모든 法들은 法性의 껍데기들이다. = 모든 存在나 事件들은 하나의 法性이 드러내는 껍데기들이다.) 存在나 事件들은 껍데기이고 그 數는 지극히 다양하다.
그러나 法性은 하나로서 곧 法性은 모든 존재와 사건의 공통분모 및 공통요소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존재 및 사건들은 그 공통요소 및 분모의 껍데기들이다. 그러기에 法性은 단일자로 모든 存在나 事件에 편재하고 아울러 時間的 空間的으로 온 세상은 法性의 次元에서 한 덩어리이다.[一合相이 지니는 이미지를 떠올려 볼 것]
法性과 관련되는 표현에 세 가지가 있다. 1. 法性(dharmata) 2. 空性(sunyata) 3. 眞如(tathata)이다. 불교에는 크게 세 단계의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으니 그러므로 법성도 세 가지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세 단계는 다음과 같다.
Ⅰ. 고해 ⋯⋯ (수행) ⋯⋯ 열반 ; vidya ⋯⋯⋯⋯⋯⋯⋯⋯ dharmata
Ⅱ. 열반 ⋯⋯ (반야) ⋯⋯ 피안 ; prajnaparamita ⋯⋯⋯ sunyata
Ⅲ. 피안 ⋯⋯ (대비) ⋯⋯ 회향 ; anuttarasamyaksambodhi ⋯⋯ tathata
그랬을 때 金剛經은 이중에서도 Ⅱ. sunyata 이다. 그래서 (1) 涅槃을 부정하고 彼岸으로 가기 前까지는 般若(prajna)라고 부르고 (2) 彼岸에 도달해서 空性(sunyata)를 자각한 智慧를 無生法忍이라고 불러도 좋다.
어쨌든 이처럼 어느 단계이든 결국 우리 세상은 알맹이[dharmata]가 時間的으로 “언제나”(다시 한 번 不生의 法性이라는 대목을 음미할 것) 그리고 空間的으로 “어디나”(유일한 단일자로 표현됨을 음미할 것) 存在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알맹이를 알지 못할까? 그리하여 두 번째의 상인 보다 본질적인 상을 일으킬까?
그 답을 梵本 金剛經은 잘 설하고 있다. 金剛經은 이 sunyata 곧 dharmata는 “알려지지 않으니 식별하기 어려운 것” 곧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알맹이를 알맹이 인줄 모르는 것이라고 표현되었으니 이것이 (두 번째의) 근본적인 상이다. 想에 대해 실체 아닌 것을 실체로 보는 경우의 설명과 통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알맹이인 法性은 不見이므로 무시하고 (실체를 실체 아닌 것으로 잘 못 보고), 보이는 것은 껍데기인데 그것을 알맹이로 잘 못 보는 것(실체 아닌 것을 실체로 잘 못 보는 것)이 想이다.”
87) 法性는 공유되어 있으니 제법에서 평등해야 볼 수 있고 분별하고 식별하는 자세로는 결코 볼 수 없다.
88) 이 두 번째 게송은 범본 중에도 한 종류에서는 빠지는데 구마라즙 본에도 빠져 있다. 서장 대장경[p.255-5- 4~5]에는 두 偈頌이 다 있다.
一合相: 空間的 次元의 煩惱를 말함.
相想: 모습이라는 內容的 次元의 微細煩惱를 말함.
dharma(法): dharma란 √dhr (지니다. 간직하다.)라는 말에서 온 單語로서 法性을 지닌 것을 dharma(다르마)라고 하는 것이다.
“法과 法性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다” 왜냐하면 法은 法性을 지니고 있으니 둘도 아니고 法性은 꼭 그 法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共有하므로) 하나도 아니다.
마지막 偈頌 “識別하는 것이 不可能하리.”에서 생각할 것은 識別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는 점이다.(여기서 본다는 것은 證得한다는 것임을 상기할 것)
제17 구경무아분에서 “如來는 生하는 일이란 없는 法性의 다른 이름이다.” 라고 할 때 “生하는 일이 없다.”는 不生이란 말은 처음부터 있었다는 말이 되며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不滅일 수밖에 없다. 또 “法性은 오직 하나의 法性일 뿐이다.” 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4) [제26장 法身非相分]
漢譯 文에는 法身이라는 말이 결코 출현하지 않는데 이品의 이름에 法身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탁월하다.
(梁)나라 武帝의 아들 소명태자(昭明太子, ?~531) 시절에는 보리 류지 本(509년 역출)이 유통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류지 本의 경우 偈頌이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뒤에 “彼如來妙體 卽法身諸佛 法體不可見 疲識不能知”
라는 후반부 偈頌이 붙어 있거니와 여기서 法身이라는 말을 참고했을 개연성이 크다.
5) 如來는 眞如의 다른 이름이니[제17 구경무아분] 眞如로서 보아야 하고 法性의 다른 이름이니 法性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껍데기로 如來를 찾으려는 자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6) 須菩提의 이 대화가 한 번 더 나와 있는 것은 분명 어색하다.(그래서 위 본문에 “다시 한 번” 이라고 넣었지만 원전에는 없는 말이다.) 100년 뒤에 역출된 류지 본에는 수보리의 두 번째 언급은 나오지 않기도 한다. 참고로 法身非相分에 대한 두 번역을 소개한다.
[라집 역]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佛言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則是如來,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爾時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류지 역]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相成就得見如來不, 須菩提言, 如我解佛所說義, 不以相成就得見如來, 佛言如是如是, 須菩提, 不以相成就得見如來, 佛言須菩提, 若以相成就觀如來者, 轉輪聖王, 應是如來, 是故 非以相成就得見如來, 爾時世尊, 以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彼如來妙體, 卽法身諸佛, 法體不可見, 彼識不能知
“相好具足으로 如來를 볼 수 없다” 類의 說法은 모두 다섯 군데에서 說해지니 제5 여리실견분, 제13 여법수지분, 제20 이색이상분, 제26 법신비상분, 제27 무단무멸분 이다.
이중에서도 정확히 같은 질문에 대해 수보리의 답과 부처님의 설명이 조금씩 다르게 설해지는 것은 제5. 제20. 제26 분이다. 이 부분을 原典文과 라집역 漢譯本을 비교해 보며 혹 숨은 眞實이 없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5.<여리실견분> tat kim manyase subhute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 Subhutir aha : no hidam Bhagavan, na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 tat kasya hetoh? ya sa Bhagavan laksanasampat tathagatena bhasita saiva alaksanasampat. [evam ukte Bhagavan ayusmantam Subhutim etad avocat : yavat subhute laksanasampat tavan mrsa, yavad alaksanasampat tavan na mrseti hi laksana -alaksanatas tathagato drastavyah.(離色離相分과 비교해 달라진 곳)]
須菩提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不也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卽非身相, 佛告須菩提, 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
20-2<이색이상분> Bhagavan aha : tat kim manyase subhute,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 Subhutir aha : no hidam Bhagavan, na laks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 tat kasya hetoh? yaisa Bhagavaml laksanasampat tathagatena bhasita, alaksanasampad esa [tathagatena bhasita. tenocyate laksanasampad iti.(如理實見分에 비해 달리진 곳 - 이정도로 끝이 조금 달라져도 질문과 대화가 성립하는 것을 주의해 보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可以具足諸相見不, 不也世尊, 如來不應以具足諸相見, 何以故, 如來說諸相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
26. <법신비상분> tat kim manyase subhute,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如理實見分이나 離色離相分과 질문이 똑 같다.] Subhutir aha : no hidam Bhagavan, [yathaham Bhagavato bhasitasyartham ajanami(그런데 如理實見分이나 離色離相分에 비해 이 대목이 추가됨.)] [na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이 부분은 다시 如理實見分. 離色離相分과 다시 일치한다.)] [Bhagavan aha : sadhu sadhu subhute, evam etat subhute evam etad, yatha vadasi : na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 tat kasya hetoh? sacet punah subhute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o abhavisyad, rajapi cakravarti tathagato abhavisyat. tasman na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부처님의 새로운 설명이 베풀어짐)]
{26'법신비상분} ayusman Subhutir Bhagavantam etad avocat : [yathaham Bhagavato bhasitasyartham ajanami, na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앞서 나온 수보리의 답이 그대로 한 번 더 되풀이되는 것은 어색하다. 이 어색함은 첫째 부처님의 질문이 없는데도 마치 질문한 것처럼 수보리는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부처님의 꽤 긴 설명이 베풀어지면 그 설명에 찬탄하는 등의 동의를 표해야 옳은데, 그냥 앞서의 자기 見解를 되풀이하니 어색한 것이다.
이런 어색함을 풀려면 이 부분은 부처님의 똑같은 질문이 한 번 더 있었다면 자연스럽다. 같은 질문이라면 같은 답변을 한 번 더 해도 자연스럽다.
단지 그 뒤의 부처님의 설명이 조금 달라지면 如理實見分이나 離色離相分의 관계처럼 자연스러워 진다. 실제 이 이후의 부처님 설명은 偈頌까지 동원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은 원래의 法門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축소되어 전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추측컨대 지금 이 대목 앞에서 한 품이 끊어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되며 이왕이면 좀 떨어진 어딘가에서 다시 tat kim manyase subhute,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 라는 이 질문을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하면 그에 대해 수보리가 답을 이 대목과 같이 하고 그 다음 부처님의 偈頌으로 이어져 하나의 品을 이루는 것이 숨은 眞實일 수도 있을 것이다.)]
atha khalu Bhagavams tasyam velayam ime gathe abhasata :
ye mam rupena ca adraksut/ ye mam ghosena ca anvayuh
mithyaprahanaprasrta/ na mam draksyanti te janah
dharmato buddha drastavya/ dharmakaya hi nayakah
dharmata ca na vijneya/ na sa sakya vijanitum.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佛言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則是如來,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爾時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이제 金剛經 전체에서 法性과 관련된 주제가 나오는 품을 살펴보면 제17 究竟無我分의 제3단에서 한번 언급을 하여 주고 제19품에서 空間的인 설명을 하고 있으며 이어서 제26품. 제27품. 제28품. 제29품에서 결론을 내려 주고 있다.
다음에 다시 제31품에서 다시 한 번 더 거론한 다음 제30품에서 一合相에 대하여 空間的인 측면의 설명을 주고 제32품에서 相想에 대한 內面的인 설명을 줌으로서 法性에 대한 최대한의 설명을 하면서 金剛經을 마치고 있다.
그러므로 제26품과 제27품. 제28품. 제29품. 제31품을 法性次元에서 묶어서 설명이 되어야 함으로 金剛經의 法性과 관련한 장으로 분류하여 한 번에 설명하고자 하며 다음에는 “法性과 관련된 품”이라는 제목으로 제27. 제28. 제29 품과 제31품의 설명을 한 번에 기재해서 blog에 올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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