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서

법안록

동산/혜산방 2022. 11. 16. 19:00

법안록 차레

1. 행록 ……… 159

2. 상당 ……… 163

3. 감변 ……… 191

4. 천화 ……… 223

종문십규론 / 228

종문십규론 해제(宗門十規論 解題)

 

종문십규론은 법안종의 종조인 법안 문인(法眼 文益)스님이 찬술한 것이다. 당시 납자들의 잘못된 안목과 공부태도, 처신 등 종문의 병폐를 10가지로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한 지침을 서술한 내용이다. 이 종문십규론은 수행의 지침이 되는 이외에도 禪宗 史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선종 5가종파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2장에서 "두 갈래로 내려오면서 줄줄이 파를 나눠 모두가 한 지역씩을 차지하였는데덕산. 임제. 위앙. 조동. 설봉. 운문에 와서는"이라 하였으니, 자종(自宗)을 제외한 5가의 스님들이 이 당시에 이미 한 유파를 이루고 있었다는 일반적인 의식을 볼 수 있다.

4장에서도 "조동(曹洞)은 스승과 제자가 북치고 화답하는 것으로 작용()을 삼고, 입제는 뒤바뀌는 것으로 바탕()을 삼는다. 운문은 천지를 뒤덮고 많은 흐름을 뚝 끊으며, 위앙은 부절이 맞듯 골짜기에 메아리 울리듯 네모와 동그라미가 묘하게 맞는다"하여 5가에 대한 평을 달고 있어 위의 내용을 뒷받침해 준다.

 

둘째는 "공안(公案)을 지도 한다"는 내용에서 당시에도 간화선이 유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속장경에 수록된 '제 중간십규론 후 (題重刊十規論後)'는 원의 무온 서중 (無溫恕中 : 1309-1386)스님이 쓴 발문인데, 이에 의하면 원지정 6(1326)에 경산의 적조원에서 판각하였으나 후에 전쟁으로 모두 타버려서 태주의 위우민 큰스님이 비용을 부담하여 다시 간행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서중스님의 발문은 '조선장(朝鮮藏)'에서 구하여 속장경에 싣는다고 하였다.

 

일러두기

1. 5가어록의 편집체제는 운문록을 제외하고는 임제록을 기준으로 하였다. 따라서 법안록도 임제록을 기준으로 행록, 상당, 감변, 천화 등으로 나누었다.

2. 임제록에서 할은, 진행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으로, 단순한 설명일 경우에는 ''로 번역하였고, 상황에 따라 예외를 두었다.

3. 임제록의 번역은 성철스님 구결 토에 의거하였고, [임제록]등을 참고하였다.

4. 문단은 학자들의 연구를 참고하여 나눴고, 제목은 중심 내용이나 기연에 따라 붙였다.

5. 임제록. 법안록은 편집사정으로 한 책에 실었다.

6. 부록으로 첨부된 법안록은 명() 가흥대장경 5가어록 본이다.

7.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중국불학인명사전]을 참고하였다.

 

 

(2) 법안록 - 1. 행록

법안록 - 1. 행록

 

스님의 휘()는 문익(文益)이며, 여항 노씨(餘杭魯氏)의 자손이다. 7살에 신정(新定) 지통원(智通院) 전위선사(全偉禪師)에게 머리를 깎았으며, 20살에 월주(越州) 개원사(開元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마침 훌륭한 율사(律師) 희각(希覺)스님이 명주(明州) 무산( ) 육왕사(育王寺)에서 한창 법을 펴고 있었으므로 가서 참례하였다. 강의를 듣고 익혀 불도의 깊은 이치를 공부하는 한편 틈틈이 유가 경전(儒典)도 공부하여 격조있고 고상한 경계에 유유자적하게 노닐었다. 그리하여 희각스님은 스님을 우리 문하의 자하(子夏)와 자유(子遊)* 불렀다.

* 자하(子夏)와 자유(子遊) : 공자(孔子)문하의 열 제자 중에 문학에 뛰어났던 두 제자.

 

그러다가 일단 발심이 되자 잡다한 일을 다 제쳐두고 지팡이를 떨치며 남쪽으로 갔다. 복주(福州)에 도착하여 장경(長慶)스님을 참례하였으나 확실히 깨닫지는 못하고, 그 뒤 소수(紹修). 법진(法進)스님과 함께 세 사람이 영남(嶺南)을 떠나오다가 자장원(地藏院)을 지나다가 눈으로 길이 막혔다. 잠간 화롯가에 쉬던 차에 지장(羅漢桂琛)스님이 물었다.

"이번 길은 어디로 가는가?"

"이리저리 행각하렵니다."

"무엇이 행각하는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하니 가장 적절한 말이군."

또 셋이서 함께 [조론( )]을 거론하다가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자, 지장스님이 물었다.

"산하대지가 그대들 자신과 같은가 다른가?"

스님이 "다릅니다."하자 지장스님은 손가락 두개를 세웠다.

이번에는 "같습니다."하자 지장스님은 다시 손가락을 세우더니 벌떡 일어나서 가버렸다.

눈이 그쳐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자, 지장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며 말씀하셨다.

"상좌, 삼계(三界)는 마음일 뿐이며, 만법(萬法)은 식()일 뿐이라고 항상 말들 한다."

그리고는 뜰아래 돌덩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말해 보게, 이 돌이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한 덩이 돌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

스님은 궁색하여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지장스님의 법석(法席)에서 결판을 보려고 작정하였다. 한 달 남짓 매일같이 자기 견해로 도리를 설명해 보이자, 지장스님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佛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는 이제 할 말도 없고 설명할 이치도 막혔습니다."

"佛法하자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다."

스님은 그 말끝에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머물려 하였으나, 법진(法進)스님 등이 양자강 밖으로 총림을 두루 돌아다니려 하였기 때문에, 스님에게 함께 가라고 하였다. 임천(臨川)에 이르자 주()의 목사(牧使)가 숭수원(崇壽院)의 주지를 맡아달라고 청하였다.

 

 

(3) 2. 상당 - (1)

2. 상당 - (1)

 

개당하고 대낮이 되도록 차 마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자 그때 승정(僧正)이 아뢰었다.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벌써 스님이 說法할 자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大衆들이 벌써 진짜 善知識을 참례했구나"하고는 잠깐 있다가 승당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大衆이 구름같이 모였으니 스님께서는 을 베풀어 주십시오."

스님은 "大衆이 오랫동안 서 있었구나" 하고는 말씀하셨다.

"대중들이 이렇게 여기 다 모였으니, 내 아무 말 안할 수가 없구나. 大衆들에게 옛사람의 方便 하나를 들려주겠다. 몸조심 하라."

그리고는 문득 法座에서 내려와 버렸다.

 

 

 

(4) 2.상당 - (2)

2. 상당 - (2)

 

자방상좌(子方上座)가 장경 혜릉(長慶慧稜 : 854 ~ 932) 스님으로부터 찾아왔는데 스님은 장경스님의 偈頌을 들어 질문하였다.

"무엇이 萬象 가운데 우뚝하게 드러난 몸이더냐?"

상좌가 불자(拂子)를 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렇게 理解해 가지고서야 어떻게 깨치겠느냐?"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萬象이라 하느냐?"

"옛사람은 萬象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萬象 가운데 우뚝 드러난 몸, 무슨 부정을 하고 말고가 있겠느냐?"

 

子方上座는 여기서 활연히 깨닫고 偈頌을 지어 바치며 마음으로 歸意하였다. 이로부터 제방의 회상에서 알음알이를 떨어버리지 못한 자들(知解者)이 쏠리듯 찾아왔다.

처음에는 떠날듯이 하다가도 스님이 가만히 일깨워주니 모두들 점점 속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法會에 참례하는 大衆들이 항상 천명을 밑돌지 않았다.

 

 

(5) 2 상당 (3) 법안록

2 상당- (3)

 

大衆들이 오래 서 있자 이윽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있다가 그냥 흩어진다 해도 佛法 도리가 있겠느냐? 한번 말해보아라. 없다면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며, 있다면 사람이 바글대는 큰 시장 속에도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기어코 여기까지 찾아왔느냐?

 

여러분은 각자 [환원관(還源觀)] [백문의해(百門義海)] [화엄론(華嚴論)] [열반경(涅槃經)]등 많은 책자를 보았을 것이다. 그 중 어는 교()에 이런 境界가 있더냐? 있었다면 한번 꺼내 보아라. 이런 속에 이런 말씀이 있는데 바로 그런 境界가 아닐 는 지요라고. 그렇다 한들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심오한 말씀이 마음에 막히면 항상 알음알이의 바탕이 되고, 실다운 이치가 눈앞에 버티고 있으면 도리어 명상(名相)境界로 뒤바뀐다고 하였다.

, 어떻게 해서 뒤바뀔 수 있겠느냐. 뒤바뀔 수 있다면 다시 어떻게 해야 바로 될 수 있겠느냐. 알겠느냐? 그런 식으로 책만 외우고 있지 말아 라.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드러내면 에 부합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라도 설명해 낸다면 에 부합하지 못할 것이다."

"여섯 감관(六處)에서 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너의 집 眷屬(권속)은 한 떼나 되는구나."

 

스님은 다시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 알겠느냐. 이렇게 질문하는 바로 이것이 그대가 말한 '여섯 감관이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眼處)으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耳處)로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만일 근본이 있다면 알아들을 수 없음을 어떻게 理解(이해)하겠느냐. 옛사람은 빛과 소리를 떠나는 그것이 빛과 소리에 집착하는 것이며, 이름을 떠나는 그것이 바로 이름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상천(無想天)을 닦아 얻고 팔만대겁(八萬大劫)을 지나도 하루아침에 퇴보하여 떨어지는 등의 엄연한 사실은 根本 되는 眞實을 몰랐기 때문이다. 360(三生六十劫)41백겁(四生一百劫)을 차례로 닦아 올라가서 3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 완성된 지위에 도달했다 치자. 그렇다 해도 옛사람은 그것을 연기무생(緣起無生)道理를 한 생각에 알아서 방편으로 세운 저 3(三乘) 등의 見解를 초월하느니 만은 못하다고 하였다. 또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팔만 가지 방편을 완성하고, 찰나에 3아승지겁을 없앤다고도 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온몸으로 참구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힘을 좀 들여야 할 것이다."

 

 

(6) 2 상당(4) 법안록

2 상당 - (4)

 

한 스님이 물었다.

"손가락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달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그대가 묻지 않겠다는 손가락이냐?"

"달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손가락입니까?"

"달이지."

"저는 손가락을 물었사온데 스님께서는 어째서 달이라고 대꾸하십니까?"

"그대가 손가락을 물었기 때문이다."

 

 

(7) 2 상당- (5) 법안록

2 상당 - (5)

 

강남국주(江南國主)가 스님의 도를 높이 평가하고 보은선원(報恩禪院)에 맞이하여 머물게 하고 정혜선사(淨慧禪師)로 임명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

* 이하 '한 스님이 물었다'에 해당되는 '()'은 편집상 생략한다.

 

"큰 종을 치자마자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이렇게 스님께서 설법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대중들이 아는 것이 어찌 그대가 아는 것과 같으랴."

"무엇이 옛 부처의 가풍입니까?"

"어느 곳을 살핀들 부족하랴."

"하루 종일 어떻게 처신해야 에 계합할 수 있겠습니까?"

"택하고 버리는 마음이 교묘함과 거짓을 이룬다."

"옛사람이 전해주신 가사와 발우(衣鉢 : )를 어떤 사람에게 수기(受記)하시렵니까?"

"그대는 어디서 옛사람이 전해주신 衣鉢을 보았느냐?"

"시방의 聖賢들이 모두가 이 가르침으로 들어온다 하니 무엇이 이 가르침입니까?"

"시방의 聖賢들이 모두 들어오는구나."

"무엇이 향상인(向上人)인 부처입니까?"

"方便으로 부처라고 부를 뿐이다."

"무엇이 배우는 이(學人)의 한 권 經典입니까?"

"제목이 매우 분명하다."

"(). ()이란 두 글자를 누가 뚫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대중에서 말씀하셨다.

"스님 네들이여, 말해보라. 이 스님이 성. 색을 뚫었느냐? 이 스님의 물음을 알아낸다면 성. 색을 뚫기 어렵지 않으리라."

"부처님의 지혜(知見)를 구하는 데는 어느 길이 가장 첩경입니까?"

"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

"상서로운 풀이 시들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말이 많구나."

"대중들이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물같이 얽힌 의심을 단숨에 풀어 주십시오."

"요사 채에서도 헤아려 보고, 찻방에서도 헤아려 보게."

"구름장이 열리고 해가 보일 때는 어떻습니까?"

"진짜 너절한 말을 하는구나."

"무엇이 사문(沙門)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입니까?"

"털끝만큼이라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沙門이라 할 수 없다."

"천백억 화신(化身) 가운데 어떤 것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모두 다이다."

"떼 지어 올라온다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눈이 있느냐, 없느냐?"

"온통 알음알이뿐입니다. 스님께서 한 번에 해결해 주십시오."

"그대의 알음알이는 저절로 깨져 버렸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사무량심(慈悲喜捨)을 흘려내는 것이다."

"백 년 동안 어두웠던 방을 등불 하나로 밝힐 수 있습니다. 무엇이 등불 하나입니까?"

"무슨 백년을 말하느냐?"

"무엇이 진정한 입니까?"

"첫 번째 소원도 그대가 실행하게 하는 것이며, 두 번째 소원도 그대가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한결같은 眞實境地입니까?"

"境地에는 한결같은 眞實이란 없다."

"무엇이 우뚝한 것입니까?"

"점점 더 빗나가는구나."

"무엇이 옛 부처입니까?"

"바로 지금이라 해도 꺼릴 것 없지."

"하루 종일 어떻게 밟아가야 합니까?"

"걸음걸음 밟아 가야지."

"마음 거울(古鏡)이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환하게 비출 수 있습니까?"

"기어코 두 번 세 번 해야겠는가."

"무엇이 부처의 묘한 종지입니까?"

"이것은 그대에게도 있다."

"經典에서는 머묾 없는 根本에 입각해서 일체법이 성립한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머묾 없는 근본입니까?"

"모습은 형체가 없는 데서 일어나고, 이름은 이름 붙기 전에서 나왔다."

"죽은 스님의 의발은 여러 사람이 창의(唱衣)합니다만* 조사의 의발은 누가 창의합니까?"

"그대는 죽은 스님의 어떤 의발을 창의 했느냐?"

* 창의(唱衣) : ()은 물건을 팔 때 물품의 수량이나 품목, 가격 등을 부르는 것을 말하고, ()는 승려가 소유하고 있는 중요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창의는 죽은 승려의 간호비. 약품비. 장례비 등에 충당하기 위해 그가 지니고 있던 의발 등을 대중에게 경매하는 것이다.

 

"고향을 떠난 자식이 고향에 되돌아왔을 땐 어찌합니까."

"무엇을 정성껏 바치려느냐?"

"아무것도 없습니다."

"매일같이 쓰는 물건을 어떻게 하려고?"

 

 

(8) 2 상당 - (6)

2 상당 - (6)

 

그 뒤 스님께서는 청량원(淸凉院)에 계셨다.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람은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다만 時節因緣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佛性理致를 알고자 한다면 時節因緣觀察해야 하니 그러한 방편은 古今에 적지 않다. 보지도 못했는가.

석두 희천(石頭希遷 : 700 ~ 790)스님은 [조론( )]에서 '만물을 녹여 자기로 삼는 자는 聖人뿐이라' 한 대목을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聖人自己가 없기 때문에 自己 아닌 것이 없다.'

석두스님께서는 또한 참동계(參同契)*라고 불리는 글 한 편을 남기셨다. 그 첫머리에 '인도 땅 부처님 마음' 운운 하였으니 時節因緣에 대해 이보다 더한 말은 없으며, 중간부분도 時節을 따르라는 말일 뿐이다.

 

*참동계(參同契) : 744220자 된 장편의 고시(古詩).

스님 네들이여, 이제 萬物을 녹여 自己로 삼으려 한다며 온 누리에 아무것도 볼 것이 없어야 하리라. 또 석두스님은 그 끝에서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조금 전에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다만 時節因緣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으니 만일 시절을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면 바로 歲月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며, ()이 아닌 것을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님 네들이여, 이 아닌 것을 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狀況(상황)時節을 놓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이 아닌 것이라 理解한다면 타당한지 부당한지를. 그런 식으로 理解한다면 더욱 빗나가서 헛되고 어리석게도 양 갈래로 치닫게 되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스님 네들이여, 분수를 지키며 時節에 따라 지내야 할 것이다. 몸조심하라."

 

 

(9) 2 상당- (7) 법안록

2 - 상당(7)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량원의 가풍입니까?"

"다른 데 가거든 그저 청량원에서 왔다고만 하거 라."

"어떻게 해야만 아무 것()에서 걸려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대에게 붙어 있느냐?"

"밤낮으로 부딪치는데 야 어찌합니까?"

"부질없는 말이다."

"이 몸을 허깨비처럼 변해서 나타난 것이라 보고, 마음도 그렇다고 관찰할 땐 어떻습니까?"

"정말 그렇겠느냐?"

"國師께서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우선 갔다가 다음에 오너라."

* 남양 혜충(南陽 慧忠 : ? ~ 775) 국사가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대답하였다. 이렇게 세 차례 반복하더니 국사가 말하였다. "내가 너를 저버린다 하였더니 네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요긴한 것과 상응하면 다르지 않다(不二)고만 하면 되는데 무엇이 다르지 않은 말입니까"

"더 이상 얼마나 보태려느냐."

"무엇이 法身입니까?"

"이것이 응신(應身)이다."

"무엇이 으뜸가는 이치(第一義)입니까?"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는 이것이 바로 으뜸가는 이치이다."

 

 

(10) 2 - 상당 - (8)--법안록

2 -상당 - (8)

 

스님이 수산주(修山主 : 紹修)스님에게 물었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天地差異로 벌어진다는 말을 사형께서는 어떻게 이해하시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天地差異로 벌어집니다."

"그렇게 理解해서야 어떻게 알겠소."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天地差異로 벌어집니다."

그러자 수산주는 스님에게 절하였다.

 

동선 제(東禪齊)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산주스님이 그렇게 대꾸했을 때는 어째서 인정하지 않았으며, 다시 물었을 때 법안스님도 그렇게 대답했을 뿐인데도 그것은 옳았겠는가? 말해보라.

 

어디서 틀어졌겠는가? 꿰뚫어볼 수 있다면 그대에게 根據가 있다 하리라."

오조 계(五祖戒)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스님이 등줄기를 정곡으로 후려쳤다."

 

보령 용(保寧勇)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산주스님이 당시에 법안스님에게 '그렇게 理解한다면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했어야 좋았을 것을."

 

경산 고(徑山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스님과 수산주스님은 실낱이 오고 가듯 끊임없고 빈틈없이 지장(地藏)스님의 道風을 지키고 일으켰으니, 눈이 부시다 하겠다. 그러나 여기 경산의 문하에서라면 다시 짚신을 사 신고 행각을 떠나야 할 것이니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天地差異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겠는가?"

 

 

(11) 2 상당(9)--법안록

2 - 상당-(9)

 

한 스님이 찾아와서 참례하니 스님은 발을 가리키셨다.

그러자 곁에 있던 두 스님이 동시에 가서 발을 걷으니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는 맞았고 하나는 틀렸다."

동선 제(東禪齊)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님 네들이여, 어떻게 이해해야겠는가? 어떤 사람은 그가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을 걷었다 하고, 다른 사람은 가리켰던 사람은 알았다 하겠으나, 가리키지 않았는데도 거둔 사람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렇게 理解한다면 되겠느냐. 그렇게 理解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시 그대들에게 묻겠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이냐?"

 

황룡 청(黃龍淸)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스님은 마치 막야( )의 보검을 손에 쥔 듯 죽였다 살렸다를 자재하게 하였다. 두 스님이 동시에 발을 거뒀다. 자 말해보아라. 누가 맞고 누가 틀렸겠느냐. 알겠는가? 세상일은 공정한 법으로 판결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둥근 달처럼 되기가 어렵구나."

 

 

(12) 2 상당 - (10)법안록

2 상당-(10)

 

운문(雲門 : 864 ~ 949)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강서(江西)에서 옵니다."

"강서의 큰스님들은 몽땅 잠꼬대를 하더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뒤에 한 스님이 법안스님께 묻기를 "운문스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스님께서는 "형편없는 운문스님이 이 스님에게 속을 들켰구나" 하셨다.

 

 

(13) 2 상당- (11)--법안록

2 상당 - (11)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도량(道場)에서 옵니다."

"밝음을 깨달았느냐, 어두움을 깨달았느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14) 2상당 - (12) 법안록

2 상당 - (12)

 

스님이 한 스님더러 흙을 가져와서 연꽃화단을 돋우라고 하여 흙을 가져오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리 동쪽에서 가져왔느냐, 다리 서쪽에서 가져왔느냐?"

"동쪽에서 가져왔습니다."

"정말이냐, 거짓말이냐."

 

 

 

(15) 2 상당- (13)--법안록

2 상당 - (13)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보은(報恩)에서 옵니다."

"대중 스님들은 편안하더냐?"

"편안합니다."

"차나 마시게."

 

 

(16) 2 상당- (14) 법안록

2 상당 - (14)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사주( )에서 대성(大聖)*을 친견하고 오는 길입니다."

"금년에 대성이 탑에서 나왔느냐?"

"나왔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불쑥 곁에 있던 스님에게 물었다.

"말해보라. 그가 사주에 갔었겠느냐, 가지 않았겠느냐?"

부산 원(浮山遠)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스님이 사주에 가긴 갔으나 大聖을 뵙지 못했을 뿐이다."

도장 전(道場全)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스님이 大聖을 보긴 보았으나 법안스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동선 관(東禪觀)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스님이 사주에도 갔었고 大聖도 보았으며 법안을 알아보기도 했으나,

다만 자기를 찾았으나 보지 못했을 뿐이다."

* 사주( )의 보광왕사에 오래 계셨던 승가대사(僧伽大師)涅槃한 후에도 肉身을 탑에 모셨는데, 그 후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보이셨다.

 

 

 

(17) 2 상당 - (15)--법안록

2 상당 - (15)

 

스님이 보자(寶資) 큰스님께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山河大地는 막힘이 없어 밝은 빛이 어디에나 사무친다'하였는데 무엇이 어디에나 사무치는 밝은 빛입니까?"

"동쪽 언덕에서 바라를 치는 소리입니다."

귀종 유(歸宗柔)스님은 보자스님과 달리 말씀하셨다.

"그대 스스로 막고 있구나."

 

 

(18) 2 상당- (16)법안록

2 상당 - (16)

 

스님이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보이느냐?"

"보입니다."

"대나무가 눈으로 들어오느냐, 눈이 대나무까지 가느냐?"

"둘 다 아닙니다."

스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무슨 숨넘어가는 소리냐."

 

법등(法燈)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서 당장 스님에게 눈을 빼주었어야 하리라."

귀종 유 스님은 달리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저를 영 못 믿으시는군요."

 

 

 

(19) 2상당 - (17)법안록

2 상당 - (17)

 

한 거사가 병풍 하나를 드리자 스님은 보고 나서 물었다.

"그대는 솜씨가 교묘한가, 마음이 교묘한가?"

"마음이 교묘합니다."

"무엇이 그대의 마음인가?"

거사는 대꾸가 없었다.

귀종 유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저는 오늘 쉽게 해냈습니다."

 

 

 

(20) 2 상당- (18)법안록

2 상당 - (18)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겹쳐 보이는 달(第二月)입니까?"

"삼라만상이지."

"그러면 무엇이 진짜 달(第一月)입니까"

"만상삼라이지."

 

 

(21) 2 상당- (19)--법안록

2 상당 - (1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시방세계를 비추도록 밝은 境界에는 실오라기 하나 없다.

만일 실오라기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실오라기 하나이다."

법등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실오라기 하나가 있다 해도 그것은 실오라기가 아니다."

 

 

(22) 2상당 - (20)--법안록

2 상당 - (20)

 

스님께서 의자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의자를 알 수 있다면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 것이다."

운문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자를 알았다 해도 한참 멀었다."

설두(雪竇)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드넓은 호수에 산을 숨기니, 이리가 표범을 굴복 받는구나."

원오(園悟)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두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그를 밝히는 말인지, 점검하는 말인지,

칭찬하는 말인지, 깎아내리는 말이지를 모르겠다."

경산 고(徑山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자를 알았다면 머리 깎고 발을 씻어도 좋으리라.

그렇긴 하나 잘못 理解한 자가 많다."

 

 

(23) 2 상당- (21)--법안록

2 상당 - (21)

 

스님이 다리를 앓아 한 스님이 문병을 드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군가 올 때는 움직일 수 없지는 않았는데 오고 나면 움직여지지 않는다.

말해보라. 佛法에서는 이런 경우를 무어라고 해야겠느냐?"

"스님께서는 우선 좀 기뻐하십시오."

스님은 긍정하지 않고 스스로 그와는 달리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오늘 좀 덜하신 듯도 하군요."

 

 

 

(24) 2 상당- (22)법안록

2 상당 - (2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티끌만치 많은 오랜 세월부터 있어온 일입니까?"

"지금도 다 있다."

 

 

 

(25) 2 상당- (23)법안록

2 상당 - (23)

 

도생(道生)법사가 말씀하시기를,

"허공을 두드리니 메아리가 일어나고 목어(木魚)를 치니 소리가 없구나" 하였는데, 스님께서 언젠가는 재()를 알리는 木魚소리를 듣고 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들었느냐. 조금 전에 들었다면 지금은 듣지 못할 것이며, 지금 듣는다면 조금 전에는 듣지 못했으리라. 알겠느냐."

 

 

 

(26) 2 상당- (24)법안록

2 상당 - (24)

 

우물 뚜껑을 열다가 모래흙이 물구멍을 막아버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구멍이 뚫리지 않는 것은 모래에 막혔기 때문이지만, 도안(道眼)이 통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에 막혔기 때문이냐?"

대꾸가 없자, 스님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에 막혀서이다."

 

 

(27) 2상당 - (25)법안록

2 상당 - (25)

 

한 스님이 흙 나르는 것을 보고 흙 한 덩이를 그 짐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대를 돕는 걸세"하니 "스님의 자비에 감사합니다." 하였다.

스님이 긍정하지 않자, 어떤 스님이 달리 말씀하시기를, "스님께서는 그게 무슨 심보요?" 하자, 스님은 거기서 그만두었다.

 

 

 

(28) 2 상당- (26)법안록

2 상당 - (2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 네들이여, 날씨가 차가운데 무엇 때문에 올라왔느냐. 말해보라.

 

法門을 들으러 올라와야 좋겠는가, 올라오지 말아야 좋겠는가. 한 사람은

'올라오지 않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어느 곳인들 옳지 않겠습니까. 올라와서 더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고, 또 한 사람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반드시 스님 계신 곳에 올라와야 한다.'고 할 것이다.

 

, 말해보라. 이 두 사람은 佛法 가운데서 공부된 바가 있겠느냐. 스님 네들이여, 사실상 터득하지 못했다면 결코 조금도 공부가 되었다고 인정해 줄 수 없다. 옛사람은 이를 구멍 없는 철추(鐵椎)라고 불렀으니, 눈 뜬 봉사나 멀쩡한 귀머거리와 다름없다는 뜻이다.

또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기를, '두 사람 다 옳지 않으니 어째서 그런가. 執着했기 때문이다'라고 할 것이다.

 

스님 네들이여, 모두들 이런 식으로 行脚하고 헤아려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입술만 나불거리려 하느냐. 아니면 무슨 속셈이라도 있느냐. 무엇을 執着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무엇을 執着하려느냐. 理致執着 하려느냐, 現象에 집착하려느냐. ()에 집착 하려느냐, ()에 집착하려느냐.

만일 理致라면 그것을 어떻게 執着하겠으며, 現象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執着

하겠느냐. . 執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내가 평소에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十方의 모든 부처님과 善知識이 항상 손을 내밀어 여러분들이 그때마다 손을 잡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十方의 모든 부처님이 손을 내밀 때 어디에 내밀더냐. 그대들이 항상 손을 받아 잡는 곳이다. 그곳을 알겠느냐. 알고 잡아야 좋으리라. 만일 모른다면 오는 족족 다 잡는다고 말하지 말라.

 

스님 네들이여, 남의집살이를 하려거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세히 살펴야

할 일이지 좁은 智慧를 믿고 세월을 보내서는 안 된다."

 

 

 

(29) 2상당 - (27)법안록

2 상당 - (27)

 

스님께서 어린아이에게 말씀하셨다.

"자식을 보니 너의 아버지를 알겠구나.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냐?"

아이가 대꾸가 없었다.

법등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옷소매로 얼굴을 가릴 뿐이다."

스님께서 이번에는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효자라면 딱 깨닫게 해줄 한마디를 던졌어야 하리라.

말해보라. 무어라고 했어야 했는가?"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효자이니라."

 

 

 

(30) 2 상당- (28) 법안록

2 상당 - (28)

 

스님께서 [백법명문론(百法明門論)]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백법(百法)으로는 本體作用을 동시에 설명하였으며, 명문(明門)主觀客觀 양쪽 다 거론하였다.

지금 강의하는 사람(座主)主觀이며 대중(法座)客觀이니, 어떻게 설명해야 두 가지를 함께 거론하는 것이냐?"

큰스님 한 분이 대신 말씀하셨다.

"나라면 大衆이라고 하겠다."

귀종 유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님을 그렇게 귀찮게 하지 말라."

설두스님은 앞의 큰 스님의 말에 이렇게 달리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절의 절반을 제게 떼어 주셔야 합니다."

 

 

 

(31) 2 상당- (29)법안록

2 상당 - (29)

 

스님께서 하루는 이왕(李王)과 법담을 끝내고 함께 모란꽃을 구경하던 중,

이왕이 偈頌을 지으라 하자 그 자리에서 부()를 읊었다.

 

붓을 들고 아름다운 꽃 마주하니 (擁筆對芳叢)

불어오는 향기는 저마다 다르구나. (由來趣不同)

머리털은 오늘부터 희어지는데 (髮從今日白)

꽃은 작년같이 붉었어라 (花是去年紅)

짙은 단장은 아침 이슬 따르고 (治隨朝露)(治粧隨朝露?)

맑은 향기는 저녁 바람에 실려 가는데 (馨香逐晩風)

하필 잎 떨어진 뒤에야 (何須待零落)

()임을 알랴. (然後始知空)

 

擁筆對芳叢 由來趣不同 (옹필대방총 유래취부동)

髮從今日白 花是去年紅 (발종금일백 화시거년홍)

治隨朝露 馨香逐晩風 (치수조로 성향축만풍)

何須待零落 然後始知空 (하수대영락 연후시지공)

 

이왕은 그 뜻을 단박에 알았다.

 

 

 

(32) 2 상당 - (30)법안록

2 상당 - (30)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이렇게 잠시 모인 여기가 그대들의 큰방이며, 잠시 모인 여기가 가장 높은 삼문(三門)이며, 잠시 모인 여기가 그대들의 요사 채이다. 여기서 다시 그대들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

 

법회에 있던 몇몇 노스님들이 각각 이렇게 대꾸하였다.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다 해도 이방편을 쓰셨을 것입니다."

"오늘 글의 뜻(章義)을 떠났습니다."

"그대가 말하는 그곳이란 어느 곳인가?"

"등불을 켜는 등()상좌가 온 지 오래입니다."

"어는 곳에 모일까요."

 

 

 

(33) 2상당 - (31)법안록

2 상당 - (31)

 

스님께서 門徒들에게 말씀하셨다.

"조주(趙州 : 778 ~ 897)스님께서 '헛수고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말 좋은 말씀이다. 어째서 예전 그대로 하질 않느냐. 世間 法이 있는데 佛法인들 어찌 이 없으랴 하여, 이로부터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예전 그대로 하는 데서 體得했을 뿐이다. 마치 초저녁에 울리는 종처럼 실낱만큼도 差異를 보이지 않아야 좋을 것이다. 종소리가 들릴 때는 잡소리가 전혀 없는데, 그것은 때 맞춰 울리기 때문이다.

 

무심(無心)스님이 말하기를, "죽는다 해도 아주 죽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옛 같이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하였다.

홀연히 때 아닌 종소리가 들릴 땐 모든 사람들이 다 놀라면서 '종이 괴이하게 울린다.'고 한다. '또 오늘부터 초여름(孟夏)이니 점점 무더워진다'고 한다면 옳지 않으니, 하루쯤 지나야 얼마나 더워졌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4월 초하루에 그렇게 말한다면* 거짓말이 된다.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은 실낱만큼이라도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방편으로 그대들에게 바로 그때가 아니면 속임수가 되므로 옛 과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공(寶公)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잠시라도 스스로를 긍정하여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역겁(歷劫)인들 어찌 오늘과 달랐겠는가?'라고 하였다. 알았느냐. 오늘이 진겁(塵劫)일 뿐이다.

옷 입고, 밥 먹고, 行住坐臥하며 아침저녁으로 法門을 청하는 것을 모두 예전대로 한다면 바로 일 없는 사람이 된다."

* 초여름(孟夏)은 음력 4월부터다.

 

 

 

(34) 2 상당- (32)법안록

2 상당 - (32)

 

스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를 보겠다는 데 目標를 두고, 그것을 알려고 노력해야 큰 智慧를 터득할 수 있다.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3(三界)에서 愛着하는 일들을 몽땅 떨어버려야 하니,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으면 아직 덜 된 것이다.

 

꿈속에서 화를 내거나 기뻐하는 것이 3계의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며, 익숙한 境界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는 것도 혼침과 산란이다. 그것은 대체로 그대들이 혼란(混亂)하기 때문이니 옛사람은 이를 '허깨비를 끼고 다닌다.'고 하였다.

금은 진짜 純金이지만 鑛石 속에 묻혀 있는 데야 어찌하랴. 이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그대들의 힘이다. 한편 이렇게 觀察해내지 못한다면 淨土에 있다는 누대(樓臺)와 전각(殿閣)이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聖人이라 해서 반드시 언제까지고 그대들의 손을 잡아주라는 법은 없고, 그대들도 반드시 그것을 의지해서 가라는 법도 없으니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35) 2 상당 - (33)법안록

2 상당 - (33)

 

스님께서 偈頌으로 말씀하셨다.

至極理致는 말과 생각을 잊었으니 어찌 譬喩로 똑같이 설명할 수 있으랴

서리 내린 밤, 달은 내려와 무심히 앞 시내에 떨어지는데

과일 익으니 원숭이 덩달아 살찌고 첩첩 산중에 길을 잃은 듯 하구려

석양 빛 보려고 머리를 드니 원래부터 서쪽에 있었다네.

 

理極忘情謂 如何有喩齊 (리극망정위 여하유유제)

到頭霜夜月 任運落前谿 (도두상야월 임운락전계)

果熟猿兼重 山長似路迷 (과숙원겸중 산장사로미)

擧頭殘照在 元是住居西 (거두잔조재 원시주거서)

 

 

(36) 2 상당- (34)법안록

2 상당 - (34)

 

삼계유심(三界唯心)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삼계는 마음일 뿐이며

만법은 식()일 뿐이니

마음뿐이며 식일 뿐이라면

눈으로 소리를 듣고 귀로는 빛()을 보아야 하나

빛은 귀에 이르지 못하니

소린들 어찌 눈에 닿으랴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어야

萬法을 이루리라

萬法因緣으로 된 것이 아닌데

어찌 허깨비라고 관찰하랴

산하대지 중에서

무엇이 견고하고 무엇이 변하는가.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유심 만법유식)

唯識唯心 眼聲耳色 (유식유심 안성이색)

色不到耳 聲何觸眼 (색불도이 성하촉안)

眼色耳聲 萬法成辨 (안색이성 만법성변)

萬法匪緣 豈觀如幻 (만법비연 기관여환)

山河大地 誰堅誰變 (산하대지 수견수변)

 

 

 

(37) 2 상당- (35)법안록

2 상당 - (35)

 

화엄육상(華嚴六相)의 뜻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화엄육상의 뜻은 (華嚴六相義 화엄육상의)

같은(同相)속에 다름(異相)있으니 (同中還有異 동중환유이)

다름이 같음과 다르다면 (異若異於同 이약이어동)

부처님 말씀과는 영판 어긋나네 (全非諸佛意 전비제불의)

부처님이 말씀하신 총상(總相)과 별상(別相) (諸佛意總別 제불의총별)

어찌 같고 다름이 있었으랴 (何會有同異 하회유동이)

남자의 몸으로 선정(禪定)에 들 때 (男子身中入定時 남자신중입정시)

여자의 몸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네. (女子身中不留意 여자신중불유의)

마음을 두지 않고 이름(名字)도 끊으니 (不留意 絶名字 불유의 절명자)

만상이 분명하여 이치도 현상도 없다네.(萬象明明無理事 만상명명무리사)

 

華嚴六相義 同中還有異

異若異於同 全非諸佛意

諸佛意總別 何會有同異

男子身中入定時

女子身中不留意

不留意 絶名字

萬象明明無理事

 

 

(38) 3. 감변 - (1)법안록

3. 감변 - (1)

 

스님께서 각 상좌(覺 上座)에게 물었다.

"배를 타고 왔느냐, 육지에 걸어왔느냐?"

"배를 타고 왔습니다."

"배가 어디 있느냐?"

"강에 있습니다."

각 상좌가 물러가자, 스님은 곁에 있던 스님에게 물었다.

"말해보라. 조금 전에 왔던 스님이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

 

 

(39) 3. 감변- (2)

3. 감변 - (2)

 

광효 혜각(光孝慧覺)스님이 스님을 찾아왔을 때 스님께서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떠나오셨소?"

"조주(趙州)에서 왔습니다."

"듣자하니, 조주스님께서는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라는 말씀을 하셨다던데, 그렇소?"

"그런 일 없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무엇이 달마대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했다던데, 스님은 어째서 그런 일 없다고 하시오?"

"조주스님께서는 실로 그런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조주스님을 비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경산 고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한다면 혜각 스님의 무쇠 입에 어긋날 것이며,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법안스님의 말과 틀린다. 그렇다고 양쪽 다 아니라 한다면 조주스님과 관계없으리라. 한편 모두 다 아니고 투철히 벗어나는 다른 길이 있다 해도 쏜살같이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고산 규(鼓山珪)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쇠 입(覺鐵口) 혜각 스님이라더니, 헛소문은 아니나, 다만 꿈에서도 조주스님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40) 3. 감변 - (3)법안록

3. 감변 - (3)

 

스님께서 오공(悟空)스님과 함께 향로 앞에서 향 숟가락을 들면서 물었다.

"이것을 향 숟가락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사형께서는 무어라 부르겠소?"

 

오공스님은 "향 숟가락입니다" 하였는데 스님은 긍정하질 않았다. 오공스님은 그 뒤 20여일이 지나서야 이 말을 알게 되었다.

 

 

(41) 3 감변 - (4)법안록

3 감변 - (4)

 

하루는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계근원의 물 한 방울입니까?"

"이것이 조계근원의 물 한 방울이다."

 

그 스님은 망연하여 물러갔는데 그때 천태 덕소(天台德韶 : 891 ~ 972) 스님이 곁에 앉아 있다가 활짝 깨달았다. 그리고는 깨달은 것을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뒷날 國王의 스승이 되어 祖師를 빛낼 것이니 나보다 낫겠다."

천태스님은 그 뒤 이런 偈頌을 지었다.

 

통현봉(通玄峯) 꼭대기는 인간세상이 아닌데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청산이 눈에 가득하구려.

通玄峯頂 不是人間

心外無法 滿目靑山

스님은 이 소문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한 마디 偈頌이 우리 를 일으키겠구나."

 

 

(42) 3. 상당- (5) 법안록

3. 상당 - (5)

 

복주(福州) 영은 청용(靈隱淸聳)스님이 처음 참례하자, 스님은 빗방울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방울방울이 그대 눈 속에 떨어지는구나."

청용스님이 처음엔 그 뜻을 깨닫지 못했으나 그 후 [화엄경(華嚴經)]을 보다가 깨닫고 스님의 인가를 받았다.

 

 

(44) 3. 상당 - (7)법안록

3. 상당 - (7)

 

하중부(河中府) 영명 도잠(永明道潛 : ? ~ 961)스님이 처음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었다.

"그대는 참례하고 법문을 청하는 일 말고는 무슨 經典을 보았는가?"

"[화엄경]을 보았습니다."

"(), (), (), (), (), (), 6(六相)은 어느 부분에 속하던가?

"문장은 십지품(十地品)에 있으나, 이치로 보면 世間. 出世間一切法에 모두 六相을 갖추었습니다."

"()에도 六相을 갖추었던가?"

도잠스님이 멍하니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질문하라. 내가 대답하리라."

그리하여 도잠스님이 물었다.

"에도 六相을 갖추었습니까?"

"()이라네."

도잠스님은 이에 깨닫고 뛸 듯이 기뻐하며 절하고 감사드리자, 스님께서 "그대는 어떻게 理解하는가?" 하고 물으니

"입니다" 하자,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뒷날 四部大衆 男女들이 절에 들어오자, 스님은 도잠스님에게 물었다.

"戒律에서는 담장 너머로 비녀와 팔찌소리만 들어도 그것을 파계(破戒)라 하였는데, 금은이 뒤섞이고 벼슬아치들이 가득 찬 것을 마주보면 이는 破戒인가 아닌가?"

"에 들어가는 좋은 길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뒷날 五佰의 벼슬아치를 거느리고 王侯尊敬"받을걸 세."

 

 

(45) 3 감변 - (8)법안록

3 감변 - (8)

 

항주(杭州) 문수(文遂)스님은 지난날 [수능엄경(首楞嚴經)]을 연구하였다. 스님을 뵙고는 자기가 해왔던 공부가 經典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이야기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능엄경에는 여덟 가지 환원하는 이치(八還)*가 있지 않던가?"

"그렇습니다."

"밝음은 어디로 환원되는가?"

"밝음은 해로 환원됩니다."

"해는 어디로 환원되는가?"

문수스님은 멍하니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그가 주해한 글을 불사르도록 훈계하니, 그 일을 깊이 간직하고 법문을 청하여 비로소 알음알이를 떨어버리게 되었다.

 

*8(八還) : 능엄경에서는 현상계의 대표적인 것 8가지를 들어 그것들의 제1원인을 추적하여 환원하는 이치를 설하고 있다. 즉 밝음은 해에, 어둠은 깜깜한 밤에, 뚫림은 문에, 막힘은 담장에, (: 능엄경 본문에서는 을 듣고 緣慮하는 마음을 말함)은 분별(分別), 텅 빈 것은 허공에, 뿌연 것은 티끌에, 맑은 것은 갬에 환원될 수 있다고 한다.

 

 

(46) 3. 감변- (9)법안록

3. 감변 - (9)

 

활주(滑州) 위남(衛南) 현칙(玄則)스님이 처음 청봉(靑峯)스님을 뵙고 "무엇이 학인 자신입니까?"하고 물으니, "병정(丙丁)동자가 불을 찾는구나" 하였다.

 

그 뒤 스님을 찾아뵙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청봉스님에게서 옵니다."

"청봉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더냐?"

현칙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병정(丙丁)5(五行) 중 불()에 속합니다. 그런데 다시 불을 구하는 것은 마치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찾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어떻게 알겠느냐?"

"저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으니 스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가 묻거라. 내가 말해 주겠다."

그리하여 현칙 스님이 "무엇이 학인 자신입니까?" 하자, "병정동자가 불을 찾는구나"하였다.

현칙 스님은 말끝에 깨달았다.

 

 

(47) 3. 감변- (10)--법안록

3. 감변 - (10)

 

()스님이 곁에서 시봉할 때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를 떠나 어디를 갔다 왔느냐?"

"영남에 갔다 왔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괜히 숱하게 산 넘고 물 건넜습니다."

"숱하게 산 넘고 물 건넜다니, 괜찮았겠구나."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고 근 스님은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48) 3. 상당- (11)법안록

3. 상당 - (11)

 

귀종 현책(歸宗玄策)스님은 조주(曺州)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혜초(慧超)였는데 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혜초는 스님께 묻사오니,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가 혜초일세."

혜초는 여기서 딱 깨쳤다.

 

원오(?)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혜초가 바로 부처였기 때문에 법안스님이 그렇게 답변했다'하고, 어떤 사람은 '소타고 소 찾는 꼴이다'하며, 어떤 사람은 '질문한 곳이 바로 이것이다'라고들 하나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 렇게들 이해한다면 자기를 져버릴 뿐 아니라 옛사람을 매우 욕되게 하는 것이다."

 

설두스님은 偈頌으로 말하였다.

 

강에는 봄바람 일지 않고

자고새는 깊은 꽃 속에 울도다.

세 구비 높은 폭포에 고기가 용 되었는데

둔한 이는 아직도 밤에 못물 퍼내는구려.

江國春風吹不起 ? 啼在深花裏

三汲浪高魚化龍 ?人猶痴夜塘水

 

 

(49) 4. 거량 - (1)법안록

4. 거량 - (1)

 

옛날에 두 암주(菴主)가 암자에 살았는데, 열흘을 보지 않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위의 암주가 아래 암주에게 물었다.

"오래만이 오. 어디 가셨었습니까?"

"암자에서 무봉탑(無縫塔)을 조성하였소."

"저도 하나 조성하고 싶은데 사형께 본을 빌렸으면 합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다른 사람이 벌써 빌려가 버렸다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말씀하셨다.

"말해보라. 본을 빌렸겠느냐, 빌리지 않았겠느냐?"

 

 

(50) 4. 거량- (2)법안록

4. 거량 - (2)

 

옛날에 한 큰스님에게 한 스님이 "사자는 토끼를 잡는 데도 온 힘을 다하고

코끼리를 잡는 데도 온 힘을 다하는데, 온통 쏟는 그 힘이 무슨 힘인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묻자

그 큰스님은 "속일 수 없는 힘이로다." 라고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달리 말(別語)하였다.

"옛사람의 말씀을 모르는구나."

 

 

(51) 4. 거량 - (3) 법안록

4. 거량 - (3)

 

옛날에 큰스님 한 분이 암자에 살면서 문에다가 '마음'이라 써 놓고 창에도 벽에도 다 '마음'이라 써 두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문에다가는 다만 ''이라 쓰고, 창에는 '', 벽에는 ''이라고만 쓰면 될 것을."

현각(玄覺)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문에도 ''이라 쓸 필요가 없고, 창에도 ''이라 쓸 필요가 없으며, 벽에도 ''이라 쓸 필요가 없으니 글자가 뜻하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52) 4. 거량- (4) 법안록

4. 거량 - (4)

 

옛날에 한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한 뙈기 밭(田地 : )을 물려준 지가 오래 되었구나.

나는 그때부터 그대가 잘 개간해 주기를 기다렸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나도 앉은 자리에서 그대가 개간해 주기를 기다리겠다.

무슨 도리라도 있느냐. 무엇이 가깝고, 무엇이 멀더냐.

잘 재서 판단해 보아라."

 

 

(53) 4. 거량- (5) 법안록

4. 거량 - (5)

 

옛날에 한 큰스님이 童子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法度라고는 전혀 몰랐다. 하루는 행각승 하나가 찾아와 童子에게 禮儀를 가르쳤다. 느지막이 큰스님이 외출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가서 問安을 드리자, 큰스님은 괴이하여 童子에게 물었다.

"누가 너에게 가르쳐 주더냐?"

"큰방 아무개 스님입니다."

 

큰스님은 그 스님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그대는 남의 집에 행각하면서 이 무슨 망상이오. 童子2, 3년 데리고 있으면서 행여 라도 제 스스로 가련한 놈이 될까 하였는데 누가 그대더러 童子를 망가뜨리라 하였소. 속히 짐을 싸고 떠나시오."

그리하여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저녁 무렵에 쫓겨나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이를 들려주시고는 이렇게 따져 물었다().

"옛사람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주신 家風이 정말 이상하구나. 말해보라. 그 속셈이 무엇이었겠는가?"

 

 

(54) 4. 거량 - (6) 법안록

4. 거량 - (6)

 

어떤 사람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등에 불이 켜졌습니까?"

"장명등(長明燈)에 켜졌다."

"언제 켰습니까?"

"작년에 켰다."

"장명등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장경(長慶)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그대가 남에게 속지 않는 줄 알았을 텐데."

 

스님께서는 달리 말씀하셨다.

"영리한 사람이로군."

 

 

(55) 4. 거량 - (7) 법안록

4. 거량 - (7)

 

사주(泗州)에 있는 탑을 지키는 스님이 시간이 되어 탑문을 잠그자 어떤 사람이 묻기를, "3의 큰 스승이 무엇 때문에 弟子에게 갇힐까요?" 하니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弟子도 갇혔고, 큰 스승도 갇혔구나."

 

 

(56) 4. 거량 법안록

4. 거량 - (8)

 

사주의 앞에서 한 스님이 절을 올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스님께선 매일같이 禮佛을 하시는데, 부처님을 보십니까?"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처님이라는 말을 무슨 의미로 썼는가?"

"마음 찰 만큼 하면 알 것이오."

 

 

(57) 4. 거량- (9) 법안록

4. 거량 - (9)

 

옛날 한 婦人이 시주하러 절에 들어와 대중의 나이에 따라 돈을 보시하자,

한 스님이

"저 불상 앞에도 한 푼 놓으시오" 하였다.

그러자 婦人

"저 불상은 나이가 얼마나 됩니까?"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58) 4. 거량 - (10) 법안록

4. 거량 - (10)

 

옛날에 도사(道士 : 老莊를 닦는 사람) 하나가 법당 앞에서 부처님을 등지고 앉자 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道士께선 부처를 등지지 마시오."

그러자 道士"스님이여, 經典'부처님의 몸은 法界에 가득 차 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어디에 앉아야 하겠소?" 하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대를 알겠다."

 

 

(59) 4. 거량 - (11)법안록

4. 거량 - (11)

 

복주(福州) 홍당교(洪塘橋) 위에 스님 네들이 쭉 앉아 있는데 한 관리가 "여기에도 부처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 스님들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대는 누구요?"

 

 

(60) 4. 거량 - (12)법안록

4.거량 - (12)

 

한 스님이 광남(廣南) 어느 암자에 살았는데, 임금이 사냥을 나왔다. 옆 사람들이 "大王이 오십니다. 일어나십시오." 하였더니, 스님은 "임금이 아니라 부처님이 온다 해도 일어나지 않겠다." 하였다.

 

왕이 물었다.

"부처님은 그대의 스승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스승이 왔는데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가?"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은혜 갚을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61) 4. 거량 - (13)법안록

4. 거량 - (13)

 

관리가 한 스님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무간(無揀: 이것저것 가림이 없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관리가 말하였다.

"모래 한 사발을 불쑥 스님께 드린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대의 공양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달리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것저것 가리는 짓이다."

 

 

(62) 4. 거량 - (14)법안록

4. 거량 - (14)

 

옛날 고려(高麗)에서 전당(錢塘)에 찾아와 觀音菩薩造成하고서 배에 실으려고 들어 올렸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명주(明州) 개원사(開元寺)에 봉안하기를 청하였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어디든지 다 몸을 나타낸다 하였는데, 觀音像이 어찌하여 高麗에 가지 않았겠는가?"

장경 혜릉(長慶慧稜)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에나 몸을 나투 시나 모습을 보는 데서 치우침이 나왔다."

 

스님께서는 달리 말씀하셨다.

"觀音을 알았군."

 

 

(63) 4. 거량 법안록

4. 거량 - (15)

 

세존께서 태어나시자마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더니 "하늘땅을 통틀어 내가 가장 높구나" 하셨는데, 이에 대해 운문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한 방에 쳐 죽여 개밥으로 주어, 天下太平을 도모했으리라."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운문의 기개가 대단하긴 하나 요컨대 佛法 道理는 없구나."

 

 

(64) 4. 거량- (16) 법안록

4. 거량 - (16)

 

장폐마왕(障蔽魔王)이 여러 권속들을 거느리고 千年을 금강제(金剛齊)보살이 나타나는 곳마다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보게 되어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 머물렀는가. 나는 千年을 그대가 나타나는 곳마다 따라다녔으나 보지 못하였다."

그러자 보살이 말씀하셨다.

"나는 머묾 있는 곳에 머물지도 않고 머묾 없는 곳에 머물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머물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장폐마왕은 금강제보살을 보지 못하고 따라다녔으나, 금강제보살은 장폐마왕을 보았겠느냐."

 

 

 

(65) 4. 거량 - (17)법안록

4. 거량 - (17)

 

초조(初祖) 가섭존자가 하루는 진흙을 밟자, 한 사미가 보더니 "존자시여, 무엇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하시는지요?" 하고 묻자

가섭존자는

"내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해 해주겠느냐" 하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진창으로 확 끌어당겼을 텐데."

 

 

(66) 4. 거량 - (18)법안록

4.거량 - (18)

 

육조(六祖)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나에게 무엇이 하나(一物) 있는데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앞뒤도 없다.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때 하택 신회(荷澤神會 : 670 ~ 762)스님이 나와서 "그것은 모든 根源이며, 저 신회의 佛性입니다" 하자 육조스님은 한 방 후려치면서 말하였다.

"이 말 많은 사미(沙彌), 내가 무엇(一物)이라고 한 것도 틀렸는데 어떻게 하물며 本源이니 佛性이니 하겠느냐.

네놈이 뒷날 설사 개당(開堂)한다 해도 지해종사(知解宗師)가 될 뿐이리라."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남에 대해 예언한 것이 결코 틀리지 않다.

요즈음도 지해(知解)를 내세우는데 하택이 장본인이다."

 

 

(67) 4. 거량 - (19) 법안록

4.거량 - (19)

 

한 스님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 677 ~ 744) 스님에게 물었다.

"거울이 형상을 만들고 형상이 만들어진 뒤에는 그 빛은 어디로 갑니까?"

"스님 동자 때의 모습은 어디에 있소?"

 

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무엇이 스님이 이룬 거울의 형상이요?"

 

 

(70) 4. 거량 - (20) 법안록

4.거량 - (20)

 

서당 지장(西堂智藏 : 735 ~ 814) 스님이 길에서 天子使臣을 만나 점심을 먹던 차에 나귀 우는 소리를 들었다.

使臣"두타(頭陀)시여" 하여 서당스님이 머리를 치켜들자, 나귀를 가리켰다.

이번에는 서당스님이 使臣을 가리켰더니, 그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시고는 달리 말씀하셨다.

"나귀 울음소리를 냈을 뿐이다."

 

 

(71) 4. 거량 - (21) 법안록

4. 거량 - (21)

 

등 은봉(鄧隱峯)스님이 양주(襄州) 파위의당(破威儀堂)에 살면서 속옷만 입고 다담이 돌 옆에서 방망이를 들고 말씀하셨다.

"말을 한다면 때리지 않겠다."

대중들이 말이 없자,

등 은봉스님은 그 자리에서 한 방씩 후려쳤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등 은봉은 정말 이상하구나.

때렸는데 맞지 않았구나."

다시 말씀하셨다.

"그때에 온 대중이 나왔는데, 우연한 일이었다."

 

 

(72) 4. 거량 - (22) 법안록

4. 거량 - (22)

 

양 좌주(亮 座主 :좌주는 강사를 높여 부르는 말)가 마조(馬祖)스님을 참례하자, 마조스님이 물었다.

"무슨 經典을 강의하는가?"

"[심경(心經)]을 강의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는가?"

"마음을 가지고 강의합니다."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은 솜씨 좋은 광대와 같고, 意識은 그것을 부리는 자와 같은데 어떻게 經典을 강의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의하지 못한다면 虛空이 강의를 한단 말씀입니까?"

"도리어 虛空이 강의를 하는군."

양좌주가 옷소매를 떨치며 나가자, 마조스님이 "좌주"하고 불렀다. 양좌주가 머리를 돌리자,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서 늙도록 이것뿐이라네."

양 좌주는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스님께서는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들 옛사람이 그러한 慈悲로 사람을 가르쳤던 일을 보라. 요즈음은 어떻게 理解하여야겠느냐. 여기서 머리를 모으고 妄想을 부리지 말라."

 

 

(73) 4. 거량 - (23) 법안록

4. 거량 - (23)

 

부용(芙容)스님이 귀종(歸宗)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내가 말해준다면 네가 정말 믿겠느냐?"

"스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떻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대이니라."

"어떻게 간직(保任)해야 합니까?"

"눈병이 한번 나면 허공 꽃이 어지럽게 어른거린다."

스님께서는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만일 뒷말이 없었다면 무엇을 보고 귀종스님인 줄 알았으랴."

 

 

(74) 4. 거량 - (24) 법안록

4. 거량 - (24)

 

남전(南泉 : 748 ~ 834)스님이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운력을 하려는가?"

"연자방아를 돌리렵니다."

"연자방아는 그대를 따라 돌겠지만 연자방아의 중심에 세운 나무는 움직이지 못할걸."

유나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돌지 않겠군요."

 

 

(76) 4. 거량 - (25)법안록

4.거량 - (25)

 

염관(鹽官 : ? ~ 843)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虛空으로 북을 삼고 수미산으로 북채를 삼는다면 어떤 사람이 칠 수 있겠느냐?"

대중은 대꾸가 없었다. 한 스님이 이를 남전스님에게 말씀드리자, 남전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왕 노사(王老師 : 남전)는 부서진 북을 치지 않겠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셨다.

"왕 노사도 치지 못하는군."

 

 

 

(77) 4. 거량- (27) 법안록

4. 거량 - (27)

 

대자 환중(大慈 <?>: 780 ~ 862) 스님에게 한 스님이 떠나겠다고 인사하자 이렇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나도 데려갈 수 있느냐?"

"스님 아니라 스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 할 것입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이 가신다면 제가 삿갓을 가져오겠습니다."

 

 

(78) 4. 거량 - (28)법안록

4. 거량 - (28)

 

대자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어떻게 대답하는 줄을 모르겠고 다만 병통을 알아볼 수는 있다."

그때 한 스님이 나오자 대자스님은 방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대중들이 말하기를 '병이 뻔히 보이는데도 모르는구나.' 한다."

 

 

(79) 4. 거량- (29) 법안록

4. 거량 - (29)

 

한 스님이 대주 혜해(大珠慧海)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니,

"이렇게 마주하고 法談을 나누는 이가 부처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하자 大衆이 모두 멍하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그렇다 해도 전혀 빗나간 얘기다."

 

 

(80) 4. 거량- (30) 법안록

4. 거량 - (30)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이 조주스님에게 말하였다.

"저는 장안(長安)에서 여기까지 주장자를 비껴 지고 왔는데 한 사람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주스님이 "그대의 주장자가 짧은 모양이군."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이 이를 들려주며 대신 깔깔 웃었다.

 

 

(81) 4. 거량 - (31) 법안록

4. 거량 - (31)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世界破壞될 때에는 이 性品은 부서지지 않는다.'고 하셨다던데, 무엇이 그 性品입니까?"

"사대오음(四大五陰)이라네."

"그것도 부서지는 것인데요. 무엇이 그 性品입니까?"

"사대오음이라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인가 둘인가. 부서지는 것인가 부서지지 않는 것인가? “

, 어떻게 理解하겠느냐. 한번 판단해 보라.

 

 

(82) 4. 거량 - (32) 법안록

4. 거량 - (32)

 

비마암(魔菴)스님은 항상 나무집게 하나를 가지고 있다가 납자들이 찾아와 절하면 그때마다 목덜미를 집으면서 말하였다.

"말을 한다 해도 집어 죽일 것이며, 말을 하지 못한다 해도 집어 죽일 테다.

얼른 말하라. 얼른 말해."

학인들 중에 대꾸하는 사람이 적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살려 주십시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84) 4. 거량 - (33) 법안록

4. 거량 - (33)

 

덕산(德山)스님이 시중하였다.

"오늘 밤에는 물음에 답하지 않을 것이니, 묻는 사람은 몽둥이 30대를 때리겠다."

그때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자 덕산스님이 그 자리에서 후려쳤더니, 그 스님이 말하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때리십니까?"

그러자 덕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디 사람이냐?"

"신라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배에 오르기 전에 30대쯤 맞았어야 좋았을 것을."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형편없는 덕산스님의 말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구나."

 

 

(84) 4. 거량 - (34) 법안록

4. 거량 - (34)

 

한 스님이 설봉(雪峯 : 822 ~ 908)스님에게 물었다.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워도 禪問에는 맞지 않습니다. 스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봉스님이 불자를 세우자 그 스님은 머리를 싸쥐고 나갔는데, 설봉스님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이 대장 한 사람을 보라."

 

 

(85) 4. 거량 - (35)법안록

4. 거량 - (35)

 

설봉스님이 경청(鏡淸 : 864 ~ 937)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큰스님 한 분이 官吏를 맞이하여 큰 방을 안내하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다 佛法을 배우는 스님들이요' 하자, 官吏'금가루가 귀하긴 하나 그래서 어찌하겠소.'라고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그러자 경청스님께서 대신 말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벽돌을 던지고 옥()을 갖습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셨다. "官吏는 어찌 귀만 중요하게 여기고 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86) 4. 거량 - (36)법안록

4. 거량 - (36)

 

한 스님이 협산(夾山 : 805 ~ 881)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협산의 境界입니까?" 하자,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산으로 돌아가고, 새는 푸른 바위 앞에서 떨어진 꽃잎을 물고 오네" 하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나는 20년 동안 境界를 말하는 줄로만 생각해왔다."

 

 

(87) 4. 거량 - (37) 법안록

4. 거량 - (37)

 

용아 거둔(龍牙居遁 : 835 ~ 923) 스님이 덕산스님에게 묻기를,

"제가 막야( )의 보검을 차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 할 땐 어찌 하시겠습니까?" 하니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가까이 가면서 '!' 하고 소리쳤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셨다.

"어디다 손을 대려는가?"

 

 

(88) 4. 거량 - (38) 법안록

4. 거량 - (38)

 

투자(投子)스님이 한 스님에게 "오랫동안 소산(疏山)스님의 생각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바로 이것이 아니냐?"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전부터 점점 더 스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89) 4. 거량 - (39) 법안록

4. 거량 - (39)

 

다시 어떤 스님이 묻기를,

"한결같은 물인데, 어째서 바닷물은 짜고 강물은 싱거울까요?" 하니

"하늘에는 별, 땅에는 나무라네"하였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달리 말씀하셨다.

"서로 매우 다른 것 같다."

 

 

(90) 4. 거량 - (40)법안록

4. 거량 - (40)

 

또 협산 스님이 한 스님에게 "어디서 오느냐?" 하니,

"이산 저산 다니며 祖師를 찾아뵙고 옵니다." 하였다.

협산 스님이 "祖師는 이산 저산에 있질 않다"하니,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祖師를 아시는군요."

 

 

(91) 4. 거량 - (41)법안록

4. 거량 - (41)

 

백마 담조(百馬曇照)스님이 평소에는 "즐겁구나, 정말 즐거워" 하였는데 임종할 때 가서는 "괴롭다 괴로워" 하면서 "염라대왕이 와서 나를 잡아간다!" 고 소리치자, 원주(院主)가 물었다.

"언젠가 절도사(節度使)가 스님을 물속에 밀어 넣었을 때도 까딱 안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퇴침(枕子)을 들고 말하기를,

"말해보라. 그 때가 옳으냐. 지금이 옳으냐?" 하니 원주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럴 땐 귀를 막고 나오면 된다."

 

 

(92) 4. 거량 - (42)법안록

4. 거량 - (42)

 

강남의 상빙연사(相憑延巳)가 몇몇 스님들과 종산(鐘山)에 유람하던 차에

한 사람 마실 정도의 샘에 이르자 물었다.

"한 사람 마실 샘으로 많은 사람이 어떻게 배를 채울 수 있겠소?"

한 스님이 대꾸하였다.

"부족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연사는 인정하지 않고 달리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부족하더냐?"

 

스님께서 달리 말씀하셨다.

"누가 부족한 사람이냐?"

 

 

(93) 4. 거량 - (43)법안록

4. 거량 - (43)

 

홍주(洪州) 태수(太守) 송령공(宋令公)에게 하루는 대령사(大寧寺) 大衆이 두 번째 자리(第二座)에서 설법(開堂)해 달라고 청하자, 宋公은 말하였다.

"왜 첫 번째 자리에서 해달하고 하지 않소?"

大衆들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이처럼 수고롭지 않다."

 

 

(94) 4. 거량 - (44) 거량

4. 거량 - (44)

 

용아스님이 취미(翠微)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法席을 찾아온 뒤 늘 상당하였으나 아무 도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마음으로 그러시는지요?" 그러자 취미스님이 "무엇을 의심하느냐?" 하였다.

 

용아스님이 그 뒤 동산(洞山)에 가서 그대로 말하자, 동산스님이 "어찌 나를 의심하는가?" 하였다.

그 뒤 다시 법안(法眼)스님에게 묻자, 스님께서는 "祖師가 오셨구나"하셨다.

 

설두 중현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두 노스님은 이 납승에게 한 방 먹었고 법안스님만이 그와 동참하였다. 가령 이 설두의 문하라면 방망이로 때려 쫓아냈으리라."

 

 

(95) 4. 거량 - (45) 법안록

4. 거량 - (45)

 

북 원통(北院通)스님이 협산 스님에게 물었다.

"눈앞에 아무 도 없고 意識은 눈앞에 있네.

눈앞의 이 아니므로 보고 들을 수 없네.

目前無法 意在目前

不是目前法 非耳目之所到

라고 하였으니, 스님의 말씀이 아니신지요?"

"그렇지."

그러자 북원스님이 선상(禪床)을 번쩍 들어 뒤엎어버리고는 차수(叉手)하고 서 있었다. 협산 스님이 일어나 주장자로 한 번 후려치자 북원스님은 바로 내려갔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북원스님은 어째서 禪床을 번쩍 들어 뒤엎어버리고 바로 내려가지 않고 기어코 협산 에게 한 대 맞고 내려갔을까?

그 속셈이 무엇이겠는가?"

 

(96) 4. 거량 - (46)법안록

4. 거량 - (46)

 

수산주(修山主)스님이 징원(澄源)스님에게 물었다.

"건달바왕이 음악을 연주하면 수미산이 기우뚱하고 바다에선 파도가 높이 일며, 가섭은 춤을 춘다 하였는데 어떻게 理解해야 합니까?"

"가섭은 과거 세상을 음악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습기(習氣)를 아직 없애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수미산이 기우뚱하고 파도가 높이 이는 것을 어떻게 理解해야 합니까?"

징원 스님은 그만두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 習氣이다."

 

 

(97) 4. 거량 - (47) 법안록

4. 거량 - (47)

 

스님께서 수산주스님에게 물으셨다.

"앙산(仰山)스님은 네 가지 감관이 툭 틔어 눈으로 볼 때도 온 몸이 귀이고,

귀로 들을 때도 온 몸이 눈이었다던데, 사형께서는 어떻게 理解하시오?"

"눈 속이 귓속이 되어 쓰이고, 귓속이 눈 속이 되어 쓰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망상을 놀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님이 앞에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들려주자 수산주스님은 그제서 깨달았다.

 

 

 

(98) 5.천화

5. 천화

 

스님은 오랫동안 장경 혜릉(長慶慧稜)스님에게서 공부하였는데, 뒤에 가서는 지장(地藏)스님의 을 이었다. 장경스님 회상에는 자소(子昭)라는 스님이 있었다. 평소에 스님과 古今의 말씀을 따져 結論을 얻곤 하였는데, 스님의 소문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분해하였다. 그 문제를 따지려고 하루는 대중을 거느리고 마음먹고 무주(撫州)로 떠났다.

스님께서는 미리 알고, 大衆과 마중을 나가 특별히 대접을 하였다. 손님자리 주인의 자리에 각자 불자를 하나씩 걸어놓고 차를 마시는데, 자소스님이 갑자기 얼굴색을 붉히며 높은 소리로 물었다.

"능인스님께선 개당을 하셨는데, 누구의 을 정통으로 이었소이까"

"지장스님 을 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장경선사(先師)를 그토록 외롭게 하셨소이까?"

나와 함께 장경스님 회상에서 수십여 년 간 古今하며 지낼 때 서로 틈이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갑자기 지장스님의 을 이었소?"

"제가 장경스님이 던진 因緣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물어보시오."

"장경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萬象 가운데 우뚝이 몸을 드러낸다.'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자소스님이 불자를 세우자, 스님은 이렇게 꾸짖었다.

"수좌여, 그것은 그 해에 배웠던 것이요. 따로 어떻게 해보시겠소?"

자소스님이 말이 막히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萬象 가운데 우뚝이 몸을 드러낸다 하였는데, 萬象을 없앤 것이오, 萬象을 없애지 않은 것이오?"

"없애지 않았습니다."

"두 개로군요."

그때 그를 따라온 大衆들이 異口同聲으로 말하였다.

"萬象을 없앴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萬象 가운데 우뚝이 몸을 드러낸다. (: 싹 쓸어버리는 소리)!"

자소스님은 온 대중과 함께 수치를 당하고 물러났다.

 

스님은 그가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수좌여, 부모를 죽인 懺悔가 통하지만 大般若誹謗는 진실로 懺悔하기 어렵다오."

자소스님은 끝내 대꾸가 없었다. 이로부터 스님에게 참례하여 자기의 견처를 밝히긴 하였으나, 다시 개당하진 않았다.

스님의 因緣이 금릉(金陵)에 닿아 큰 도량에 세 번 앉아서 아침저녁으로 禪風을 폈다. 여러 叢林에서 모두 그 家風敎化를 따랐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스님의 을 흠모하는 자들이 먼 길을 찾아와 양자강 밖에서 현사(玄沙)스님의 정통적인 가르침이 다시 펼쳐졌다.

스님은 根器를 알아보고 상대에 맞추어 막힘과 迷惑을 깨주었다. 제방의 선()을 가르치니 혹은 입실(入室)하여 자기 見解를 밝히거나 혹은 묻고 을 청하였는데, 모두 병에 따라 약을 써서 根器대로 깨친 자들은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라 현덕(縣德) 5년 무오(戊午) 717일에 병을 보이자, 임금이 몸소 예의를 갖추어 문병하였다. 윤달 5일에 머리 깎고 목욕하고 大衆에게 말씀을 마치자 가부좌하고 가시니, 얼굴과 모습은 살아있는 듯하였다. 나이는 74, 법랍은 54세였다.

성 안의 모든 절에서는 법도를 갖추어 맞이하였으며, 공경(公卿) 이건훈(李建勳) 이하는 소복(素服)을 하였다. 스님의 온전한 몸을 강녕현(江寧顯) 단양(丹陽)에 모시고 탑을 세웠으며, 시호는 대법안선사(大法眼禪師), 탑명은 무상(無相)이라 하였다.

그 뒤 이국주(李國主)가 보자원(報慈院)을 짓고, 스님의 문도로서 깊이 깨치신 행언(行言)스님에게 법을 펴도록 명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대지장대도사(大智藏大導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99) 종문십규론 서법안록

종문십규론 서

 

나 문익(文益)은 어려서 世俗의 속박을 떠났고, 자라서는 30년을 법요(法要)를 듣고 善知識을 두루 참례하였다. 그러나 祖師의 물줄기가 흘러 넘쳐 남방에서 가장 번창했지만 通達한 사람은 사실 드물었다.

이치()로는 단박 깨친다 하겠으나 사실()로는 점진적으로 깨달아 가야 한다. 禪門에서는 본디 다양한 방편으로 敎化를 세우지만 상대를 지도하고 衆生을 이익하게 한다는 결론에서는 하나의 法道이다.

혹 경론(經論)을 섭렵하지 않은 이들은 알음알이(識情)를 깨뜨리기 어렵다. 그들은 정견(正見)을 삿된 길로 몰고 異端正統으로 만들어 後學들을 허망하게 生死輪回로 들어가도록 그르쳐 버린다.

 

나는 속으로 깊이 헤아리고서 막아보려 하였으나 어찌 해 볼 수가 없었다. 마치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사마귀의 심정같이 쓸데없는 패기였고, 강물을 마시려는 새앙 쥐의 꾀와도 같아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말 없는 가운데서 할 수 없이 말을 드러내고 없는 가운데서 억지로 을 두어 선가(宗門)에서 지적되는 病痛을 열 가지 조목으로 간략히 분류하여 모든 虛妄한 말을 밝혀 시대의 폐단을 고쳐보려고 조심스럽게 쓴다.

 

 

(100) (1) 자기 마음자리는 밝히지 못하고 망령되게 다른 사람의 스승 노릇을 하다

(1) 자기 마음자리는 밝히지 못하고 망령되게 다른 사람의 스승 노릇을 하다

 

생각하건대 마음자리 법문(心地法門)參究根本이다.

마음자리란 무엇인가? 여래께서 크게 깨치신 性品이다. 그러나 시작 없는 옛 부터 한 생각 뒤바뀌어 事物을 자기로 착각하며 貪慾이 불길같이 타올라 生死에 떠다닌다. 각성(覺照)이 어두워지고 무명(無明)이 덮어 업륜(業輪)이 밀고 굴러나가면서 자유롭지 못하니, 일단 사람의 몸을 잃으면 긴 세월 동안 돌이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어 많은 방편문을 베푸셨으나 意味에 막히고 말을 따지면서 다시 상견(常見).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祖師께서 이를 불쌍히 여기고 심인(心印) 하나만을 전하여, 단계적인 修行을 거치지 않고 단박에 凡夫聖人을 뛰어넘게 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깨달아 疑惑의 뿌리를 영원히 끊게 하였을 뿐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태만히 하고 쉽게 여겨, 총림에 들어오긴 했어도 열심히 참구하겠다는 마음을 게을리 한다. 설사 여기에 마음을 두는 정도는 되었다 해도 선지식을 잘 가려 찾지 않아서 삿된 스승의 허물과 오류로 둘 다 함께 종지를 잃는다.

육근(六根). 육진(六塵)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삿된 見解를 내므로 魔群境界로 들어가 본심(正因)을 완전히 잃는다. 그리하여 주지하는 일만을 급선무로 여기며 외람되게 선지식이라 자칭할 줄만 알 뿐이다.

그렇게 헛된 명예를 세상에 날림을 중요하게 여기니 몸에 쌓여가는 을 어찌 다 할 수 있겠는가. 後學을 귀 먹고 눈멀게 할 뿐만 아니라, 校風을 피폐시킨다.

높고도 드넓은 법왕(法王)의 자리에 올라 도리어 뜨겁게 달궈진 무쇠 평상에 눕게 되며, 순타(純陀)가 주는 최후의 供養을 받고는 잠깐 있다가 끓는 구리물을 마시게 된다. 그때는 두려움에 떨며 편안하게 여길 곳이 없으니 대승(大乘)을 비방한 죄는 그 果報가 적지 않을 것이다.

 

 

(101) (2) 무리지어 가풍을 지키느라 논의가 통하지 않다

(2) 무리지어 가풍을 지키느라 논의가 통하지 않다

 

생각하건대 祖師가 서쪽에서 여기까지 오신 것은 전할 만할 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 마음을 그대로 가리켜 性品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어찌 숭상할 만한 家風이란 것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뒤에 가서는 대대로 宗師들이 敎化를 달리 세우게 되었고, 이윽고는 서로가 자기 내력을 따르게 되었다. 우선 혜능(慧能). 신수(神秀) 두 대사는 원래 한 祖師 밑에서 見解가 달랐다. 그러므로 세상에선 남종(南宗). 북종(北宗)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혜능(慧能)이 가신 뒤 행사(行思 :청원). 회양(懷讓 :남악) 두 대사가 나와 敎化를 이었다. 행사스님에게서 희천(希遷 :석두)스님이 배출되고 회양스님에게서 마조(馬祖)스님이 나와 강서(江西). 석두(石頭)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두 갈래로 내려오면서 각자 줄줄이 파를 나눠 모두가 한 지역씩을 차지하였는데, 그 시작되는 원류를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덕산(德山). 임제(臨濟). 위앙( ). 조동(曹洞). 설봉(雪峰). 운문(雲門)에 와서는 각자 높고 낮은 品格대로 家風을 세워 을 폈다.

그러다가 계승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자손들이 종파를 지키고 祖師에 따라 무리를 짓느라 진실 된 이치(眞際)에 근원을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끝내는 많은 갈래를 내어 창과 방패처럼 맞서 공격하며 흑백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슬프다! 는 정해진 방향이 없고 의 물줄기는 똑같은 맛임을 전혀 몰랐다 하겠으니, 虛空에다 색을 칠하고 철석(鐵石)에다 바늘을 던지는 격이다.

싸움을 神通이라 여기고 입만 나불거리면서 그것을 三昧라고 하여 是非가 시끄럽게 일고, 너다 나다 하는 생각(人我見)이 산처럼 높다.

 

그리하여 분노가 일면 그것이 아수라(阿修羅)의 견해가 되고 끝내 외도(外道)를 이룬다. 만일 선량한 벗을 만나지 못하면 迷惑의 나루터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 비록 선인(善因)을 심었으나 악과(惡果)를 부른다.

 

 

(102) (3) 강령을 제창하면서 맥락을 모르다

(3) 강령을 제창하면서 맥락을 모르다

 

생각하건대 禪門을 표방하고 법요(法要)를 제창하려 하면서 맥락을 모르면 모두가 망령되게 이단(異端)이 되고 만다. 그 사이에는 먼저 표방하거나 뒤에 제창하기도 하며 佛法을 설명하기도 하고 기봉(機鋒)을 단박에 꺾기도 한다.

祖師의 법령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살리고 죽임이 손아귀에 있어서 혹은 천 길 절벽에 선 듯 물샐 틈 없기도 하고 혹은 자재한 살림을 잠깐 허락하여 물결을 따르기도 한다.

마치 왕이 칼을 어루만지면서 자유로워진 것을 다행으로 여길 때처럼, 그때그때 쓰면서 주었다 뺏었다 함이 몸에 차고 부리는 듯하다. 파도가 날듯 山岳이 서 있듯 하고 번개가 구르듯 바람이 달리듯 하며, 큰 코끼리 왕이 유희하고 진짜 사자가 포효하듯 한다.

 

그러나 자기의 能力을 헤아리지 못하고 쓸데없이 남의 말을 훔쳐, 놓아 주는 것만 알 뿐 거둘 줄은 모르고 살리기만 하고 죽일 줄은 몰라, ()인지 낭군인지를 분별 못하고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옛사람을 모독하고 종지를 매몰하여 사람마다 알음알이 속에서 헤아리고 낱낱이 오음십팔계(五陰十八界) 안에서 찾는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깨달음인 줄을 모르고 가짜반야(相似般若)를 이룰 뿐이니, 머물 것 없는 근본에서 법당(法幢)을 세우고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펴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듣지도 못했는가. 운문(雲門)스님께서 "온 나라를 통틀어 話頭 드는 사람 하나를 찾아보아도 찾기 어렵다"라고 하셨던 것을.

또 듣지도 못했는가. 황벽(黃檗)스님께서 "마대사(馬大師)80여 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으나 물었다 하면 모조리 구구한 경지일 뿐이고, 유일하게 여산(廬山)스님이란 분이 그래도 약 간 아는 편이다"라고 하셨던 것을.

 

이로써 이 자리에 앉아 법령을 드러내고 강령을 제창할 줄 알면 바로 완성된 종장(宗匠)이라는 점을 알겠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듣지도 못했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싹을 보면 토질을 알고 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을 알아내니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드날리기만 해도 벌써 간파해 버린다." 라고 했던 것을.

하물며 남의 모범이 되어서 삼가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3) (4) 대답에서 경계를 보지 못하고 종안(宗眼)도 없다

(4) 대답에서 경계를 보지 못하고 종안(宗眼)도 없다

 

생각하건대 宗師라면 우선 삿됨과 바름을 분별해야 한다. 삿된지 바른지가 판가름 났으면 이제는 境界를 분명히 해야 한다.

또 말을 할 때는 종지를 보는 안목을 겸하여 응수하는 기봉이 각각 서로를 져버리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말 속에서 사사로움이 없다고는 하나 역시 말을 빌려 그 속에서 정확한 뜻을 분별해야 한다.

 

조동(曹洞)은 동시에 북치고 노래하는 것으로 작용을 설명하였고, 임제(臨濟)는 자재하게 뒤바뀌는 것으로 본체를 설명하였다. 또한 소양 운문(韶陽雲門)은 하늘땅을 덮고 많은 흐름을 끊었다 하였으며, 위앙( )은 둥글고 모난 것이 가만히 계합한다 하였다.

그것은 마치 골짜기가 소리에 대답하고, 관문에서 부절(符節)이 맞듯 하여 비록 법식에는 차별이 있었으나 원융하게 회통하는 데 있어서는 막힘이 없었던 것이다.

 

요즈음, 宗師는 바탕을 잃고 學人은 배울 곳이 없어 너다 나다 하는 생각으로 기봉을 다투고 生滅을 얻을 만한 그 무엇이라고 執着한다. 그러니 衆生을 지도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겠으며, 삿됨을 타파하는 智慧를 얻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과 할()을 어지럽게 써대면서 "덕산(德橋)과 임제(臨濟)를 참례했다"고 자칭하며, 원상(圓相)을 서로 꺼내면서 "위산( ).앙산(仰山)을 심오하게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답에서 이미 종지를 결판내지 못했는데 작용할 때라고 어떻게 요긴한 안목을 알겠는가. 여러 小人들을 속이고 聖賢을 기만하여,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現世에서 罪報를 부른다.

 

그러므로 일숙각(一宿覺)이 말하기를 "無間地獄業報를 부르지 않으려거든 如來의 바른 法輪을 비방하지 말라." 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은 무리들은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이니 그들은 단지 스승에게 받은 것을 탈취할 뿐 자기 見解라고는 도대체 없다. 붙들 만한 根本이 없어 업식(業識)이 망망하니 정말로 가련하다. 果報를 받아내기가 어렵겠구나.

 

 

 

(104) (5) 이사(理事)를 어그러뜨리고 청탁을 분간하지 못하다

(5) 이사(理事)를 어그러뜨리고 청탁을 분간하지 못하다

 

생각하건대 일반적으로 祖師와 부처의 종지는 이치()와 현상()을 동시에 갖춘다. 현상은 이치를 의지해서 성립하고 이치는 현상을 빌려 밝혀지니 이치와 현상은 눈과 발이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가령 현상만 있고 이치가 없다면 막혀서 통하지 못하고, 이치만 있고 현상이 없으면 어지럽게 퍼져 돌아갈 곳이 없다.

그것이 둘이 아니게 하고 싶은가. 중요한 점은 원융이다. 조동(曹洞)의 가풍에서는 편정(偏正)과 명암(明暗)을 시설하고, 임제(臨濟)는 빈주(賓主)와 체용(體用)을 세운다. 이렇게 방편을 세우는 일은 서로 다르나 맥락은 서로 통하여 다 받아들이므로 움찔했다 하면 모두 모인다.

 

또 법계관(法界觀)에서도 이사(理事)를 빠짐없이 하여 自性이 색()이니 공()이니 하는 것을 끊었다. 그것은 가없는 性品바다를 한 털끝에 받아들이고 지극히 큰 수미산을 겨자씨 하나에 간직하기 때문이다.

이는 聖人의 도량으로 그렇게 되게 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法 自體가 원래 그러한 것이며, 神通變化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본래면목(誕性)을 미루어 부합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데 붙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마음에서 지어내어 부처와 衆生이 모두 平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 그 뜻을 모르고 虛妄하게 하면 더러운지 깨끗한 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도 가려내지 못하여 자재(回互)한 데서 편(). ()이 막히고, 본래 그러한(自然)데서 채용이 뒤섞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를 한 도 밝히지 못하여 가느다란 티끌이 눈을 가렸다 하는 것이니, 자기 도 다 끊지 못하였는데 다른 사람의 을 어떻게 治療하겠는가. 매우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니 실로 작은 일이 아니다.

 

 

(105) (6) 수행을 거치지 않고 억측으로 고금의 말씀을 단정하다

(6) 수행을 거치지 않고 억측으로 고금의 말씀을 단정하다

 

생각하건대 叢林에 들어와 參究하는 납자라면 반드시 善知識을 선택해야 하며, 다음으로 道伴을 가까이 해야 한다. 善知識은 길을 가리켜 주는 일이 중요하고 道伴은 절차탁마 해주는 일이 소중하다. 자기 자신만 깨치려 한다면 무엇으로 後學을 열어주겠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드날리고 衆生을 이끌어 이롭게 하는 그 意圖가 어디에 있겠는가.

 

저 옛 스님들을 보라. 산에 오르고 바다를 건너면서 生死를 피하지 않았다. 한두 번의 起緣에 실낱만큼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반드시 결택하여 분명하게 확인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참과 거짓의 기준이 되고 人間. 天上의 안목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뒤에야 종지를 높이 제창하고 진실한 가풍을 널리 폈는데 옛 논의를 인용하여 따져 묻고 아직 깨닫지 못한 공안을 지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修行을 거치지 않고 古今을 억측으로 단정한다면 劍術을 배우지 않고 억지로 태아(太阿)의 보검으로 칼춤을 추며, 물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망령되게 깊은 물을 건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손을 다치고 발이 빠지는 근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잘 선택하는 자라면 물에서 우유만을 가려내는 거위 왕과 같으며, 잘 선택하지 못하는 자는 神靈 거북이가 발자국을 지우려는 격이다.* 하물며 그 사이에 맞고 안 맞는 境界와 자재한 말이 있는 경우 이겠느냐. 삶에서 나왔는가 하면 도리어 사지(死地)로 나아가고, 삶을 가지고 도리어 편문(偏門)에 붙이기도 한다.

미친 마음을 부려 그 마음으로 聖人의 뜻을 헤아리게 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만 가지로 敎化를 펴는 方便을 갖춘 일자법문(一字法門)의 요점에 있어서 랴. 이 점을 조심하지 않고 찾아오는 자들을 상대해서야 되겠는가.

 

* 거북이가 알을 낳아 모래 속에 숨기고, 알이 있는 곳을 감추기 위해 자기가 살던 곳으로 피해 도망가면서 꼬리를 끌어 자기의 발자국을 지우려고 하나 오히려 흔적이 더 크게 남은 것을 말한다.

 

 

(106) (7) 말만을 기억하여 그때그때 오묘한 작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7) 말만을 기억하여 그때그때 오묘한 작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하건대 般若를 배우는 사람에겐 누구나 스승의 이 있다. 스승의 을 얻었다면 대용(大用)이 실현되어야 비로소 조금은 가깝다 하겠다.

오직 스승의 法門을 지키면서 說明해 놓은 말만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빼어나게 깨달은 것이 아니라 알음알이(見知)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境界가 스승과 같으면 스승의 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고, 境界가 스승을 넘어서야만 스승의 가르침을 펼칠 만하다"라고 하였다. 또한 육조(六祖)가 도명상좌(道明上座)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해준 말은 모두가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니, 비밀스러움은 그대 쪽에 있다" 하였으며, 암두(岩頭)스님은 설봉(雪峯)스님에게 말하기를, "낱낱이 자기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알겠다. 말이나 방. 할이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니, 종횡으로 奧妙作用을 어찌 남에게서 깨닫기를 바라겠는가.

부정한다면 황금과 구슬도 그 빛을 읽고 긍정한다면 기와부스러기조차도 빛을 더한다. 하려면 하여 理致現象을 동시에 닦고 作用할 때 가서 作用하여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아야 하니, 이것은 장부의 일이지 아녀자의 일이 아니다.

 

말만 받아들이고 意味에 막혀 宗風에 대하여 입을 나불거리면서 奧妙하게 理解했다 여기는 것을 절대로 하지 말라. 하물며 方便을 빌려서 깨치거나 헤아려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이런 경우에 있어서랴.

知慧는 드넓은 世界를 벗어났고 精神은 헤아릴 수 없는 境地에 계합하니 용상(龍象)의 발자국을 나귀가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7) (8) 경전에 통달하지 못하고서 마구 인용하여 증거를 대다

(8) 경전에 통달하지 못하고서 마구 인용하여 증거를 대다

 

생각하건대 佛法을 펼치려고 經典法門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우선 부처님의 意圖를 밝혀야 하고 다음으로 祖師의 마음에 契合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펼쳐 성근지 촘촘한지를 比較해서 헤아릴 수 있다. 理致를 알지 못하고서 家風만을 지키느라 經論을 마구 引用하여 증거를 든다면 스스로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그런데 수다라의 비장(秘藏)이란 모두 자취를 가리키는 것이며, 원돈상승(圓頓上乘)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가령 백 천 가지 삼매와 항하사만큼의 法門理解한다 해도 자신을 더욱 수고롭게 할 뿐, 그 일과 상관이 없다. 하물며 나아가 방편(權敎)을 싸잡아 진리(實敎)로 귀결시키고, 止 末을 거두어 根源으로 돌아가게 함이겠는가.

 

眞實하고 淸淨法界 속에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는데, 더구나 한 도 버리지 않는 불사(佛事)를 짓는 측면에 있어서라. 사실대로 죄상을 판결하고 바탕에 입각하여 갈래를 푸는 정도를 면치 못한다면 우리 祖師 門衆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經典에 능통한 사람과 옛 것에 박식한 眞實 된 부류가 많다. 그들은 칼끝 같은 말재주를 과시하고 창고에 쌓인 곡식처럼 풍부한 學文에 치달린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니 말로는 펴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껏 기억해 왔던 말들이 모조리 남의 돈을 센 격이니, 門衆에 다른 점이 있음을 비로소 믿어야만 교외별전(敎外別傳)인 것이다.

後學들은 스스로를 매몰시키지 말아야 하니 남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宗風을 욕되게 할 것이다. 익히고 닦을 필요가 없다하여 조그마한 것을 얻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止 末도 깨닫지 못했는데 根本을 어떻게 밝히겠는가.

 

 

(108) (9) 운율도 맞추지 않고 이치에도 통달하지 못했으면서 게송 짓기를 좋아한다.

(9) 운율도 맞추지 않고 이치에도 통달하지 못했으면서 게송 짓기를 좋아한다.

 

생각하건대 종문에서 偈頌을 짓는 격식은 단조, 장조, 혹은 요즈음 가락, 옛 가락 등 여러 가지다.

성색(聲色)을 빌려 작용을 나타내는데, 현상을 통해서 本體를 설명하기도 하고 理致에 입각해서 진제(眞諦)하기도 하며 現象을 거슬러 世俗을 바로잡기도 한다.

이렇게 취향에 차이가 있긴 하나 감흥을 일으킴이 다른 데야 어찌하랴. 그러나 모두 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드러내고 부처님의 三昧를 함께 찬탄한 것이다. 後學을 고무하고 선현(先賢)을 풍자하는 데에는 글을 통해서 뜻을 주장하니 함부로 지어서야 되겠는가.

 

제방의 종장들과 참학 하는 뛰어난 사람들을 잠깐 살펴보았더니, 게송 짓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글 짓는 것을 지말 적인 일이라 여긴다. 그리하여 감정 나는 대로 토해 내어 야담과 비슷하게 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지어서 영락없이 속된 말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거친 것에 구애되지 않고 더러움을 가리지 않는다" 하면서 世俗을 벗어난 자기들의 말이 으뜸가는 理致로 귀결된다고 표방하려 한다.

識者들은 이것을 보고 비웃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대로 믿고 퍼뜨려 명분과 理致가 점점 없어지고 불교문중이 더욱 박복해진다. 보지도 못했는가. 華嚴經의 만 수 偈頌祖師의 천편 偈頌이 모두 문체가 아름답고 지극히 정제되어 잡다하지 않음을. 어찌 실없는 농담이나 속된 글과 같았겠는가. 후세에 와서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글을 짓는 것을 실답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옛 것을 살펴보아야 理致에 맞을 것이다.

 

天賦的資質이 부족한 경우라도 소박함을 다행이라 여기면 되었지 꼭 뛰어난 자질에만 의지하고 훌륭한 사람만을 흠모할 필요가 있는가. 치졸함을 내 보여 격식을 어지럽히고 이것저것 잘못 짜 맞추어 누를 끼치는가. 거짓에 혹하여 뒷날의 수치를 더해서는 안 될 것이다.

 

 

(109) (10) 자기 단점은 변호하면서 승부 다투기를 좋아한다.

(10) 자기 단점은 변호하면서 승부 다투기를 좋아한다.

 

생각하건대 天下叢林이 번창하여 禪房도 매우 많고, 모여 사는 大衆들도 오백 명을 밑돌지 않는데 無禮이 한둘이야 없으랴. 그 사이에 혹은 를 간직한 인재와 淸淨修行을 닦는 사람이 있어 잠시 大衆의 사정을 보아 힘써 祖師의 법석을 이으려 한다.

그리하여 시방의 道伴들을 모으고 한 곳에 도량을 세워 아침에는 法門을 청하고 저녁에는 참구하면서 노고를 꺼려하지 않는다.

 

또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고자 초심자를 지도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명성을 드날리고 물질을 탐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마치 종이 망치를 기다려 울리듯 하고 에 따라 치료하듯 하는 것이다.

법비(法雨)가 내리면 크고 작고를 가림 없이 적시고 법뢰(法雷)가 진동하면 멀고 가깝고 간에 모두 울리나 시들고 무성하고가 스스로 달라지니 움찔하면 틀린다. 그러나 본래 이것저것 고르는 마음으로 선택 가능한 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풍모만 바라보고 을 받아 주지의 地位를 훔친 경우가 있다. 그 들은 스스로 世間을 초월하는 최상승법을 얻었다 여기면서, 자기 단점은 변호하고 남의 장점은 헐뜯는다. 그리하여 시장에서나 푸줏간에서나 속이고 험담하면서 큰 소리 치며 세력을 뽐내고 말재주를 믿고 자랑한다.

 

또한 시끄럽게 일 벌이는 것을 慈悲로 여기고 주제 넘는 것을 德行으로 착각하여 부처님의 戒律을 어기고 사문으로서의 몸가짐을 버린다. 그러면서 도리어 이승(二乘)을 능멸하고 삼학(三學)을 배척하는 전도(顚倒)를 저지른다. 더구나 큰 법도로 점검하지 않고 그런 사람을 道人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 있어 서랴.

상법. 말법시대를 만나 魔軍은 강하고 은 약한데, 如來法服을 빌려 입고 國王의 은혜와 위엄을 훔치는 이가 있다. 입으로는 修行하여 解脫할 것을 말하나 마음으로는 妄想을 희롱하니, 원래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 어찌 죄와 허울을 피하겠는가. 지금 이러한 무리들을 차례로 적어 後學을 경책해야 할 것이다.

 

般若를 만난 因緣도 작은 일이 아니나 스승과 제자를 선택하는 는 더욱 어려우니, 스스로 깨달음을 잘 간수할 수 있어야 끝내 큰 그릇을 이룰 것이다.

따끔한 충고를 강요했으니 나도 비방을 달게 받겠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여, 서로 돕고 고무해 주기를 바란다.

 

 

(110) 중간 십규론 후(題 重刊十規論 後) - 법안록 --

제 중간 십규론 후(題 重刊十規論 後) -

 

[십규론]은 조계(曹溪)10세인 법안선사가 지은 것이다.

스님께서 지장(地藏)스님을 뵙고 종지(指歸)를 얻은 뒤, 입을 열어 말씀을 꺼냈다 하면 언제나 사람들을 결박에서 풀어 주셨다. 예컨대 한번은 어떤 스님이 "무엇이 한 방울 조계의 근원입니까?" 하고 묻자, "이것이 한 방울 조계의 根源이다"하셨고, 또 혜초(慧超)라는 스님이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그대가 慧超로구나" 하셨던 것이다.

스님의 이런 방식은 쇠못으로 밥을 짓고 나무 패찰로 국을 끓여 세상 굶주린 이들의 배를 채워주는 격으로, 도대체 그들이 아무것도 씹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글이나 意味를 가지고 사람들을 얽어매려 하였겠는가. 은 당시 종장(宗匠)들의 답답했던 病痛을 치료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간혹 "스님은 깨친 境界가 은밀한데다가 지견(知見)이 해박하므로 문장을 무시하고 을 읽는다면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라 병술(丙戌 : 1326)년 남병산(南屛山) 장주(藏主) ()스님이 이 글을 내주면서 내게 서문을 부탁하여 경산(徑山) 적조탑원(寂照塔院)에서 찍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산에 난리가 나자 판이 모두 불타 없어졌던 것이다.

이제 대() 땅의 위우민(委羽旻)스님이 비용을 대고 탁본해 둔 옛 본을 사용하여 다시 간행하면서 나에게 후제(後題)를 부탁하였다. 나는 다 떨어진 옛날 책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옛 사람들이 하구(夏口)의 독 속에서 상()을 발견한 듯, 낭야( )의 대들보에서 책을 발견한 듯하였다.

. 앞으로 이 을 읽는 자들이 과연 자기 을 관찰하고 法眼禪師의 마음을 체득하여 좋은 약을 기꺼이 복용하려 한다며 정말 좋지 않겠는가.

이상은 원() 무온 서중의 발문을 조선장(朝鮮藏)에서 얻어서 붙였다.

법안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