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중생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

동산/혜산방 2018. 9. 12. 11:20

중생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 / 성철스님

 

중생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

"어떤 사람이든지 신심을 내어 온 천하의 좋은 물건을 허공계에 가득 차도록 다 모으고, 또 여러 초. . 을 켜되 그 촛불 심지는 수미산 같고 기름은 큰 바닷물같이 하여 두고서 수많은 미진 수 불()에게 한없이 절을 한다면 이보다 더 큰 불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불공 중에서 가장 큰 불공으로 그 공덕도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법공양(法供養)이란 것이 있습니다. 일곱 가지의 법공양 중에서도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것이 그 골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많은 물자를 당신 앞에 갖다 놓고 예불하고 공을 들이는 것보다도 잠시라도 중생을 도와주고 중생에게 이익 되게 하는 것이 몇 천만 배 비유할 수 없이 더 낫다고 단정하셨습니다.

 

비유하자면, 장사를 할 때 밑천을 많이 들여서 이익이 적은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밑천을 적 게 들여 이익 많은 장사를 할 것이냐 하면 누구든지 이익이 많은 장사를 하려 할 것입니다. 많은 물자를 올려놓고 불공을 드리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익중생공양(利益衆生供養) 곧 중생을 잠깐 동안이나마 도와주는 것은 큰 힘이 들지 않으므로 밑천이 적게 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의 이익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비용 많이 들여서 하는 그 불공과 중생을 잠깐 도와주는 그 불공을 서로 비교할 것 같으면, 천분의 일, 만분의 일, 억만 분의 일로도 비유할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누구든지 나에게 돈 갖다 놓고 명과 복을 빌려 하지 말고 너희가 참으로 나를 믿고 따른다면 내 가르침을 실천하라"하셨습니다. 중생을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행원품의 다른 곳에서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길가에 병들어 거의 죽어 가는 강아지가 배가 고파 울어댈 때 식은 밥 한 덩어리를 그 강아지에게 주는 것이 부처님께 만 반진수를 차려놓고 무수, 수천만 번 절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공이 크다"고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중생을 도와주는 것이 참으로 불공이요,

이를 행 해야만 참으로 내 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철스님 10주기 특집 추모법문

 

참다운 불공

성철스님 10주기 특집 추모법문

남을 위한 기도가 최상의 공덕 조계종 전 종정 성철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았다. 이천만 한국불자들의 가슴속에 무소유의 청빈한 삶,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올곧은 수행정신, 사회와 교단을 향한 소신 있는 큰 발자취, 동서고금을 아우른 위대한 선사상가의 표상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 스님의 커다란 가르침과 발걸음을 되새겨 보기 위해 특집 추모법문을 싣는다.<편집자>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에 보면 불공(佛供)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보현보살 십대 원(十大願)의 광수공양(廣修供養)편 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신심을 내어 온 천하의 좋은 물건을 허공계에 가득 차도록 다 모으고, 또 여러 초를 켜되 그 촛불 심지는 수미산 같고 기름은 큰 바닷물같이 하여 두고서, 수많은 미진 수 부처님에게 한없이 절을 한다면 이보다 더 큰 불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많은 물자를 당신 앞에 갖다 놓고 예불하고 공 드리고 하는 것보다도, “잠시라도 중생을 도와주고 중생에게 이익 되게 하는 것이 몇 천만 배 비유할 수 없이 더 낫다고 단정하셨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누구든지 나에게 돈 갖다 놓고 명과 복을 빌려 하지 말고, 너희가 참으로 나를 믿고 따른다면 내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중생을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행원품의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길가에 병들어 거의 죽어가는 강아지가 배가 고파 울어댈 때 식은 밥 한 덩이를 그 강아지에게 주는 것이, 부처님께 만반진수(滿盤珍羞)를 차려 놓고 수천만 번 절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공이 크다고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중생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이요, 이를 행해야만 참으로 내 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과 정신으로, 또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이 모두 불공입니다. 우리가 몸, 마음, 물질 이 세 가지로 불공을 하려고 하면 불공할 것이 세상에 꽉 차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게을러서, 게으른 병 때문에 못 할 뿐입니다. 이렇게 불공하여야만 마침내 성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은 착한 일이지만, 자랑하는 그것은 나쁜 일입니다. 애써 불공해서 남을 도와주었다 하더라도, 자랑하면 자신의 불공을 모두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 불공을 자랑과 자기선전을 허기위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공이 아닙니다. 자기 자랑할 재료를 만드는 것입니다. 입으로 부수어 버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사람만이 상대가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그 상대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미물이고 할 것 없이 일체 중생 모두가 불공 대상입니다. 일체 중생을 돕는 것이 불공입니다. 우리 대중도 다 알겠지만 승려란 부처님 법을 배워 불공 가르쳐 주는 사람이고, 절이란 불공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불공의 대상은 절 밖에 있습니다. 불공 대상은 부처님이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다 불공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불공의 방향입니다.

 

내게 항상 다니는 사람에게는 의무적으로 절을 시킵니다. 108배 절을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면 날마다 아침에 108배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도 새벽 마다 꼭 108배를 합니다. 그 목적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발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함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남을 구함이 아니요 모든 중생이 함께 같이 무상보리 얻어 지이다.

(我今發心 不爲自求 人天福報 願與法界衆生 一時同得 阿 多羅三 三菩提)’

그리고 끝에 가서는, 중생들과 보리 도에 회향합니다.(……廻向衆生及佛道)

 

일체 중생을 위해, 남을 위해 참회하고 기도했으니 기도한 공덕이 많습니다. 이것은 모두 일체 중생에게 가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원하옵나니 수승한 이 공덕으로 위없는 진 법계에 회향하오며(願將以此勝功德 廻向無上眞法界)’라고 발원합니다. 그래도 혹 남은 것, 빠진 것이 있어서 나한테로 올까봐 온갖 것이 무상진법계로, 온 법계로 돌아가고 나한테는 하나도 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신라, 고려에 전해 내려온 참회법(懺悔法)입니다. 중국도 공산화 이전에는 총림(叢林)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절에서 다 참회해 온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서, 일체 중생을 대신해서 모든 죄를 참회하고,

일체 중생을 위해 모두 기도했습니다.

 

인과법칙이란 불교뿐만 아니라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과보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기도가 되며, 남을 해치면 결국 나를 해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도우면 아무리 안 받으려 해도 또다시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생활하면 남을 내가 도우니 그 사람이 행복하게 되고, 또 인과법칙에 의해 그 행복이 내게로 전부 다 오는 것입니다.

오직 부탁하고 싶은 것은 부처님 말씀에 따르는 불공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석(朝夕)으로 부처님께 예불하면서 꼭 한 가지 축원을 합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세 번 축원하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바로 부모님입니다. 내 집안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 불공(佛供)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발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입니다. 날아다니는 생명들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이리 가도 부처님, 저리 가도 부처님, 부처님을 아무리 피하려고 하여도 피할 수가 없으니 불공의 대상은 무궁무진하여 미래 겁(未來劫)이 다하도록 불공을 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이렇듯 한량없는 부처님을 모시고 항상 불공을 하며 살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께 한없는 공양구를 올리고 불공하는 것보다, 곳곳에 계시는 부처님들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이 억 천만 배 비유할 수 없이 더 복이 많다고 석가세존은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불보살(佛菩薩)의 큰 서원이며 불교의 근본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듯 거룩한 법을 가르쳐 주신 석가세존께 깊이 감사하며 항상 불공으로 생활합시다.

성철 큰스님을 기리며... 사바의 빛이 되어 다시 오시길...

-출처/만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