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깊은 이야기

八正道와 28天과 의 관계

동산/혜산방 2011. 2. 22. 11:50

 

八正道28과 의 관계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면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正 三昧)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시원스럽고 자신 있게 설명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28에 대해서는 佛敎大學 과정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부분이다.

우리가 불교에 입문하면서 처음 배우는 것은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에 이어서 팔정도(八正道)를 배운다. 그러나 한참 공부하다보면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는 자주 등장하는데 八正道는 전혀 다시나오지 않는 현상을 보게 된다.

 

처음 배울 때 여덟 가지 바른 또는 바른 라고 생각되어 대단한 것으로 생각 했는데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八正道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또 처음 배울 때 八正道를 부처님처럼 보는 것을 정견(正見). 부처님처럼 생각하는 것을 정사유(正思惟). 부처님처럼 말하는 것을 정어(正語) 등등으로 설명하는 등 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 듣지 못한 것은 왜 일까?

 

이렇게 설명되는 것이 八正道라면 틀리는 답은 아니지만 논리상 매우 부적절한 내용이 된다. 그렇다면 그 내용이 어려워서인가? 아니면 八正道라는 것은 부처님 법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대학원과정인 근본불교를 다배우고 나서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행론(修行論)을 배우면서 그것도 거의 끝날 무렵의 色界 第4에서 등장함을 보고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본래 八正道란 그 단계에 가서야 쓰이게 되며 그 전 단계에서는 그 내용이 설명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八正道37조도품의 마지막 단계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八正道色界 4선의 B구릅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게 되는데 오취온을 無常하다고 보는 단계에서야 正見이 등장하며 연이은 수행에 의해서 B구릅의 말미에 가서 의성지(意成智)가 발생하게 된다.

의성지(意成智)가 발생하면 色界 4선의 C구릅으로 넘어가서 정사유부터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의 단계로 수행이 깊어지다가 색계4선의 C구릅의 마지막 단계인 색구경천(色究竟天)에 이르렀을 때 신족통(神足通)의 발생에 의해서 無色界인 공무변처(空無邊處)로 넘어가게 되며 이 단계에 이르면 이는 예류과(預流果)에 든 이니 天上人間을 최고7회 왕생(往生)하면 해탈(解脫)이 보장되는 성인(聖人)의 단계이며 결코 삼악취(三惡趣)에는 떨어지지 않는 다고 부처님이 단언 하셨다.

따라서 八正道는 색계4선의 B구릅에서 C구릅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수행과목인 셈이다.

 

八正道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불교수행의 28이 필수인데 참고로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서술한다. 물론 불교의 28이 수행의 단계임을 이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욕계(欲界)六天:

사왕천(四王天). 도리천(忉利天). 야마천(夜摩天). 도솔천(兜率天). 화락천(化樂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색계(色界)18:

색계1[이생희락(離生喜樂)]: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대범천(大梵天)

색계2[정생희락(定生喜樂)]:소광천(小光天). 대광천(大光天).광음천(光音天)

색계3[사념낙주(捨念樂住)]:소정천(小淨天). 대정천(大淨天).변정천(徧淨天)

색계4[사념청정(捨念淸淨)]:

A구릅: 무운천(無雲天). 복생천(福生天). 광과천(廣果天).

B구릅: 무상천(無想天). 무번천(無煩天). 無熱天(무열천).

C구릅: 선현천(善顯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

무색계(無色界)4: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9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상수멸(想受滅) 완성의 단계.

 

色界第4중에서 B구릅의 첫 번째 하늘인 무상천(無想天)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이 무상천(無想天)色界5정거천[五淨居天(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선견천. 색구경천)]에서 제외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 色界 17설과 18설이 생기게 된 것이다.

 

色界 第4A구릅은 색계3선에서 본 18의 실상(實相)과 하나가 됨으로서 實相이 보이는 단계 즉 實相의 내면을 아는 단계(18가 됨으로서 實相의 내면을 아는 단계; 어떤 대상을 완전히 알려면 그 대상이 되어보는 것이 완전한 앎이라는 뜻)이다.

즉 대상으로서의 實想實想 발견의 주체가 하나 되는 것에 의해서 智慧가 발생하니 이것이 관지(觀智)이다. 관지(觀智)가 발생함에 따라 무운천. 복생천. 광과천으로 깊어지면서 18에서 四大六界로 분석되면 육법성이 살아지는데 이는 상()이 살아지는 것으로서 이것이 무상천(無想天)이다.

 

18로 봄은 덩어리로 보는 것이고 四大로 본다는 것은 이를 분석해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덩어리로 보는 것을 이라고 하는데 이를 분석해서 봄으로 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18에서는 육근 육경이라는 주관과 대상의 이분법적 관념에서 地水火風四大로 분석해봄에 따라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이 사라지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사라지면 18차원의 번민(煩悶)과 열뇌(熱惱)는 사라짐으로서 오취온(五聚蘊)이 발생하기 전까지 존재하는 단계이다. 無想天은 육법성이 사라진 즉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이 사라진 이 없는 그러한 단계이다. 따라서 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무상천(無想天)의 단계이다.

 

色界를 주관하는 것은 의()이고 無色界를 주관하는 것은 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無想天은 순간적으로 생했다가 순식간에 살아지게 되므로 해서 無想天5정거천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그 결과 色界 17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또 외도(外道)들도 無想天까지는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진행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직관(直觀)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外道들도 들어올 수 있는 하늘이니 6정거천이 되지 않고 5정거천이 되었다고도 하지만 이는 정설이 될 수는 없다.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으니 있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있기는 있으니 없다고도 할 수 없으니 5정거천에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無想天 衆生은 생각이 일어나면 죽는다고 한다.(참조: 범망경의 우발 론의 첫 번째 근거) 따라서 無想天은 과도기적이고 찰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四大六界로 분석함으로서 이 사라지는 것도 잠시이고 이는 다시 五蘊(색 수 상 행 식)으로 분석되면서 오취온으로 이 다시 나타나게 되니 無想天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四大로 분석함에 따라 육계(六界)가 나타나면서 이를 잘못 봄에 따라 五蘊이 발생하게 되는데 여기에 애착이 붙어 오취온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은 색계3선에서의 과는 좀 다른 그 경지가 더 깊어진 그런 이 된다(도 진화하는 것이다).

 

이 오취온은 사라져야하는 것인데 이때 오취온도 괴로워서 無我라는 것은 이제 자동으로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진아(眞我)는 어디에 있을까하고 삼매(三昧)에 들게 된다. 이것이 정정(正定)에 해당하게 된다. 이 오취온이 사라지려면 八正道正見이 시작되어야하니 이것이 바로 경전에 있는 오취온을 無我라고 보는 것을 正見이라고 한다.” 라고 되어있는 것이다.

 

오취온은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결국은 고()이며 무아(無我).” 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아정견(無我正見)이라는 것이며 八正道는 사제법(四諦法) 중에서 도제(道諦)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8. . . 와 구득불고(求得不苦). 애별이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와 마지막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원문에는 반드시 취요언지 오음성고(取要言之 五陰盛苦)라고 되어있다.

取要言之 五陰盛苦라는 말은 요약해서 말하자면 오취온이 라는 뜻이다. 오음(五陰)이 성()해서 라는 뜻이 아니고 오취온(五聚蘊)은 무상(無常)해서 결국은 라는 뜻이다.

 

이처럼 오취온은 無常해서 이며 따라서 無我라고 보는 것이 정견(正見)이라는 것이며 여기에서 의성신(意成身)이 만들어지면서 의성지(意成智)가 발생하며 색계4선의 C구릅으로 넘어가서 선현천. 선견천 즉

 

잘 봄이 있는(善顯天).” “잘 보인(善見天).”

라는 뜻의 하늘이름이 나오면서 계속해서 37조도품의 마직막부분인 八正道가 수행되며 점점 깊어져서 마치 색계2선에서 삼매를 거쳐서 색계3선이 되듯이 색구경천에 가서 팔정도의 마지막단계인 정정(正定)에 의해서 신족통(神足通)이 발생하게 되며 따라서 무색계(無色界)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八正道정견(正見)은 색계4선의 C구릅에 속하며 정정(正定)無色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意成智가 나오는 순간을 관찰하면 佛敎의 해탈을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로 나누는데 이는

 

正見- 견도(見道): 보는 순간 보아서 앎으로서 번뇌를 없애는 것.

正定- 수도(修道): 보는 것만으로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버릇과 관련 된 번뇌 같은 것은 계속 닦아서 없앤다.

 

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설명이지만 진제(眞諦)는 이것이 아니고 버릇이 아니라 구조적인 왜곡이 있어서 이것은 정정(正定)이 아니면 파괴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마치 지붕이 새는 것은 보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고쳐지지가 않고 가서 고치지 않으면 새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四大로 이루어진 거친 몸으로부터 즉 오취온 이라는 거친 몸으로부터 이것은 내가 아니라고 보는 순간 의성지(意成智)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오취온이 無我라는 正見이 이루어지면 이제 意成智가 발생하지만 意成智 또한 완전한 무상(無想)이 아니라 엷으면서도 심묘(深妙)이 계속해서 진행됨으로서 無色界에 가도 이 존재하는 경지인 것이다.

은 비상비비상처에서 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있는 것도 아닌 상태를 지나 상수멸(想受滅)에서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관지(觀智)발생에 의해서 無想天에 든 후의 상태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색계4B구릅의 무상천(六界. 무위법<samskita=samskara>)무번천. 무열천(이 일어남. 오취온<색 수 상 행 식>. 유위법)무아정견意成智(뜻으로 됨을 앎. 意成身<色身으로부터 뽑혀져 나옴>)여기에서 미묘한 어떤 흐름에 의해서 색계4선의 C구릅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意成智(색계4선의 C구릅)로부터 無色界로 넘어갈 때 까지 작용하는 것이 37조도품의 마지막단계인 八正道가 작용하게 됨으로서 神足通이 발생하여 無色界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八正道의 내용은 따로 떼어내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이 단계에서 오취온과 연관되어 설명되어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八正道의 순서는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정삼매)인데 正見의 내용은 오취온을 無我라고 보는 것을 正見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사유(正思惟)는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여기서 좀 깊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정사유(正思惟):

정사유(正思惟)의 원어는samyak-samkalpa 로서 samyak은 바르다는 뜻이고 samkalpa에서 sam함께라는 뜻이나 kalpa 사유(思惟)”라는 뜻보다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구조적인 뉘앙스가 더 짙은 단어이다.

본래 kalpa kappa 즉 겁파(劫波)=()이라는 단어에서 온 말로서 공간적으로 우주와 연결되는 시간단위의 이야기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mentro formation 즉 정신적인 변혁작용의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세상의 변화와 중생의 인식의 변화는 같이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다시 말하면 세상이 변했다는 것은 그렇게 인식하는 중생이 그 인식하는 순간에 변화된다는 말이 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kalpa는 무언가 변화된 어떤 틀 속에 인식의 주체를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인 인지능력에다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하도록 맞추는 것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正見한 주체를 가지고 구조적 대상에 일치시키는 것 즉 맞추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내 몸에 옷이라는 대상을 일치시키는 것) 주체가 正見을 통하여 바로 본 대상에 주체를 맞추는 것 즉 정신적 인지능력을 正見을 통하여 인식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구조에 맞추어 넣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을 배우기 전에 자비수관을 수행하면서 몸이 사라지는 단계를 경험한바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 意成智의 단계를 배우면서 또 팔정도의 정사유(正思惟)의 바른 뜻을 배우면서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경전에 意成智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갈대 껍질로부터 갈대 속을 뽑아내고 이것은 갈대 껍질이고 이것은 갈대 속이다. 갈대의 껍질과 갈대의 속은 서로 다르다. 갈대 껍질로부터 갈대 속이 뽑혀 나온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오.

또는 어떤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고는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칼집으로부터 칼이 뽑혀 나온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오. (중략)

그리하여 그는 이 몸으로부터 다른 몸을 바꾸어내게 되오. 을 지니고 뜻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가지 부분들이 모두 갖추어지고 감관(感官)이 열등하지 않는 몸을 바꾸어 내게 되는 것이오.

 

2년 전 자비수관(慈悲手觀) 수행 당시 태양수(太陽手)를 관()하면서 몸을 태워서 몸의 사라짐을 얻었는데도 意成智를 배우기 전에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10정법에 다문(多聞)하라고 한 것이며 모르는 것은 듣기 전에는 모를 뿐 저절로 알 수는 없는 것이로구나! 라고 절실하게 느꼈다.

그러나 意成智를 배우는 순간 알게 되었다. ! 나는 칼집을 태워 칼을 얻은 것 이었는데도 이것을 미처 알지 못했구나! 처음에는 이것이 칼인지도 몰랐으며 이 칼을 어떻게 갈고 닦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그 칼은 八正道에 의해서 연마되어야 함을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정어(正語): 언어적인 생활도 새로운 정신적인 환경에 맞추는 것.

정업(正業): 행동도 새로운 정신적인 환경에 맞추는 것.

정업의 원어는 karmant로서 업의 끝즉 궁극적인 을 뜻함으로 몸의 을 뜻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른 행동이라고 번역되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정업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직업을 정업이라고 한다고 설한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는 신구의(身口意) 三業처럼 정사유는 意業에 해당하고 정어는 口業에 해당하며 정업은 身業에 해당한다.

 

정명(正命): 모든 생활자체가 새로운 정신적인 환경에 맞추는 것을 뜻한다.

 

정정진(正精進): 위의 단계를 익숙해질 때 까지 계속하는 것.

 

정념. 정정(正念. 正定)은 사념처(四念處)에서 배운바와 같이 당연한 순서이다. 정념이 없이 정정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正見을 하고 正念. 正定에 의해서 다음단계로 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나 이곳에서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등의 단계를 넣은 것은 이제까지 생각하고 생활하든 모든 습관 때문에 어떤 익숙해 질 때까지의 훈습(薰習)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도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그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이 단계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오직 해탈을 향한 수행만을 하도록 한 것으로 유추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많은 경설이 이 단계에 맞추어져서 설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단계가 그 정도로 중요하고 아마도 그 당시 제자들도 이 단계에서 많은 애로를 겪은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無色界로의 넘어감은 신족통(神足通)이라는 통()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智慧가 발생해야 함으로 매우 힘든 과정으로 생각 된다. 神足通意成智를 얻지 않고서는 전혀 얻을 수가 없다. 이는 경전상의 神足通의 설명에서 유추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색계4선의 A구릅에서 18無我로 봄에 의해서 觀智가 발생하고 이에 의하여 색계4선의 B구릅인 무상천에 들게 되었다. 이는 18四大로 분석해봄에 의해서 六界로 보는 안목으로 진행됨을 의미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이고 다시 이를 五蘊으로 분석함에 따라 오취온으로 잘못 봄에 의해서 다시 이 발생하였으나 최종에는 오취온 역시 無我라는 결론에 도달함에 의해서 正見이 되고 이어서 意成智가 발생하는데 正見 八正道의 첫 항목과 일치하게 되며 이는 부처님의 경설 중에 五聚蘊無我로 보는 것이 正見이다.” 라는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그리하여 意成智가 발생하고 나면 그 수행이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는 이 단계에서만의 특별한 수행방법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는 意成身이 만들어짐에 의해서 지금까지의 수행방법과는 좀 다른 수행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오취온에 대한 무아관(無我觀)正見이라고 설한 것으로 판단해보면 正見이 본 것은 오취온이 無我라는 것이 확실하게 된다. 그러나 의성지(意成智)가 발생하고 나서 안 것은 무엇을 어떠하다고 안 것인가? 어차피 진아(眞我)가 아니니까 무아(無我)라고 본 것은 확실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正見意成智의 대상은 서로 다를 확률이 매우 높다. 그 대상은 오취온이 아님은 확실하다. 따라서 意成智가 발생한 후에 안 것은 칼집에서 칼이 뽑혀 나왔다고 표현되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대상은 意成身을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正見의 대상은 칼집에 든 칼이라면 意成智의 대상은 뽑혀 나와 있는 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정사유(正思惟)의 원어인 Samyak-Samkalpa에서 Kalpa란 정신적인 변혁작용을 뜻한다고 하였으므로 새로운 意成身에 의해서 새로운 사유체계(思惟體系)가 발생함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다른 단계에서는 볼 수 없는 정사유(正思惟)라는 특별한 항목이 八正道의 수행법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은 다른 단계에도 있는 사항이니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념(正念)에서 념()이란 기억을 뜻하며 기억이란 과거의 어떤 사물이나 행위를 뜻하는 데 념()의 대상은 무엇인가?

어차피 수행이란 眞我를 찾고자 하는 것이니 대상은 眞我가 될 수밖에 없는데 眞我를 기억한다는 것은 이미 보았었던 것을 기억한다는 말이니 그렇다면 이미 보았으니 수행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眞我(진아): 불교에서는 眞我(진아) 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으며 편의상 넣은 것이다.

 

그러나 수행은 앞으로도 여러 단계가 남아 있다. 따라서 여기서 념()의 대상 즉 기억해야 할 것은 진아(眞我)와 관련된 부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법상(法相)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상(法相)이란 마치 설계도와 같다고 할 수 있으며 眞我라는 법에 대한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正定(정삼매)은 이 正念에서의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색계4선의 C구릅의 선현천. 선견천. 색구경천으로 깊어짐을 말하며 이 단계는 八正道의 정사유로부터 정정까지의 단계와 잘 봄이 있는(善顯天). 잘 봄(善見天). 色界경지의 궁극(窮極)의 단계인 색구경천(色究竟天) 등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색계4선의 C구릅은 정사유로부터 정정까지의 단계를 말하며 이 정정의 단계에서 神足通이라는 智慧가 발생하며 37조도품의 전 과정이 끝나게 됨에 따라 無色界의 공무변처(空無邊處)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無色界부터는 여러분의 전정사유(專精思惟)와 수행에 의해서 상수멸(想受滅)에 이르게 될 것이다.

 

작은 지식이지만 여러분의 成佛로 가는 길에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깊이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修行者 여러분의 通察發展祈願합니다. 成佛 하십시오.

불기25491014東山法師團 惠山 李 勝 老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