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서

마조록

동산/혜산방 2020. 12. 25. 16:04

마조록(1)

마조록(祖堂集)

 

3.

스님 밑에서 친히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에 88명이 세상에 알려졌고, 숨어서 지낸 이는 구 수효를 알 수 없었다. 스님 성품은 인자하고 모습은 준수하였으며, 발바닥에는 두개의 고리 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가마가 셋이 있었다. 설법하며 세상에 머무르기 40여 년 동안에 도를 닦는 무리가 천 명이었다.

 

스님께서 정원(貞元) 4, 무진(戊辰) 21일에 입적하니, 탑은 늑담()의 보봉산(寶峯山)에 있다. 칙명으로 대적선사 대장엄지탐(大寂禪師大藏嚴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배상(裵相)이 액()을 썼고, 좌승상(左丞相) 호득흥(護得興)이 비문을 지었다.

정수(淨修)선사가 송했다.

 

마조 도일(馬祖道一)선사는

돌처럼 쇠처럼 완전하게 수행하여

근본을 깨달아 초탈했으니

곁가지를 찾으면 헛수고만 할 뿐이다.

 

오래 정을 닦던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내던져버리고

남창(南昌)에서 크게 교화를 펴시니

싸늘한 소나무가 천척(千尺)이로다.

馬師道一 行全金石

悟本超然 尋枝勞役

久定身心 一時抛擲

大化南昌 寒松天尺

 

 

마조록 (2)

11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설봉스님이 하루는 원숭이들을 보고 말하기를
원숭이가 각각 한 개의 옛거울(古鏡)을 짊어지고 있구나!”
하니, 삼성스님이
숱한 오랜 세월 동안 이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옛 거울(古鏡)이라고 합니까?”
하고 물으니, 설봉스님이
흠이 생겼구나!”
하되,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일천오백인을 거느리는 대선지식이 화두도 모르십니까?”
하니, 설봉스님이 말하였다.
노승이 주지 하기가 번거로와서....”

알겠는가?

비가 연잎을 적시니
향기가 집에 떠돌고
바람이 갈대 잎을 흔드니
눈은 배에 가득하네.

 

雪峰一日見미후내, 미수各各背一面古鏡.
三聖便問, 歷劫無名何以彰爲古鏡.
峰云, 瑕生也.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話頭也不識.
峰云, 老僧住持事煩.

雨蒸荷葉香浮屋
風攪蘆花雪滿船

 

佛紀 2532年 端午節 伽倻山에서 退翁 性徹

 

 

마조록 (3)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간행사

귀의 삼보(귀의삼보)하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겨레의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 나라의 동량을 배출하여 온 지도 천육백 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지나고 연륜이 멀어짐에 따라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선종의 정법은 감추어지고, 고불고조(古佛古祖)들의 바른 뜻은 매몰되어 잘못된 주장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성철 큰 스님께서는 이런 선문(禪門)의 병폐를 일찍부터 지적하시고, 그 시정을 위해 몇 해 전에는 선문정로(禪門正路)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참선의 근본 종지인 돈오돈수(頓悟頓修)사상을 쉽게 터득케 하고 선사들의 피나는 수행 과정을 기록으로나마 접함으로써 선종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케 하는 데에는 무엇이 가장 요긴 할 일인가를 심려해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케 하는 데에는 무엇이 가장 요긴한 일인가를 심려해 오시던 차에, 우리들 주변에 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선서(禪書)들이 너무나 빈곤하다는 것을 통감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불고조들의 말씀이 한문(漢文)으로 되어 있어서 언어생활이 다른 요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옛 조사 스님들의 말씀 가운데 참선(參禪)을 위해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삼십여 종의 저서들을 가려내어 번역토록 하시고, 그 전집(全集)의 이름을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한문으로 된 말씀들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큰 스님의 구술(口述)을 옮기고, 때로는 선()의 이치를 여쭈면서 글 밝은이들에게 번역을 부탁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선종 사(禪宗史)에서 처음 시도하는 선서 번역 사업인 데에다 큰스님께서 연로하시어 하나하나 감수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번역에 허물이 많으리라 싶습니다. 이 점을 널리 이해하시고, 더러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독자들께서 다함께 동참하시어 더 완벽한 글이 되도록 이끌어주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저희로서는 선림고경총서의 간행 불사(佛事)가 겨레의 공동의 문화 재산이 됨과 아울러 후손들에게 부처님의 크고 밝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 시대의 훌륭한 유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림고경총서의 원만한 간행이 조계(曹溪)의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 선림(禪林)에 백화(百花)가 난만하고 모든 이들은 자성을 깨쳐 성불(成佛)하길 발원합니다.

 

佛紀 2532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圓澤 和南

 

마조록 (4)

 

마조록 해제(馬祖錄 解題)

마조스님에 대한 기록은조당집(祖堂集,952)을 비롯하여 종경록(宗鏡錄,960)」「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1029)」「송고승전(宋高僧傳,988,그리고 사가어록(四家語錄)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1267등에 전하지만, 스님의 어록이 독립적으로 전하는 것은 사가어록뿐이다.

 

현존하는 사가어록(6)은 명말(明末)에 재편된 것인데, 그 첫째 권은 마조스님의 어록이고, 나머지는 백장(百丈), 황벽(黃壁), 임제(臨濟)스님의 어록이다. 사가어록은 원래 송()나라 초기(1066년경) 황룡 혜남(黃龍慧南:1002-1069)스님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한다.

 

마조록을 비롯한 송()대 이후의 어록들은 경론을 자구해석(字句解釋)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적인 안목으로 불법을 재해석한 선사들의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마조스님의 출생과 입적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들이 일치하지 않는데, 연구에 의하면 탑명(塔銘)의 기록(706-786)이 가장 믿을 만하다. 스님은 남악회양(南嶽懷讓:677-744)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법제자들은 139, 혹은 84명이라고도 한다.

마조록에는 능가경(楞伽經)」 「유마경(維摩經)을 비롯하여금강경(金剛經)」 「화엄경(華嚴經)」 「불설법구경(佛說法句經)」 「42장경(四十二章經)등의 경전이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다. 또한 어록에 보이는 즉심죽불(卽心卽佛)” “평상심이 도이다하는 말씀이 마조스님 법문의 특색이라 하겠다.

 

백장록해제(百丈錄解題)

백장스님의 어록은 일찍부터 독립된 본이 있었다. 조당집(祖堂集)에 의하면,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려 있다고 하였고. 문도 신행(神行)과 범운(梵雲)이 법어를 결집(結集)하여 어본(語本)을 편집하였는데, 오늘날 어본이 후학들에게 유행되고 있다고 한 탑명(塔銘)의 내용에서 문도들이 모은 어록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에는 어록(語錄)과 광록(廣錄)을 구분하여 싣고 있는데, 광록은 다른 어록과는 달리 긴 자설(自說)의 법문형식으로서 교학적인 배경이 두텁다. 법문은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고, 그 중에서도 대승입도 돈오법은 스님의 대승법문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하겠다.

스님의 제자로서 전등록(傳燈錄)에서 말하듯이 위산( )과 황벽(黃檗) 두 스님이 중요하다. 위산스님은 그 제자인 앙산(仰山)스님과 함께 위앙종(仰宗)의 종조가 되고, 황벽스님은 임제(臨濟)스님을 배출하여 임제종의 원류가 된다. 5종파에서 최초의 두 파가 백장스님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백장스님 이후, 선원(禪院)은 생활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율원(律院)등에 속해 있던 선원이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상당(上堂)하여 공개적으로 설법하는 설법당(說法堂)이 마련되었다. 또한 대중 운력이나 10가지 소임 등 선원생활을 규율하는 청규(淸規)가 백장스님에서 부터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과 대중 운력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폐불 속에서도 선문(禪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님의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한마디는 이러하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조당집 해제(祖堂集 解題)

현존하는 선종사서(禪宗史書) 중 가장 오래 된 조당집(祖堂集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것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며, 아직까지는 어떤 섭본()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보복 종전(保福從展:867-928,云峯義存을 이음)스님의 제자인 문등()이 쓴 조당집 서()’에 의하면, 천주(泉州) 초경사(招慶寺)에서 정()과 균() 두 스님에 의해 편집되었고(952), 그 후 고려에서 개판(開版)할 때(고종 32, 1245) 원래 10권이던 것을 20권으로 만들면서 새로 목차를 만들어 넣은 것을 알 수 있다.

목차 끝에 해동(海東)에서조당집을 새로 간행함에 있어 그 사적이 드러난 253인을 모두 20권에 수록하였다한 기록이 그것이다.

 

조당집의 특징으로는

첫째, 그 서()에서 고금 제방의 법요(法要)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듯이 조사들의 종지(宗旨)를 전하는 데에 힘 썻고, 표현은 구어적이며 간결하다.

 

둘째, 과거 7(七佛)에서 시작하여 인도 28대 조사와 중국6대 조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초조 마하가섭을 제1, 아난(阿難)을 제2. 이하 28조 초조달마(初祖達摩), 29조 혜가(慧可).......33조 혜능(慧能)으로 하고 있다.

 

셋째, 남종(南宗) 계통의 스님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면서도 우두 법융(牛頭法融), 소위 북종(北宗)인 신수(神秀)보적(普寂) 등은 조과()화상의 끝에 이름만 전하며, 또 우두 법융에서도 다섯 스님은 이름만 열거하고 있다.

한편 남종선의 5家 宗派 중에서도 임제(임제종), 위산앙산(위앙종), 조산동산(조동종), 운문(운문종)스님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법안(법안종)스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넷째, 신라의 종사(宗師)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도의(道義)혜철(惠哲)홍척(洪陟)현욱(玄昱)범일(梵日)무염(無染)도윤(道允)순지(順之)스님 등 8명을 싣고 있는데, 이들은 신라 말 9산 선문의 개산조(開山祖,순지스님은 제외)들이며, 모두 서당(西堂)장경(章敬)앙산(仰山)등 마조스님의 법을 이었다.

조당집은 마조백장위산앙산동산조산스님 등에 대한 내용과 4家 語錄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므로 여기에 함께 실었다.
조당집은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완역본이 있다. 또 대한전통불교연구원에서 간행한조당집 병 논집(祖堂集 論集)에서는 그간의 연구에 대한 눈문 들을 소개하고 있다.

 

차 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退翁 性徹/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4
해제(解題)/6

 

마조록/四家語錄
1. 행록․․․․․․․․․․․․․․․․․․․17
2. 시중․․․․․․․․․․․․․․․․․․․23
3. 감변․․․․․․․․․․․․․․․․․․․31

마조록/조당집
1. 행록․․․․․․․․․․․․․․․․․․․53
2. 시중감변․․․․․․․․․․․․․․․․55
3. 천화․․․․․․․․․․․․․․․․․․․71

 

백장록/四家語錄
백장어록
1. 행록․․․․․․․․․․․․․․․․․․․77
2. 상당․․․․․․․․․․․․․․․․․․․83
3. 천화․․․․․․․․․․․․․․․․․․․95

백장광록․․․․․․․․․․․․․․․․ 99

 

백장록/祖堂集
1. 행록․․․․․․․․․․․․․․․․․․․161
2. 상단감변․․․․․․․․․․․․․․․ 163

 

(附錄)四家語錄/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

祖堂集/馬祖錄

四家語錄/洪州百丈山大智禪師語錄:百丈廣錄

祖堂集/百丈錄

 

 

마조록 (5)

마조록 (四家語錄)

 

일러두기

1. 본문의 편집체제는 사가어록 임제록을 기준으로 하여 행록. 시중. 감변. 천화 등으로 구분한다.
2. 사가어록과 조당집의 마조록은 그 구성과 내용상 서로간에 누락된 부분과 상이한 점이 있어 함께 실었다.
3.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占,1979) 중국불학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方丹出版社)을 참고 하였다.
4. 부록으로는 경안무자(慶安戊子) 화각본(化刻本)의 사가어록과 해인사 소장본 조당집(祖堂集)에 있는 마조록을 실었다.

 

 

마조록 (6)

 

1. 행록

강서(江西) 도일(道一:709-788)스님은 한주(漢洲) 시방현(方縣)사람으로 성은 마()씨이며 그 마을에 있는 나한 사(羅漢寺)에 출가하였다. 용모가 기이하여 소걸음으로 걸었고 호랑이 눈빛을 가졌다. 혀를 빼 물면 코끝을 지났고 발바닥에는 법륜 문신 두 개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자주(資州) 당 화상(唐和尙)에게 머리를 깎았고 투주() 원률 사(圓律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 개원(開院:713-742) 연중에 ()의 전법원(戰法院)에서 선정을 닦던 중 회양(懷讓:677-744)스님을 만났는데, 회양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는 물으셨다.

스님은 좌선하여 무얼 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들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소 수레에 멍에를 채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스님이 대꾸가 없자 회양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앉아서 참선하는 것(坐禪)을 배우느냐, 앉은 부처를 배우느냐. 좌선을 배운다고 하면 선()은 앉거나 눕는 데 있는지 않으며, 앉은 부처(坐佛)를 배운다고 하면 부처님은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뭄 없는 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가르침을 듣자, 스님은 마치 제호(제호)를 마신 듯하여 절하며 물으셨다.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만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昧)에 부합하겠습니까?”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를 배움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요(法要)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도 같다. 그대의 인연이 맞았기 때문에 마침 를 보게 된 것이다.”

 

다시 물으셨다.

가 모습(色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를 볼 수 있으니, 모습 없는 三昧도 그러하다.”
거기에 生成破壞가 있습니까?”
생성이나 파괴, 모임과 흩어짐으로 를 보는 자는 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게송을 듣거라.”

심지(心地)는 모든 종자를 머금어
촉촉한 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싹튼다
삼매의 꽃은 모습 없는데
무엇이 파괴되고 또 무엇이 이루어지랴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스님이 덕분에 깨우치게 되어 마음(心意)이 초연하였으며, 10년을 시봉하면서 그 경지가 날로 더하였다.
이에 앞서 육조(六祖:638-713)스님이 회양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인도 반야다라(般若多羅)가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아래서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 세상 사람을 밟아 버리리라하셨다했는데, 스님을 두고 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회양스님의 제자 여섯 사람 중에서 스님만이 심인(心印)을 비밀스러이 전수받았을 뿐이었다.

처음 건양(建陽)의 불적령(佛跡嶺)에서 임천(臨川)으로 옮겨갔고, 다음으로 남강(南康) 공공 산(公山)에 이르렀으며, 대력(大曆:766-779) 연중에 종릉(鍾陵:洪州에 있음)이 있는 개원사(開元寺)에 이름을 걸어두셨다. 그때 대장군(連師)노사공(路嗣恭)이 가풍을 듣고 경모하여 종지(宗旨)를 직접 전수받았고, 이로부터 사방 납자들이 운집하였다.

회양스님은 스님이 강서에서 교화를 널리 편다는 소문을 듣고 대중에게 물으셨다.
도일(道一)이 대중을 위해 설법을 하느냐?”
이미 대중을 위해 설법합니다.”
그러자 회양스님은 말씀하셨다.
도대체 소식을 전해오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고는 스님 하나를 그곳으로 보내며그가 상당하였을 때어떻습니까?’ 하고 묻고 무슨 말을 하거든 기억해 오너라.”고 하셨다.

그 스님이 분부대로 가서 물엇더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난리 통 30년에 소금과 장은 줄여 본 적 없다.”
그 스님이 돌아와 회양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회양스님은 그렇군.”하셨다.
스님의 입실제자(入室弟子) 139명은 각자 한 곳의 선지식이 되어 더더욱 끝없는 교화를 폈다.

스님께서는 정원(貞元) 4(788) 정월 중에 건창(建昌) 석문 산(石門山)에 올라 숲속을 거닐다가 평탄한 골짜기를 보더니 시자에게 말씀하셨다.
썩어질 내 몸이 다음 달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말씀을 끝내고 돌아와 이윽고 병을 보이므로 원주(院主)가 문안을 드렸다.
스님께선 요즈음 건강이 어떠하신지요.”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21, 목욕하고 가부좌한 채 입멸(入滅)하셨다. 원화(元和:806-820) 연중에 대적선사(大寂禪師)라 시호하고, 탑은 대장엄(大藏嚴)이라 하였다.

 

 

마조록 (7)

 

2. 시중--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示衆)하셨다.
그대들 납자여, 각자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믿도록 하라.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달마대사가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중국에 와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는 伽經을 인용하여 중생의 마음바탕을 확인()해 주셨으니, 그대들이 완전히 잘못 알아 이 일심법이 각자에게 있음을 믿지 않을까 염려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능가경에서는 부처님 말씀은 마음()으로 종()을 삼고, 방편 없음(無門)으로 방편(法門)을 삼는다. 그러므로 법을 구하는 자라면 응당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하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으며, 부처 밖에 따로 마음 없기 때문이다하셨다.

선이라 해서 취할 것도 없고 악이라 해서 버릴 것도 없으며, 깨끗함과 더러움 두 쪽 다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죄의 본성이 공()임을 통달하면 생각생각 어디에도 죄를 찾을 수 없으니 그 성품(自性)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계가 오직 마음일 뿐(三界唯心)이며, 삼라만상이 한 법에서 나온()것이다. 형상()을 볼 때, 그것은 모두 마음을 보는 것인데, 마음은 그 자체가 마음이 아니라 형상을 의지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황 따라 말하면 될 뿐, 현상이든(卽事) 이치에든(卽理) 아무 걸릴 것이 없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달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에서 나온() 것을 형상()이라 하는데, 색이 공함을 알기 때문에 난 것은 동시에 난 것이 아니다.

이 뜻을 확실히 알아야 그때그때 옷 입고 밥 먹으면서 부처될 씨앗(聖胎)을 길러내고 인연 따라 시절을 보내게 되리니.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 게송을 들어 보아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도 역시 그러할 뿐이라네.

현상이나 이치에 모두 걸릴 것 없으니

나는 그 자리가 나지 않는 자리라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碍 當生卽不生

 

 

마조록 (8)

 

2. 시중--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를 닦는 것입니까?”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 닦아서 체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었으니 다시 부서져 성문(聲聞)과 같아질 것이며, 닦지 않는다 하면 그냥 범부이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도를 깨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성(自性)은 본래 완전하니 선이다 악이다 하는 데 막히지 않기만 하면 도 닦는 사람(修道人)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선은 취하고 악은 버리며 공()을 관찰하여 선정에 들어가면 바로 유위(有爲)에 떨어진다 하겠다. 게다가 밖으로 치달아 구하면 더더욱 멀어질 뿐이니 3계의 심량(心量)을 다 없애도록 만하라.

한 생각 망념이 3계 생사의 근본이니, 일념이 없기만 하면 즉시 생사의 근본이 없어지며 부처님(法王)의 위없는 진귀한 보배를 얻게 될 것이다.

무량겁(無量劫) 이래로 범부는 망상 심, 즉 거짓과 삿됨, 아만(我慢)과 뽐냄이 합하여 한 덩어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여러 법이 모여 이 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어날 때는 법만 일어날 뿐이며, 면할 때도 법만 멸할 뿐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이 법이 일어날 때 내()가 일어난다 하지 않으며, 멸할 때도 내가 멸한다 하진 않는다.

전념(前念). 후념(後念). 중념(中念)이 생각생각 서로 의지하지 않아서 생각생각 고요함(寂滅)을 해인삼매(海人三昧)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일체 법을 다 포섭한다. 마치 백 천 갈래 물줄
기가 함께 큰 바다로 모여 들면 모두 바닷물이라 이름 하는 것과도 같다.

한 맛(一味)에 여러 맛이 녹아 있고 큰 바다에 모든 물줄기가 섞여드니, 마치 큰 바다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물을 다 쓰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성문은 깨달았다 미혹해지고 범부는 미혹에서 깨닫는다. 성문은 성인의 마음에는 본래 수행지위. 인과. 계급 등 헤아리는 망상이 없음을 모른다. 그리하여 인()을 닦아 과()를 얻고, 8만겁(八萬劫). 2만겁(二萬劫) 동안을 공정(公定)에 안주하니, 비록 깨닫 긴 했으나 깨닫고 나서는 다시 미혹한 것이다.

 

또한 모든 보살은 저 지옥 고통을 보면 공적함(空寂)에 빠져 불성을 보지 못한다. 상 근기 중생이라면 홀연히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 말끝에 깨닫고 다시는 계급과 지위를 거치지 않고서 본성을 단박에 깨닫는다. 그러므로 경에서 범부에게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음이 있지만 성문에게는 그것이 없다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미혹에 상대하여 깨달음을 설명하였지만 본래 미혹이 없으므로 깨달음도 성립되지 않는다.

일체 중생들은 무량겁 이래로 법성삼매(法性三昧)를 벗어나지 않고 영원히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옷 입고 밥 먹으며 말하고 대꾸하는 6(六根)의 작용과 모든 행위가 모조리 법성이다. 그러나 근원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서 명상(名相)을 쫓으므로 미혹한 생각()이 허망하게 일어나 갖가지 업()을 지으니, 가령 한 생각 돌이켜본다면(返照) 그대로가 성인의 마음이다.

여러분은 각자 자기 마음을 깨치면 될 뿐 내 말을 기억하지 말라. 설사 항하사만큼 도리를 잘 설명한다 해도 그 마음은 늘지 않으며,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그 마음은 줄지 않는다. 또한 설명을 해도 그대들의 마음이며, 설명하지 못해도 그대들의 마음이다.

 

또 몸을 나누고 빛을 놓으며 18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낸다 해도 나에게 불 꺼진 재를 갖다 주느니만 못하다. 장맛비가 지난 뒤 꺼진 재에 불기가 없는 것은 성문이 허망하게 인을 닦아 과를 얻음에 비유할 만하며, 장맛비가 아직 지나지 않아 꺼진 재에 불기운이 있는 것은 보살의 도업(道業)이 순수하게 익어 모든 악에 물들지 않음을 비유할 만하다.

만일 여래의 방편인 삼장(三長)의 가르침을 말하자면, 쇠사슬같이 끊김이 없어 항하사 겁 토록 설명해도 다하지 못하겠지만,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는 다면 아무 일도 없게 된다. 오랜 동안 서 있었으니 이만 몸조심 하라. “

 

 

마조록 (9)

 

2. 시중--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 만 말라, 무엇을 물들음이라 하는가. 生死心으로 작위와 지향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들음이다. 를 당장 알려고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다. 무엇이 평상심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取捨)가없고, 단상(斷想)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경에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범부의 행동도 아니고 성현의 행동도 아닌 이것이 보살행이다.’ 지금 하는 일상생활과 인연 따라 중생을 이끌어주는 이 모든 것이 도()이니, 도가 바로 법계(法界)이며 나아가서는 항하사만큼의 오묘한 작용까지도 이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심지법문을 말하며, 무엇 때문에 다함없는 법등(法燈)을 말하였겠는가. 그르므로 일체 법은 모두가 마음법이며, 일체의 명칭은 모두가 마음의 명칭이다. 만법은 모두가 마음에서 나왔으니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다.

 

경에서도 마음을 알아 본원(本源)이 통달하였으므로 사문(沙文)이라한다고 하였으니, 이 본원자리에서는 명칭도 평등하고 의미도 평등하며 일체법이 다 평등하여 순수하여 잡스러움이 없다.

 

만일 교문(敎門)에서 시절 따라 자유롭게 법계를 건립해 내면 모조리 법계이고, 진여(眞如)를 세우면 모조리 진여 이며, 이치()를 세우면 일체법이 이치이며, 현상()을 세우면 일체법이 현상이 된다. 하나를 들면 모두 따라와 이사(理事)가 다름이 없이 그대로 오묘한 작용이며, 더 이상 다른 이치가 없다. 이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다.

 

비유하면 달그림자에는 차이가 있으나 달 자체는 차이가 없고, 여러 갈래 물줄기는 차이가 있으나 그 물의 본성은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또한 삼라만상은 차이가 있으나 허공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도리를 설명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으나 걸림 없는 지혜는 차이가 없듯이 갖가지로 세운 법이 모두 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세워도 되고 싹 쓸어버려도 된다.

모조리 오묘한 작용이며 그대로가 자기이니. ()을 떠나서 세울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운 그 자리가 바로 진이며, 다 자기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

 

일체법이 불법이고 모든 법이 바로 해탈인데 해탈이 바로 진여이나, 모든 법은 진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이 모두 불가사의한 작용으로서 시절인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경에서도 곳곳마다 부처님 계신 곳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매우 자비로우며 지혜가 있어 선한 본성으로 일체 중생의 얽힌 의심을 부수어 유무(有無)등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다.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망정이 다하고 인집. 법집. (.)이 함께 공하여 비할 바 없는 법륜을 굴리고 모든 테두리(數量)를 벗어났다.

그리하여 일마다 걸림이 없고, 현상. 이치 양쪽 다 통하니 마치 하늘에 구름이 일어났다가 어느덧 없어지듯 머문 자취를 남기지 않으며, 물에다 그림을 그리듯 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대적멸(大寂滅)이다.

 

번뇌 속에 있으면 여래장(如來藏)‘이라 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 이름 한다. 법신은 무궁하여 그 자체는 늘고 줄어듬이 없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모나고 둥글 기도 하면서 대상에 따라 형체를 나타내니 물에 비친 달처럼 잔잔하게 흔들거리며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유위(有爲)를 다하지도 않고 무위(無爲)에 머물지 도 않으니 유위는 무위의 작용이며, 무위는 유위의 의지 처이다. 의지 처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도 의지할 것 없는 허공과 같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심생멸(心生滅)과 심진여(心眞如)라는 뜻에서 보자. 심진여(心眞如)라 하는 것은 밝은 거울이 물상을 비추는 것과도 같은데, 거울은 마음에 비유되고 물상은 모든 법에 비유된다. 여기에서 마음으로 법을 취한다면 바깥 인연에 끄달리게 되니 그것이 심 생멸의(心生滅義)가 된다.

 

성문은 소리를 들음으로써 불성을 보고 보살은 눈으로 불성을 보니 그것이 둘 아님을 아는 것을 평등한 성품이라 한다. 이 성품은 차이가 없으나 작용은 같지 않아서 미혹에 있으면 식()이 되고, 깨달음에 있으면 지()가 되며, 이치()를 따르면 깨달음이 되고, 현상()을 따르면 미혹이 된다.

그러나 미혹해도 자기 본심에 미혹하는 것이며 깨달아도 자기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한번 깨달으면 영원히 깨달아 다시는 미혹되지 않으니, 마치 해가 뜸과 동시에 어둠은 없어지듯 밝은 지혜가 나오면 어두운 번뇌는 공존할 수 없다.

 

마음()과 경계()를 깨달으면 망상이 발생하지 않으며, 망상이 나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무생법인은 본래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어서 를 닦고 좌선할 필요가 없으니 닦을 것도 없고 좌선할 것도 없는 이것이 바로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다.

 

이제 이 이치를 알았으면 진정 코 모든 업을 짓지 말고 본분 따라 일생을 지내도록 하라. 가사 한 벌 누더기 한 벌로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계행(戒行)을 더욱 훈습하고 정업(淀業)을 더욱 쌓도록 하라.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깨닫지 못할까 무얼 근심하랴.

듣느라고 수고하였다. 몸조심 하라. “

 

 

마조록 (10)

 

3. 감변 -- (1)

서당 지장(西堂智藏:735-814). 백장 회해(百丈懷海:749-814). 남전 보원(普願:748-834)스님이 마조스님을 모시고 달구경을 하던 차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같은 땐 무얼 했으면 좋겠는가?” 서당스님은 공양하기에 딱 좋군요.” 하였고, 백장스님은 수행하기에 좋겠습니다.” 하였다. 남전스님이 소매를 뿌리치면서 그냥 가 버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은 장(:서당)으로 들어가고, ()은 바다(:백장)로 돌아가는데, 보원(普願:남전)만이 사물 밖으로 벗어났구나.”

 

 

마조록 (11)

 

3. 감변(2)

남진스님이 대중에게 죽을 돌리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통 속은 무엇이냐?”
닥 치거라. 이 늙은이야! 무슨 말이냐.”
스님께서는 그만 두셨다.

 

 

마조록 (12)

 

3. 감변--(3)

백장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바로 지금 그대가 선명을 놀리는 자리라네.”

 

 

마조록 (13)

 

3. 감변--(4)

대주 혜해(大珠慧海)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옵니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불법을 구하려 합니다.”
자기의 보배창고(寶藏)는 살피지 않고서 집을 버리고 사방으로 치달려 무엇 하려느냐.

여기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무슨 불법을 구하겠느냐?”

대주스님은 드디어 절하고 물었다.
무엇이 저 혜해(慧海)의 보배창고입니까?”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그것은 일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작용이 자유 자재하니 어찌 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대주스님은 말끝에 본래 마음은 깨달음(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뛸 듯이

기뻐하며 절을 하였다.

6년을 섬긴 뒤에 돌아가 돈오입도요문 론(頓悟入道門論)1권을 지었는데, 스님께서 보더니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월주에 큰 구슬(大珠)이 있는데 뚜렷하고 밝은 광채가 자재하게 사무쳐 막히는 곳이 없다.

 

 

마조록 (14)

 

3. 감변--(5)

늑담 법회(潭法會)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리 가까이 오게.”
법회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자 한 대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셋이서는 함께 역모를 꾸미지 않는 법이라네, 내일 찾아오게.”
법회스님은 다음날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은 돌아가고 내가 상당할 때를 기다렸다가 나오게. 그대에게 증명해 주겠네.”
법회스님은 여기서 깨닫고 말하였다.
대중의 증명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법당을 한 바퀴 돌더니 가버렸다.

 

 

마조록 (15)

 

3. 감변--(6)

늑담 유건(潭維建)스님이 하루는 법당 뒤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스님이 보시고는 그의 귀에 입을 대고 두 차례 훅하고 불자 유건스님은 선정에서 일어나 스님임을 알고는 다시 선정에 들었다.

 

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가 시자더러 차 한 그릇을 갖다 주게 하였는데, 유건스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큰 방으로 가버렸다.

 

 

마조록 (16)

 

3. 감변--(7)

석공 혜장(石鞏慧藏)스님은 출가 전에 본래 사냥을 일삼았으며 사문을 싫어하였다. 한번은 사슴 떼를 쫒다가 마침 스님의 암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스님이 그를 맞이하자 그는 물었다.

 

스님은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지요?”
그대는 무얼 하는 사람이냐?”

사냥꾼입니다.”
활을 쏠 줄 아는가?”
쏠 줄 압니다.”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를 잡느냐?”
한 발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
활을 쏠 줄 모르는구나.”

스님께선 활을 쏠 줄 아십니까?”
쏠 줄 알지.”
스님께서는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한 발로 한 떼를 다 잡는다네.”
저놈들도 생명입니다. 무엇 때문에 한 떼나 잡겠습니까?”
그대가 그런 줄 안다면 왜 스스로를 쏘지 않느냐?”
저더러 스스로 쏘라 하신다면 어떻게 쏘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호통을 쳤다.
이놈! 광겁(曠劫)의 무명번뇌(無名煩惱)를 오늘 단박 쉬도록 하라.”
그는 그 자리에서 활과 화살을 꺾어버리고 스스로 칼로 머리카락을 자르더니 스님께 출가하였다.

하루는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얼 하느냐?”
소를 칩니다.”
어떻게 치는데?”
한 차례 풀밭으로 들어가면 바로 콧구멍을 꿰어 끌고 옵니다.”
그야말로 소를 잘 먹이는구나.”

 

 

마조록 (17)

 

3. 감변 -- (8)

한 스님이 가르침을 청하였다.

스님께선 4구백비(四句百非)를 쓰지 말고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장 지적해주십시오.”

오늘은 생각 없으니 그대는 지장(智藏)에게 가서 묻도록 하라.”

 

그리하여 지장스님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님께서 저더러 스님(上座)께 가서 물 으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지장스님은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말하였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회해 사형에게 가서 묻도록 하라.”

 

그리하여 다시 회해(懷海)스님에게 가서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인데.”

 

그 스님이 이리하여 스님(마조)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장의 머리는 하얗고 회해의 머리는 검구나.”

 

 

마조록 (18)

 

3. 감변--(9)

마곡 보철(麻谷寶徹)스님이 하루는 스님을 따라가면서 물었다.

무엇이 대열반입니까?”
급하다.”
무엇이 급하다는 말입니까?”
저 물을 보아라.”

 

 

마조록 (19)

 

3. 감변--(10)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752-839)스님이 처음 참례하고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바로 마음이 부처다(卽心卽佛).”
법상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는 그때부터 대매에 머물렀다.

 

스님은 법상스님이 산에 머문다는 소문을 듣고는 한 스님을 시켜 찾아가 묻게 하였다.

스님께선 마조스님을 뵙고 무엇을 얻었기에 갑자기 이 산에 머무르십니까?”
마조스님께서 나에게 바로 마음이 부처다하였다네. 그래서 여기에 머문 다네.”
마조스님 법문은 요즈음 또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하십니다.”
이 늙은이가 끝도 없이 사람을 혼돈 시키는구나. 너는 네 맘대로 비심비불(非心非佛)해라.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다.”

 

그 스님이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실(梅實)이 익었구나.”

 

 

마조록 (20)

 

3. 감변--(11)

분주 무업(汾州無業:780-821)스님이 스님을 참례하였다.
스님께서는 그의 훤출한 용모와 종소리같이 우렁찬 목소리를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높고 높은 법당(佛堂)이나 그 속에 부처가 없구나.”

 

무업스님이 절하고 끓어 앉아서 물었다.

“3(三乘) 교학은 그 이론을 대략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선문(禪門)에서는 항상 바로마음이 부처라고 하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알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지, 그밖에 다른 것은 없다네.”

 

무업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 가만히 전수하신 심인(心印)입니까?”
그대는 정말 소란을 피우는군. 우선 갔다가 뒤에 찾아오게.”
무업스님이 나가는 차에 스님께서 불렀다.

 

여보게!”
무업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게 무엇인가?”
무업스님이 딱 깨닫고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둔한 놈아! 절은 해서 무엇 하느냐.”

 

 

마조록 (21)

 

3. 감변 -- (12)

등은봉(鄧隱峯)스님이 스님을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느냐?”
석두(石頭)스님에게 가렵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네.”
장대나무를 짚고 가다가 장터를 만나면 한바탕 놀다 가겠습니다.”
바로 떠나 석두스님에게 도착하자마자 선상을 한 바퀴 돌더니 지팡이로 한번 내려치고 물었다.

 

무슨 소식인고.”
그러자 석두스님은, “아이고, 아이고!” 하였다.
등은봉 스님은 말이 막혔다. 돌아와서 말씀드렸더니 스님(마조)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다시 가서 그가 아이고, 아이고하거든 . ()’ 하고 두 번 소리를 내거라.”
등은봉 스님이 다시 가서 앞서 했던 그대로 물었더니 석두스님은 이에 허허하고 두 번 소리를 내었다.

 

등은봉스님은 이번에는 말이 막혔다.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하였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 하지 않았더냐.”

 

 

마조록 (22)

 

3. 감변--(13)

등 은봉 스님이 하루는 흙 나르는 수레를 미는데 스님은 다리를 쭉 펴고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님, 다리 좀 오므리세요.”
이미 폈으니 오므릴 수 없네.”
이미 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수레바퀴를 굴리며 지나가다가 스님의 다리를 다치게 했다. 스님께서는 법당으로 돌아와 도끼를 집어 들고 말하였다.

 

조금 전에 바퀴를 굴려 내 다리를 다치게 한 놈은 나오너라.” 등 은봉 스님이 나와 스님 앞에 목을 쓱 빼자 스님은 도끼를 치웠다.

 

 

마조록 (23)

 

3. 감변--(14)

석구(石臼)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는가?”
오구(烏臼)스님에게서 옵니다.”
오구는 요즈음 어떤 법문을 하던가?”
여기서 몇 사람이나 아득해(茫然) 있습니까?”
아득함은 우선 그만두고 간단한() 한마디는 무엇이더냐?”

 

석구스님이 이에 세 걸음 앞으로 다가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오구를 일곱 대 때릴 일이 있는데 그대는 기꺼이 받겠는가?”

스님께서 먼저 맞으십시오. 그런 뒤에 기꺼이 오구스님에게 둘려드리겠습니다.

 

 

마조록 (24)

 

3. 감변--(15)

양좌주(亮座主)가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좌주는 경론(經論)을 훌륭히 강의해 낸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부끄럽습니다.”
무얼 가지고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마음()은 재주부리는 광대 같고, 의식()은 광대놀이에 장단을 맞추는 자와 같다.

그것으로 어떻게 경을 알 수 있겠는가?”

 

양 좌주는 언성을 높혔다.
마음이 강의하지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합니까?”
오히려 허공이 강의할 수 있다.”
양 좌주는 수긍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계단을 내려가려하는데 스님께서 좌주!”하고 불렀다.

양 좌주는 머리를 돌리는 순간 활연 대오하고 바로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얼 하느냐.”
양 좌주는 절로 되돌아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논강은 남이 따를 수 없다 하였더니, 오늘에야 마조대사에게 한 번 질문을 받고서 평생 했던 공부가 얼음 녹듯 하였다.”
그리고는 서산(西山)으로 들어가 다시는 종적이 없었다.

 

 

마조록 (25)

 

3. 감변--(16)

홍주 수노(洪州水老)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분명한 뜻입니까?”
절 한번 하라
수노스님이 절하자마자 스님께서 별안간 한 번 걷어찼다.

 

여기서 수노스님은 크게 깨닫고 일어나면서 손뼉을 치고하하웃으면 말하였다.
그것 참 신통하고나, 신통해. 백 천 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털끝 하나에서 그 근원을 알아버렸도다.”

 

그리고는 절하고 물러났다.
그 뒤 대중에게 말하였다.
마조스님에게 한 번 채인 뒤로 지금까지 웃음이 그치질 않는구나.”

 

 

마조록 (26)

 

3. 감변--(17)

방거사(龐居士)가 스님께 물었다.

만법에게 짝이 되어주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소.”

 

다시 방거사가 물었다.

본래인(本來人)을 어둡게 하지 말고 스님께서는 눈을 높이 뜨십시오.”

스님께서 눈을 아래로 흘깃 하자 거사가 말하였다.

일등 가는 줄 없는 거문고를 스님만이 오묘하게 뜯는군요.”
스님께서 이번에는 위로 흘깃 보자 거사는 절을 하였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돌아가자 거사는 뒤따라 들어가면서 말하였다.
조금 전엔 잘난 체하다가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물은 근육도 뼈도 없으나 만 섬 실은 배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이치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는 물도 없고 배도 없는데 무슨 근육과 뼈를 말하는가.”

 

 

마조록 (27)

 

3. 감변--(1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는 말을 하십니까?”
어린 아이의 울음을 달래려고 그러네.”
울음을 그쳤을 땐 어떻게 하시렵니까?”
비심비불(非心非佛)이지.”

이 둘 아닌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어떻게 지도하시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주겠다.”
그 가운데서 홀연히 누군가 찾아온다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보다도 큰 를 체득하게 해주겠다.”

 

 

마조록 (28)

 

3. 감변--(19)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바로 그대의 뜻은 어떤가?”

 

 

마조록 (29)

 

3. 감변--(20)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도 에 계합하겠습니까?”
나는 아직 에 계합하지 못하였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별안간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를 후려치지 않는다면 제방에서 나를 비웃겠지.”

 

 

마조록 (30)

 

3. 감변--(21)

탐원산(耽源山)에 젊은 스님 하나가 있었는데 행각하고 돌아와 스님 앞에서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그 위에다 절하고 서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처가 되고 싶지 않은가?”

저는 눈을 비빌 줄 모릅니다.”
내가졌다.”
젊은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마조록 (31)

 

3. 감변--(22)

한 스님이 스님 앞에다 하나는 길게, 셋은 짧게 네 획을 긋고 말하였다.

"눈을 누르고 멀쩡하게 보이던 것이 겹쳐 보이는데 본심에서

망상 일으키는 것을 비유 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4구백비(四句百非)를 떠나 대답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께서는 땅에다 금 하나를 획 긋고는 말씀하였다.

길다 짧다 말하진 못한다. 그대에게 단변을 끝냈다.”

 

 

마조록 (32)

 

3. 감변--(23)

스님께서 한 스님을 시켜 경산 법흠(徑山法欽:714-792)스님에게 글을 보냈는데 그 속에는 일원상(一圓相)이 그러져 있었다.

경산스님은 뜯자마자 붓을 찾아 가운데 한 점을 찍었다. 그 뒤 어떤 스님이 혜충국사(慧忠國師: ?-775)에게 이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국사는 말하였다.

 

법흠 스님이 오히려 마조대사에게 속았구나.”

 

 

마조록 (33)

 

3. 감변--(24)

한 강사(講師)가 찾아와서 물었다.
선조에서는 어떤 법을 전수합니까?”
스님께서 되물었다.

강사는 어떤 법을 전해 주는가?”
외람되게도 20여본()의 경론을 강의합니다.”
그렇다면 사자(獅子)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어흠!“ 하고 소리를 내자 강사가 말하였다.
이것이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있자 강사가 말하였다.

 

이것도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속에 있는 법입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앉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강사는 대꾸가 없었다. 드디어 하직을 하고 문을 나오는데 스님께서 좌주여!”하고 불렀다. 강사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게 무엇인가?”
강사가 역시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이 둔한 중아!” 하셨다.

 

 

마조록 (34)

 

3. 감변--(25)

홍주(洪州) 염사(廉使)가 물었다.

술과 고기를 먹어야 옳습니까, 먹지 않아야 옳습니까?”

 

먹는 것은 그대의 국록(國祿)이며, 먹지 않는 것은 그대의 불복(佛福)입니다.”

 

 

마조록 (35)

 

3. 감변--(26)

약산 유엄(藥山惟儼:745-828)스님이 처음 석두스님을 참례한 한 자리에서 물었다. “312분교(三乘十二分校)라면 제가 대략은 압니다. 남방에 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 한다는 소문은 늘 들었는데 정말 알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스님께선 자비로 가르쳐 주십시오.”

 

석두스님이 말하였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 되며, 이렇게 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음 둘 다 안 된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약산스님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석두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은 여기에 있질 않으니 그만 마조스님의 처소로 가보게.”

약산스님이 명을 받들어 스님께 공손히 절을 하고는 앞에 물었던 것을 그대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 때는 그에게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작이게 하며, 어느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어떤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 그대는 어떠한가?”

약산스님이 말끝에 깨치고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였다.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나에게 절을 하느냐?”
제가 석두스님 처서에서는 무쇠소 등에 달라붙은 모기와도 같았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되었다면 잘 간직하게.”
그 뒤 3년 동안 시봉을 하였는데 하루는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요사이 견처(見處)가 어떠한가?”
껍데기는 다 벗겨지고 알맹이 하나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대의 경지의 마음(心體)이 순조러워 사지(四肢)까지 편안하다 하겠다. 그렇게 되었을진대 어째서 세 가닥 대테()로 아랫배를 조르고 아무데나 가서 주지살이를 하지 않는가?”
제가 무어라고 감히 주지노릇 한다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네. 항상 다니기만 하고 머물지 말라는 법은 없고, 항상 다니기만 하고 다니지 말라는 법도 없다네. 이익 되게 하고 싶어도 이익 될 것이 없고, 위하려 하나 위할 것도 없다네. ()를 만들어야지. 이 산에 오래 머물지 말게.”
이리하여 약산스님은 스님을 하직하였다.

 

 

마조록 (36)

 

3. 감변 -- (27)

단하 천연(丹霞天然:739-824)스님이 두번째 스님을 참례하러 왔을 때 였다. 아직 참례하기도 전에 바로 큰 방에 들어가 나한상의 목을 말타듯 타고 앉았다. 그러자 대중들이 경악하여 급히 스님께 아뢰었다. 스님께서 몸소 큰 방으로 들어가 그를 살펴보더니 말씀하셨다.

 

천진한(天然) 내 아들이로군.”

단하 스님은 즉시 땅으로 내려와 절하며대사께서 법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였는데 이 인연으로 천연(天然)’이라 이름 하였다.

 

* 중국의 한 은사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뱃속이 터질까 걱정하여 대나무테로 배를 싸고 다녔다. 여기서는 공부가 완숙된 경계를 말한다.

 

 

마조록 (37)

 

3. 감변--(28)

담주 혜랑(潭州慧郞)스님이 처음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찾아와서 무엇을 구하느냐?”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구합니다.”
부처님에게는 지견이 없다. 지견은 마군일 뿐이다. 그대는 어디서 왔느냐?”
남악(南嶽)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남악에서 오긴 했으나 아직 조계의 심요(心要)를 모르는구나. 속히 그 곳으로 되돌아가야지. 다른 데로 가서는 안 된다.”

 

 

마조록 (38)

 

3. 감변--(29)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호남에서 왔습니다.”
동정호(洞庭湖)에는 물이 가득 찼더냐?”
아닙니다.”
때맞은 비가 그렇게나 내렸는데도 아직 가득 차지 않았더냐...”

 

도오(道吾)스님은 가득 찼다하였고, 운암(雲岩)스님은 담담하다하였으며, 동산(洞山)어느 겁()엔들 모자란 적이 있었으랴하였다.

 

 

마조록 (39)

 

1.

회양(懷讓)스님의 법을 이었고, 강서(江西)에서 살았다. 스님의 휘는 도일(道一)이며, 한주(漢州) 시방현(十方懸) 사람으로 속성은 마()씨였다.

 

나한사(羅漢寺)에서 출가하여 회양 스님에 의해 마음의 눈을 뜬 뒤로는 남창(南昌)에서 교화를 펴셨다.

 

 

마조록 (40)

 

2. 시중. 감변 ---

스님께서는 대중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대들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야 한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卽心是佛). 그러므로 달마(達摩)대사께서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오셔서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셨다.

또 자주 능가경에 말씀하기를 부처님은 마음을 근본으로 하시고 아무 방편()도 쓰지 않은 방편을 펴셨다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 ‘법을 구하는 이는 아무 구할 것이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하셨다.

 

()을 취하지도 말고 악()을 버리지도 말아야 하며, 더럽 거나 깨끗한 쪽에 모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죄의 성품이 공함을 통달하면 생각생각 어디에도 죄를 찾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자기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3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상이 한 법에서 나온()것이다.

형상()을 볼 때, 그것은 모두가 마음을 보는 것인데, 마음 스스로가 마음이라 하지 못하므로 현상을 의지해서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황 따라 말하면 될 뿐, 현상(卽事)에든 이치(卽理)에든 아무 걸릴 것이 없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서 난 것은 형상()이라 하는데, 형상이 공함을 알기 때문에 난 것은 동시에 난 것이 아니다. 이 뜻을 체득하면 그때그때 옷 입고 밥 먹으며 부처될 씨앗을 기르면서 그저 인연 따라 시절을 보내면 될 뿐이니,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 게송을 들어 보아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도 역시 그러할 뿐이라네.
현상에나 이치에나 모두 걸릴 것 없으니
나는 그 자리가 나지 않는 자리라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碍 當生卽不生

 

 

마조록 (41)

 

2. 시중. 감변…②

홍주(洪州)태안사(太安寺)의 주지는 경과 논을 강론하는 강사(座主)였는데 오직 스님(마조)을 비방하기만 하였다. 하룻밤은 삼경(三更)에 귀신사자(鬼使)가 와사 문을 두드리니, 주지가 물었다.

 

누구시오?”

귀신세계의 사자인데 주지를 데리러 왔다.”

내가 이제 예순 일곱인데 40년 동안 경론을 강하여 대중들에게 공부하게 하였으나 말다툼만 일삼고 수행은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루 밤 하루 낮만 말미를 주어 수행케 해주시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 사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한창 목마른데 우물을 파는 격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주지가 아까 말하기를, ‘경론 강하기만 탐하여 대중에게 공부하게 했다하는데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경전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스스로를 제도한 뒤에 남을 제도하고, 스스로가 해탈한 뒤에 남을 해탈케 하고, 스스로를 조복한 뒤에 남을 조복시키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한 뒤에 남을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가 편안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고, 스스로가 깨끗한 뒤에 남을 깨끗하게 하고, 스스로가 열반에든 뒤에 남을 열반에 들게 하고, 스스로가 즐거운 뒤에 남을 즐겁게 하라하셨는데 그대는 자신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했는데 어찌 남에게 도업(道業)을 이루게 할 수 있겠는가.

 

듣지 못했는가. 금강장(金剛藏)보살이 해탈월(解脫月)보살에게 말하기를, ‘내가 바른 행을 닦은 뒤에야 남에게 바른 행을 닦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스스로가 바른 행을 닦지 못하고서 남에게 수행케 함은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였다.

그대는 더러운 생사 심으로 입을 노리고 따지기만 하여 불교를 잘못 전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속였다. 저 세계의 왕이 화가 나서 그대를 잡아다가 그 세계의 칼 숲 지옥에 잡아넣어 혀를 끊으라 했으니, 끝내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는가.

 

말로서 설한 법을 작은 지혜로 망녕되게 분별하니
그러므로 장애를 일으켜서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거니 어찌 바른 도를 알리요
저 뒤바뀐 지혜 때문에 온갖 죄악을 더한다.

 

言詞所說法 小智妄分別
是故生障碍 不了於自心
不能了自心 云何知正道
彼由顚倒慧 增長一切惡

 

그런데 그대는 40년 도안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지옥에 들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또 옛 부터 경전에 분명한 글이 있다. 말로써 모든 법을 말씀하여도 실상(實相)을 나타내지 못 한다하였는데 그대는 망상(妄想)으로 입을 놀려 어지러이 말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받아야 하니, 다만 자신을 탓할지언정 남을 원망치는 말라. 지금 어서 빨리 가자. 만일 늦으면 저 왕께서 나를 꾸짖을 것이다.“

 

그러자 둘째 사자가 말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 터이니, 이 사람에게 수행케 해준들 무방하지 않겠는가?”
첫째 사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루쯤 수행하도록 놓아 주겠소.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사뢰어 허락해 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 치 않으시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다.

귀신 사자는 허락했으나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아무 대책도 없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개원사(開元寺)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말했다.

 

누구시오.”

태안사 주지인데 스님께 문안을 드리러 왔소.”

문지지가 문을 열어주니, 주지는 곧 스님(마조)께로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한 뒤에 말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그를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새자 귀신사자는 태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차지 못했다.

이때, 스님과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용화(龍華)스님에게 물었다.

주지는 그때 어디로 갔었기에 사자가 찾지 못했습니까?”
우두(牛頭)스님이니라.”
그렇다면 국사(國師)께서는 당시 굉장했겠습니다.”
남전()스님이니라.”

 

 

마조록 (42)

 

2. 시중.감변--

어느 날 공양 끝에 한 스님이 와서 몸가짐을 가다듬고 법당으로 올라와 스님께 인사를 하니, 스님께서 물었다.

지난밤엔 어디에 있었는가?”
산 밑에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가?”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광에 가서 밥을 찾아 먹어라.”

 

그 스님은 대답하고 광으로 갔다. 그때 백장(百丈)스님이 전좌(典座) 소임을 맡았었는데 선뜻 자기 몫을 나누어 주어 공양케 하니, 그는 밥을 다 먹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백장스님이 법당으로 올라가니, 스님께서 물었다.

 

아까 밥을 먹지 못한 스님이 있었는데 공양 좀 주었는가?”
, 벌써 공양을 마쳤습니다.”
그대는 뒷날 무량한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스님께선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는 벽지불(支佛)의 지위에 이른 스님이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범인(凡人)으로서 어찌하여 벽지불의 절을 받으셨습니까?”
신통변화로는 그렇지만 불법 한마디 하는 데는 나만 못하다.”

 

 

마조록 (43)

 

2. 시중. 감변 … ④

스님께서 어느 날, 선상(선상)에 올라앉자마자 침을 뱉으니, 시자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방금 침을 뱉으셨습니까?”
노승이 여기에 앉으니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여기에 있구나! 그게 싫어서 침을 뱉았다.”

 

좋은 일인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싫어하십니까?”
너라면 좋겠지만 나는 싫다.”
이는 누구의 경지입니까?”
보살의 경지다.”

 

나중에 고산(鼓山)스님이 이 인연을 들어 말했다.
옛사람은 그러하지만 여러분들은 보살의 경지도 아직 얻지 못했다.”
또 말했다.

 

옛사람들은 보살까지도 싫어했다. 비록 싫어했으나 보살의 지위를 먼저 증득한 뒤에 싫어한 것이라야 싫어함이 된다. 노승은 보살의 지위를 알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그런 일을 싫어하랴. “

 

 

마조록 (44)

 

2. 시중. 감변--

서천(西川)에 황삼랑(黃三郞)이라는 이가 있어, 두 아들을 스님께 귀의케 하여 출가하도록 했다. 한 해가 남짓 지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두 스님을 보자마자 부처님과 똑같다는 생각을 내어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완성해 주는 이는 벗이다라고 했는데, 두 스님은 벗이 되어 이 늙은이를 완성시켜 주시오.”

 

두 사미가 말했다.“아버지께서 비록 나이가 많으시나 그러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노인은 몹시도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황삼량은 두 비구를 따라 스님(마조)께 갔다. 스님들이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스님께서는 곧 법당으로 올라갔다. 황 삼랑 도 법당 앞으로 나아가니, 스님께서 소리쳤다.

 

황 삼랑 이 아닌가?”
, 그렇습니다.”

서천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대는 서천에 있는가, 홍주(洪州)에 있는가?”

가정에는 두 가장이 없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습니다.”

 

그대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여든 다섯입니다.”
비록 그렇게 계산하나 무슨 나이인가?”
만일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 보낼 뻔 했습니다.

스님을 뵌 뒤에는 칼로 허공을 긋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어디를 가나 진실이리라.”

 

 

마조록 (45)

 

2. 시중. 감변 --

황 삼랑 이 어느 날, 태안사에 가서 마루 앞에서 통곡을 하니, () 좌주가 물었다.
무슨 일로 통곡을 합니까?”
좌주를 위해 웁니다.”
나를 위해 울다니, 무슨 뜻입니까?”

 

제가 마조스님께 귀의하여 출가해서 가르침을 받자마자 깨달았다는 말을 들으셨을 터인데 여러분 좌주들은 공연한 이야기나 지껄여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좌주가 이 말에 발심하여 곧 개원사로 가니, 문지기가 스님께 아뢰었다.

태안사 양좌주가 와서 스님을 뵙고 불법을 묻고자 합니다.”
이에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니, 좌주가 와서 뵈었다.

 

스님께서 좌주에게 물었다.
좌주는 60권 화엄을 강의한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아직은 경론을 강의할 줄 모른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마음()은 재주 부리는 광대 같고, 의식()은 광대놀이에 장단 맞추는 이 같다 했는데, 어찌 경론을 강의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의할 수 없다면 허공이 강의를 합니까?”
오히려 허공이 강의할 수 있다.”

좌주가 뜻에 맞지 않아, 당장 나가서 섬돌을 내려서려다가 크게 깨닫고 다시 돌아와 절을 하니, 스님께서 말했다.

 

이 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엇 하느냐.”

양좌주가 일어나니, 등에 땀이 축축이 흘렀다. 밤낮으로 엿새 동안 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다가 나중에 사뢰었다.
이제 스님 곁을 떠나 스스로 수행할 길을 찾으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오래오래 세상에 계시어 많은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좌주가 본사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고했다.

내 일생 동안의 공부를 앞지를 이가 아무도 없다고 여겼더니, 오늘 마조스님 앞에서 꾸지람을 받고는 미혹한 생각(妄情)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는 학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홀로 서선으로 들어간 뒤에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양좌주가 이런 싯귀(詩句)를 남겼다.

 

30년 동안 아귀노릇을 하다가
오늘에야 사람의 몸으로 회복 했네
푸른 산엔 본디 외로운 구름이 벗이었는데
동사가 다른 이를 따라 딴 사람을 섬겼네

 

三十年來作餓鬼 如今始得復人身
靑山自孤有雲伴 童子從他事別人

 

장남()스님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허공이 경을 강하면 어떤 사람들이 듣는 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아까부터 잠시 함께 기뻐했습니다.”
무슨 뜻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문득 도로 거두시라 했을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역시 불을 잡을 마음이 있도다.”

 

 

마조록 (46)

 

2. 시중.감변--

스님께서 상당하여 그저 잠자코 있으니, 백장스님이 면전에서 자리를 걷어버렸다.

스님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마조록 (47)

 

2. 시중. 감변 --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바로 그대가 몸과 목숨을 놓아버릴 곳이다.”

“4구백배(四句百非)를 떠나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십시오. 번거로운 말씀은 필요 없습니다.”

내가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어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서당(西堂)에게 가서 묻거 라.”

 

그 스님이 서당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서당스님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큰 스님께 묻지 않았는가?”
큰 스님께서 저더러 스님께 물으라 하십니다.”
이에 서당스님이 얼른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몹시도 머리가 아파서 말해 줄 수 없으니, (:百丈)사형께 가서 묻 거 라.”

 

그 스님이 백장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물으니, 백장스님이 말했다.
나는 그 경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다시 와서 아뢰니, 마조스님께서 말했다.

(:서당)의 머리는 희고, ()의 머리는 검도다.”

 

 

마조록 (48)

 

2. 시중. 감변 --

스님께서 인편에 선경산(先徑山) 도흠(道欽)스님에게 글을 보냈는데, 그 속에는 원상(圓相)만이 그려져 있었다. 경산스님이 이를 보자마자 붓을 들어 원상 안에다 한 획을 보탰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혜충(慧忠)국사께 전하니, 국사께서 말했다.

()대사가 또 마()대사에게 속아 넘어갔구나.”

 

 

마조록 (49)

 

2. 시중. 감변 --

어떤 사람이 스님의 앞에다 하나는 길게, 셋은 짧게 네 획을 긋 고는 말하였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네 귀 절을 떠나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스님께서 한 획을 그으면서 말했다.

길다고도 말할 수 없고, 짧다고도 말할 수 없으니, 그대에게 대답해 마쳤노라.”

 

혜충 국사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르게 대답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았던가?”

 

 

마조록 (50)

 

2. 시중. 감변 --

한 좌주가 스님께 물었다.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수합니까?”
스님께서 되물었다.

 

좌주는 어떤 법을 전해 주는가?”
“40권 경론을 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자(獅子)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 어흠!’ 하고 소리를 지르니, 좌주가 말했다.

 

이것이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있으니, 좌주가 또 말했다.
이것도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속에 있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따져 물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앉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좌주가 대답을 못하고 하직하고서 문을 나오는데 스님께서 불렀다.

 

좌주여!”
.”
이게 무엇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이 둔한 중아!”하셨다.
이에 대하여 뒤에 백장스님은 대신 말했다.
보았는가?”

 

 

마조록 (51)

 

2. 시중. 감변 --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화남()에서 왔습니다.”
동호(東湖)에는 물이 가득 찼던가?”
아닙니다.”
때맞은 비가 그렇게나 내렸는데도 아직 가득차지 않았더냐?”

이에 도오(道吾)스님이 말했다.

그득히 찼습니다.”
운암(雲岩)스님이 말했다.
잔잔하였습니다.”
동산(洞山)스님이 말했다.
어느 겁()엔들 줄은 적이 있었습니까?”

 

 

마조록 (52)

 

2. 시중. 감변 --

스님께서 다음날 입멸하시려는데 그날 저녁에 원주(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4대가 평안치 못하셨는데 요즘은 어떠십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마조록 (53)

 

2. 시중. 감변 --

분주(汾州)스님이 좌주로 있을 때 42권 경론을 강하고 스님께 와서 물었다.
“312분교는 제가 대략 그 뜻을 압니다만 선가(宗門)의 뜻은 무엇인지요?”
스님께서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좌우에 사람이 많으니, 일단 가거라.”

 

분주스님이 자리를 떠서 문을 나오는데 발이 문턱에 걸치자마자 스님께서 좌주야하고 부르니, 분주스님이 돌아보면서 하고 대답했다.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분주스님은 당장에 깨닫고는 절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제가 42권 경론을 강하면서 아무도 나를 능가할 이가 없다고 여겼었는데, 오늘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보낼뻔 하였습니다.”

 

 

마조록 (54)

 

2. 시중. 감변 --

스님께서 백장(百丈)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지도하는가?”
백장스님이 불자를 세워 대답하니, 스님께서 다시 물었다.
다만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
백장스님이 주장자를 던졌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석문(石門)스님에게 물었다.
한 마디 말로 마대사의 두 뜻을 점칠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석문이 불자를 들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평상시대로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마조록 (55)

 

3.

스님 밑에서 친히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에 88명이 세상에 알려졌고,

숨어서 지낸 이는 그 수효를 알 수 없었다.

스님 성품은 인자하고 모습은 준수하였으며, 발바닥에는 두개의 고리 무뉘가 있고, 머리에는 가마가 셋이 있었다. 설법하며 세상에 머무르기 40여 년 동안에 도를 닦는 무리가 천 명이었다.

 

스님께서 정원(貞元) 4, 무진(戊辰) 21일에 입적하니, 탑은 늑담()의 보봉산(寶峯山)에 있다. 칙명으로 대적선사 대장엄지탑(大寂禪師大藏嚴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배상(裵相)이 액()을 썼고, 좌승상(左丞相) 호득흥(護得興)이 비문을 지었다. 정수(淨修)선사가 송했다.

 

마조 도일(馬祖道一)선사는 돌처럼 쇠처럼 완전하게 수행하여

근본을 깨달아 초탈했으니 곁가지를 찾으면 헛수고만 할 뿐이다.

오래 정을 닦던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내던져버리고
남창(南昌)에서 크게 교화를 펴시니 싸늘한 소나무가 천척(千尺)이로다.

 

馬師道一 行全金石

悟本超然 尋枝勞役
久定身心 一時抛擲
大化南昌 寒松天尺

 

 

마조록 (56)

 

1. 행록

강서(江西) 도일(道一:709-788)스님은 한주(漢洲) 시방현(方縣)사람으로 성은 마()씨이며그 마을에 있는 나한사(羅漢寺)에 출가하였다.

용모가 기이하여 소걸음으로 걸었고 호랑이 눈빛을 가졌다. 혀를 빼 물면 코끝을 지났고 발바닥에는 법륜 문신 두 개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머리를 깎았고 투주() 원률사(圓律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 개원(開院:713-742)연중에 ()의 전법원(戰法院)에서 선정을 닦던 중 회양(懷讓: 677-744)스님을 만났는데, 회양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는 물으셨다.

스님은 좌선하여 무얼 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들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소 수레에 멍에를 채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스님이 대꾸가 없자 회양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앉아서 참선하는 것(坐禪)을 배우느냐, 앉은 부처를 배우느냐. 좌선을 배운다고 하면 선()은 앉거나 눕는 데 있는지 않으며, 앉은 부처(坐佛)를 배운다고 하면 부처님은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뭄 없는 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가르침을 듣자, 스님은 마치 제호(제호)를 마신 듯하여 절하며 물으셨다.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만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昧)에 부합하겠습니까?”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를 배움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요(法要)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도 같다. 그대의 인연이 맞았기 때문에 마침 도를 보게 된 것이다.”

 

다시 물으셨다.
도가 모습(色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수 있겠습니까?”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으니, 모습 없는 삼매도 그러하다.”
거기에 생성과 파괴가 있습니까?”
생성이나 파괴, 모임과 흩어짐으로 도를 보는 자는 도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게송을

듣거라.”

 

심지(心地)는 모든 종자를 머금어 촉촉한 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싹 튼다

삼매의 꽃은 모습 없는데 무엇이 파괴되고 또 무엇이 이루어지랴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스님이 덕분에 깨우치게 되어 마음(心意)이 초연하였으며, 10년을 시봉하면서 그 경지가 날로 더하였다.

이에 앞서 육조(六祖:638-713)스님이 회양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인도 반야다라(般若多羅)가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아래서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 세상 사람을 밟아 버리리라.’ 하셨다했는데, 스님을 두고 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회양스님의 제자 여섯 사람 중에서 스님만이 심인(心印)을 비밀스러이 전수받았을 뿐이었다.

 

처음 건양(建陽)의 불적령(佛跡嶺)에서 임천(臨川)으로 옮겨갔고, 다음으로 남강(南康) 공공산(公山)에 이르렀으며, 대력(大曆:766-779) 연중에 종릉(鍾陵:洪州에 있음)이 있는 개원사(開元寺)에 이름을 걸어두셨다.

그때 대장군(連師)노사공(路嗣恭)이 가풍을 듣고 경모하여 종지(宗旨)를 직접 전수받았고, 이로부터 사방 납자들이 운집하였다.

 

회양스님은 스님이 강서에서 교화를 널리 편다는 소문을 듣고 대중에게 물으셨다.
도일(道一)이 대중을 위해 설법을 하느냐?”
이미 대중을 위해 설법합니다.”
그러자 회양스님은 말씀하셨다.
도대체 소식을 전해오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고는 스님 하나를 그곳으로 보내며그가 상당하였을 때 어떻습니까?’ 하고 묻고 무슨 말을 하거든 기억해 오너라.”고 하셨다.

그 스님이 분부대로 가서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난리통 30년에 소금과 장은 줄여 본 적 없다.”
그 스님이 돌아와 회양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회양스님은 그렇군하셨다.

스님의 입실제자(入室弟子) 139명은 각자 한 곳의 선지식이 되어 더더욱 끝없는 교화를 폈다.

 

스님께서는 정원(貞元) 4(788) 정월 중에 건창(建昌) 석문산(石門山)에 올라 숲속을 거닐다가 평탄한 골짜기를 보더니 시자에게 말씀하셨다.
썩어질 내 몸이 다음 달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말씀을 끝내고 돌아와 이윽고 병을 보이므로 원주(院主)가 문안을 드렸다.
스님께선 요즈음 건강이 어떠하신지요.”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21, 목욕하고 가부좌한 채 입멸(入滅)하셨다. 원화(元和:806-820) 연중에 대적선사(大寂禪師)라 시호하고, 탑은 대장엄(大藏嚴)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