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能嚴經)
1권) 이경을 설한 장소와 청중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시라벌 성의 기원정사에서 德 높은 比丘들 일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모두 번뇌를 여윈[無漏] 큰 阿羅漢들이며 부처님의 제자로서 불법을 잘 보호해 나갈 뿐만 아니라, 모든 因果에서 벗어난 분들이었다.
또한 여러 국토에서 위의를 갖추었으며 부처님을 따라 法輪을 굴리어 부처님이 유촉하신 것을 충분히 감당할 만하였으니, 戒律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지켜서 三界의 큰 모범이 되었고 한량없는 應身으로써 衆生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며, 未來의 모든 衆生까지도 고난에서 구제하여 俗世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큰 智慧를 지닌 사리불과 마하목건련과 마하구치라와 부루나미다라니자와 수보리와 우바니사타등이 으뜸이었다.
또 한량없는 辟支佛과 아라한[無學]과 아울러 처음 발심한 사람들까지 여름결제를 마치고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그 동안에 잘못이 있는 사람은 모든 大衆에게 알리고 懺悔하였으며, 시방의 보살들도 의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여쭈어 의심을 풀고, 慈悲로우면서도 엄숙하신 부처님을 흠모하여 받들면서 비밀한 理致를 들으려고 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으시어 그 곳에 모인 여러 대중을 위하여 깊고 奧妙한 眞理를 말씀해 주시니, 참석하고 있던 청정한 대중들은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듣게 되었으며 가릉빈가의 소리와 같은 梵音이 시방세계에 가득하였다.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보살들 또한 도량에 모여 들었는데 그 중에서는 문수사리보살이 으뜸이었다.
1권) 이경을 설한 동기
그때 바사닉 왕이 부왕을 위하여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재(齋)를 열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성대하게 차린 후 부처님과 함께 여러 큰 보살들을 宮中으로 초청하여 극진히 대접하였다.
같은 때에 城中에는 또 장자와 거사들이 있어 스님들을 공양하려 하면서 부처님께서 오셔서 공양에 응해 주시기를 바라므로 부처님께서는 文殊菩薩에게 명하시어 여러 보살과 阿羅漢들을 거느리고 가서 공양에 응하도록 하였다.
오직 아난만은 이보다 앞서 따로 초청을 받고 멀리 갔다가 미처 돌아오지 못해서 스님들이 앉는 좌석의 차례[僧次]에 참여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 아난은 상자와 아사리도 없이 혼자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날따라 공양거리가 없었으므로 아난은 발우를 들고 지나오던 城안에서 차례로 밥을 빌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한 번도 스님들께 供養한 일이 없는 시주에게 가서 밥을 얻으리라 생각하고 깨끗함과 더러움에 상관없이 찰제리와 전다라에게도 平等한 慈悲를 베풀어 미천함을 가리지 않으려 하였다. 그 뜻은 모든 衆生에게 한량없는 功德을 원만히 이루게 하려 함이었다.
또 아난은 이미 세존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을 꾸중하실 적에 '阿羅漢이 되고서도 마음이 平等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을 알고 있었으며,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마음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거절함이 없으셨으므로 그 의심과 비방에서 벗어났음을 흠앙하던 터였다.
아난은 큰 城을 지나 작은 城門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위의를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여 供養을 구하였다. 그때였다. 아난이 供養을 구하기 위하여 淫亂한 女人이 사는 집을 지나가다가 幻術을 하는 마등가 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사비가라의 선범천주(仙梵天呪)를 외우면서 아난을 끌어들여 淫亂한 몸으로 비비고 만지면서 아난의 戒行을 깨드리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이 마등가 의 음란한 魔術에 걸려든 것을 아시고 供養을 마치고는 즉시 돌아오시니 王과 대신 그리고 장자와 거사들도 모두 부처님을 따라와서 法門 듣기를 원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정수리로 온갖 보배롭고 두려움 없는 光明을 뿜어 내셨는데 그 光明 속에는 다시 천 개의 잎으로 된 보배로운 연꽃이 생기면서 부처님의 化身이 가부좌하고 앉아 神呪를 說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명하여 그 神呪를 가지고 가서 아난을 구원(救援)하게 하시니 악주(惡呪)가 소멸하므로 아난과 마등가를 데리고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난이 부처님을 뵈옵고 이마를 땅에 대어 禮를 올리고 슬피 울면서 한없이 오랜 過去로부터 한 결 같이 많이 듣기만 했을 뿐 아직 道力이 온전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그리고는 은근하게 시방의 부처님께서 보리를 이루신 오묘한 사마타와 삼마바리 그리고 선나의 최초 방편을 간절히 청하였다.
그때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菩薩과 시방의 큰 阿羅漢과 辟支佛 등도 모두 즐겨 듣기를 원하며 물러가 앉아서 묵묵히 거룩한 가르침을 기다렸다.
1권)허망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나는 동기로서 정을 같이 나눈 천륜(사촌형제)이다. 네가 처음 發心할 적에 나의 法 가운데에서 어떤 거룩한 모양을 보았기에 세상의 깊고 중한 은애를 미련 없이 버렸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의 서른두 가지 상이 뛰어나게 미묘하고 아주 특이하며 형체가 마치 맑은 유리처럼 밝게 비침을 보고서 이러한 모양은 慾愛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사옵니다.
왜냐하면 慾氣는 더럽고 흐려서 비린내, 누린내가 풍겨나고 고름과 피가 뒤섞여서 그와 같이 뛰어나게 깨끗하고 미묘하게 밝은 紫金光 덩어리를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목마를 때 물을 찾듯이 우러러보며 부처님을 따라 머리를 깎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衆生들에게 한없이 오랜 過去로부터 나고 죽음이 계속되는 것은 항상 머무는 참 마음의 맑고 밝은 本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虛妄한 생각이 작용한 탓이니 이 虛妄한 생각은 참되지 못하므로 나고 죽는 世界를 輪回하느니라.
만약 네가 지금 가장 높은 보리의 참되고 밝은 性品을 알려거든 마땅히 정직한 마음으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 시방의 如來가 모두 같은 法으로써 生死를 벗어났으니 이는 모두 정직한 마음 때문이었느니라. 마음과 말이 바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지위든 그 중간에 모든 왜곡된 현상이 없었느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마땅히 네가 발심한 것은 如來의 서른두 가지 상호 때문이었다고 했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보았으며 누가 좋아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제 마음과 눈으로 하였습니다. 눈으로 如來의 거룩한 모습을 뵈옵고 마음에 좋아함이 생겼기 때문에 제가 發心하여 죽고 나는 世界를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참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마음과 눈으로 인한 것이니 만약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煩惱를 항복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國王이 敵으로부터 침략을 받고서 軍隊를 동원하여 토벌하려면 國王의 軍隊가 敵兵이 있는 곳을 마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으니라. 너로 하여금 生死의 世界를 헤매게 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음과 눈은 어느 곳에 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모든 世間에 열 가지 다른 衆生들도 다 같이 識別하는 마음을 지녔사온데 그것은 몸속에 있습니다. 如來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을 보아도 그것은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며, 제가 지금 네 가지 요소로 된 저의 肉眼을 살펴보아도 제 얼굴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認識하는 마음은 실로 몸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부처님의 講堂에 앉아서 기타림을 보고 있는데 강당(講堂)과 숲이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여러 층으로 된 전각(殿閣) 중에 깨끗한 큰 강당은 급고독원에 있고 기타림은 강당 밖에 있습니다."
"아난아, 너는 이 강당 안에서 먼저 무엇이 보이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강당 안에 있으면서 먼저 부처님을 뵙고 다음에 대중을 보며, 이와 같이 밖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숲과 동산이 보입니다."
"아난아, 네가 숲과 동산을 본다고 하니 무엇으로 인해서 보느냐?"
"세존이시여, 이 큰 강당의 문과 창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제가 강당 안에 있으면서도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大衆 가운데서 황금빛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아난과 여러 大衆에게 말씀하셨다. "삼마제가 있으니 그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으로 만행이 다 갖추어졌느니라. 시방의 如來가 이 유일한 문으로 初出하신 오묘하고 장엄한 길이니 너는 명심하여 들어라."
아난이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올리고 땅에 엎드린 채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았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과 같이 몸은 講堂 안에 있으나 문과 창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멀리 수풀과 동산을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 講堂 안에 있으면서 如來는 보지 못하고 講堂 바깥만 볼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講堂 안에 있으면서 如來는 보지 못하고 숲과 동산만을 본다고 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난아, 너도 이와 같으니라. 너의 神靈스런 마음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나니 만약 너의 그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몸속에 있다면 그때에 마땅히 몸속의 것부터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衆生이 먼저 몸속을 보고 난 다음에 밖의 물건을 본 다더냐?
비록 염통. 간. 지라. 밥통은 볼 수 없으나 손톱이 자라고 털이 자라며 힘줄이 움직이고 맥박이 뛰는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이렇듯 몸속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밖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理致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이러한 法音을 듣고 보니 제 마음이 실로 몸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방 안에 등불을 켜 놓으면 그 불빛이 반드시 방 안을 먼저 비추고 난 뒤에 방문을 통하여 뜰과 마당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몸속은 보지 못하고 몸 밖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이 방 밖에 있어서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理致가 너무도 분명하여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서 부처님의 분명한 理致와 같으리니, 잘못된 생각은 아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比丘들이 마침 나를 따라 시라벌 城에서 음식을 얻어 가지고 기타 숲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이미 供養을 마쳤지만, 너는 比丘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먹어서 여러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이 모든 比丘들이 비록 阿羅漢이 되었으나 몸과 생명이 같지 않은데 어떻게 한 사람이 먹어서 여러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보고 하는 마음이 정말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자연히 너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깨달아야 할 것이 몸에 있다면 마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너라면 같은 손을 너에게 보이노니 네 눈으로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분별합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서로 안다면 어떻게 몸 밖에 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 한 바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은 理致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처럼 안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서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니, 제가 지금 생각해 보건대 숨어 있는 한 곳을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한 곳이 어디냐?"
아난이 말하였다. "이 또렷하게 아는 마음이 이미 몸속은 알지 못하고 몸 밖만 잘 볼 수 있으니 제 생각 같아서는 눈 속에 숨어 있는 듯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유리그릇을 가져다가 두 눈에 댄 것과 같아서 비록 물건에 가려졌으나 장애가 되지 않고 그 눈이 보는 대로 따라서 곧 분별하나니 그렇다면 저의 깨닫고 알고하는 마음이 몸속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눈 속에 있기 때문이고 분명하게 밖을 보는데 장애가 없는 것은 눈이 맑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것처럼 눈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저 유리를 눈에 댄 사람이 마땅히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山과 江을 볼 적에 유리가 보이겠느냐. 안보이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진실로 유리가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만약 눈에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마땅히 山과 江을 볼 적에 어찌하여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눈을 본다면 눈이 곧 對象이 되는 物體와 같아서 눈이 보는 데를 따라서 分別한다는 말이 成立될 수 없고, 만약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 있음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함은 理致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저는 지금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衆生들의 몸이 장부는 속에 있고 구멍은 밖에 있으니 장부는 어둡고 구멍은 밝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마주하여 눈을 뜨고 밝음을 보는 것은 밖을 본다고 하고.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은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 생각이 어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적에 그 어두운 境界가 눈과 서로 대하였느냐. 대하지 아니하였느냐? 만일 눈과 대하였다면 어두운 境界가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몸속이라 하겠느냐?
만약 몸속이라고 한다면 어두운 방 안에 있을 적에 해나 달이나 등불이 없으면 저 어두운 방 안이 전부 너의 삼초나 육부일 것이며, 만약 어두운 세계가 눈과 마주하지 않는다면 본다고 하는 말이 어떻게 成立되겠느냐?
만약 밖으로 보는 것을 떠나서 안으로 대하는 것이 성립된다 하여 눈을 감고 본 어둠을 몸속이라고 한다면 눈을 뜨고 밝음을 볼 적엔 어째서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을 대하는 것도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얼굴을 보는 것이 성립된다면 이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과 눈이 곧 허공에 있어야 하리니 어떻게 몸속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허공에 있다면 그것은 너의 몸이 아니므로 그럴 경우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如來까지도 너의 몸이라고 하겠구나.
그러니 너의 눈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인데 너는 굳이 고집하여 몸과 눈이 다 같이 안다고 한다면 이는 마땅히 두 개의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곧 네 한 몸이 마땅히 두 부처를 이루겠구나.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이 몸속을 보는 것이라고 함은 理致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찍이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四部大衆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법이 생기며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곧 생각하는 그 실체가 바로 저의 心性이라고 봅니다.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도 있는 것이니 역시 마음은 안과 밖과 중간 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말하기를 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겨나므로 合하는 곳을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지만 이 마음은 本體가 없는 것이어서 合해질 곳도 없다.
만약 본체가 없는데도 합할 수 있다면 이는 십구 계가 칠진으로 인하여 합하는 것이니 그런 理致는 있을 수 없느니라. 만약 마음의 本體가 있다면 가령 네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네가 알고 있는 마음은 몸 속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약 몸속에서 나온다면 몸속을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온다면 먼저 얼굴부터 보아야 할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눈은 보는 것이며, 마음은 아는 것으로, 마음은 눈이 아니거늘 본다고 하심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눈만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적에 눈이 事物을 볼 수 있느냐?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은 있으니 마땅히 物件을 본다고 해야 되겠구나. 만약 物件을 본다면 어찌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아난아, 또 너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만약 반드시 實體가 있는 것이라면 그 實體는 하나이냐. 여럿이냐? 지금 네 몸에 가득하게 퍼져 있느냐. 가득하게 퍼져 있지 아니하냐?
만약 몸이 하나라면 네가 손으로 한 팔을 찌를 적에 사지가 다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약 모두가 함께 깨닫는다면 찌른 데가 따로 없어야 하거늘 만약 찌른 데가 따로 있다면 네 몸이 하나라는 것은 자연 성립될 수 없느니라.
만약 몸이 여러 개라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하리니 어느 것이 네 몸이냐? 만약 온몸에 가득 퍼져 있다면 앞에서 찌르는 경우와 같을 것이요, 온몸에 가득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네 머리에 부딪치고 다시 발에 부딪쳤을 적에 머리에 느끼는 것이 있으면 발은 몰라야 할 것인데 지금 너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은 理致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들었사온데 부처님께서 문수 등 여러 보살들과 함께 實相에 대해 말씀하실 적에 '마음은 몸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생각엔 몸속에 있다고 하자니 안을 보지 못하고 밖에 있다고 하면 서로 알지 못해야 하는데, 안의 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에 있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아는 것으로 보아서는 밖에 있다는 것도 옳지 않으니 그렇다면 지금 서로 알면서도 안은 보지 못하니 마땅히 중간에 있는 것 같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中間이라고 말하는데 그 中間은 반드시 막연한 것이 아니어서 있는 데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 中間을 찾아보아라. 中間이 어디냐? 따로 장소가 있느냐. 몸에 있느냐? 만약 몸에 있을 경우 변두리에 있다면 中間이 아니요 中間에 있다면 몸속과 같으니라. 만약 따로 장소가 있다면 표시할 곳이 있느냐. 없느냐?
표시할 곳이 없다면 이는 없는 것과 같고 표시할 곳이 있다면 이는 일정하지 아니하리니,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표시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중간이라고 표시했을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고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된다. 표시한 그 자체가 이미 혼란스러우니 마음도 따라서 혼란해지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말씀드린 중간이란 것은 그러한 두 가지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눈과 물질[色塵]이 반연이 되어 眼識이 생기다'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눈은 分別이 있고 物質은 느낌이 없는 것인데 意識은 그 中間에서 생겨나니 바로 그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여겨집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만약 눈과 物質의 中間에 있는 것이라면 이 마음 自體가 두 가지를 겸하였느냐. 겸하지 않았느냐?
만약 두 가지를 겸한 것이라면 눈과 物質이 섞여서 混亂하리니 物質은 눈처럼 알음알이가 없으므로 적이 되어 둘로 갈라설 것이니 어떻게 中間이라고 하겠느냐?
두 가지를 겸하지 아니하였다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곧 자체에 성품이 없는 것이리니 중간이란 어떤 모양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간에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理致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에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대 목련. 수보리. 부루나. 사리불, 이 네 분이 제가들과 함께 法輪을 굴리실 적에 늘 말씀하시기를
'알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곳에도 있는 데가 없어서 모든 것에 執着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지금 제가 執着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알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어느 곳에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 세상과 허공이나 물 속 또는 육지에서 날아다니거나 걸어 다니는 모든 물상을 '일체'라고 하니,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
없다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나니 무엇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냐?
모든 것이 있는데도 執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執着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형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곧 형상이다. 형상이 있으면 存在하는 것인데 어떻게 執着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執着이 없는 것을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理致에 맞지 않느니라."
1권) 참된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때 아난이 대중 속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을 다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본래 부처님의 가장 어린 아우로서 부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록 지금 출가했으나 오히려 귀여워해 주시는 것만 믿고서 많이 듣기만 하였을 뿐 煩惱를 여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비가라의 呪文을 꺾어 항복시키지 못하고 저들에게 홀려 음실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는 참다운 마음이 있는 데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라오니 世尊께서는 큰 慈悲로 가엾게 여기시어 저희들에게 사마타의 길을 열어 보이시어 모든 천제들로 하여금 추악한 소견을 깨뜨리게 하소서." 말을 마치고 난 아난은 몸을 땅에 던지듯이 엎드려서 여러 大衆들과 함께 목마를 때 물을 찾듯이 정성을 다하여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때 世尊께서 얼굴로부터 갖가지 光明을 발하시니 그 빛의 찬란하기가 마치 백 천 개의 해와 같았다.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이와 같이 시방의 티끌처럼 많은 國土가 일시에 나타나더니 부처님의 위신력 으로 여러 世界를 한 世界가 되게 하셨다.
그 世界 속에 있는 여러 큰 보살들은 모두 제 나라에 있으면서 합장하고 공경을 다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衆生이 시작이 없는 過去로부터 여러 가지로 뒤바뀌어서 그 業의 씨앗이 자연 악차의 열매와 같이 한데 모여 있으며, 修行한 모든 사람들이 最上의 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별도로 聲聞이나 연각을 이루며, 外道와 하늘과 魔王과 마구니의 권속이 되기도 하니,
이 모두가 두 가지 根本을 알지 못하고 뒤섞여 어지럽게 닦아 익혀왔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모래를 삶아서 좋은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티끌처럼 많은 劫의 세월을 지낸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룰 수 없느니라.
그 두 가지 根本이란 무엇인가? 아난아,
하나는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의 根本이니, 지금 너와 모든 衆生들이 반연하는 마음을 가지고 自性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요,
둘째는 시작이 없는 보리와 열반의 원래 깨끗한 本體이니, 원래부터 밝은 너의 識情이 모든 因緣을 만드는데 바로 그 因緣으로 인하여 본래의 참다운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러 衆生들은 이렇게 본래부터 밝았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록 종일토록 행하여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여러 갈래의 衆生世界로 잘못 빠져들게 되느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사마타의 길을 알아서 生死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지금 다시 너에게 묻겠노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난 후, 부처님께서는 황금빛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것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보입니다." "너는 무엇을 보느냐?" "저는 부처님께서 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저의 마음과 눈에 비추는 것을 봅니다."
"너는 무엇으로 보느냐?"
"저와 대중들은 다 같이 눈으로 보옵니다."
"네가 지금 나에게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제 마음과 눈에 비춘다.'고 하였는데 네 눈은 본다고 하겠지만 무엇을 마음이라 하여 나의 주먹이 비추는 것을 받아들이느냐?"
"부처님께서 저에게 지금 마음이 있는 곳을 물으시므로 제가 마음을 미루어 찾아보았사온데, 이렇게 미루어 찾는 바로 그것을 저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아난아, 그것은 네 마음이 아니니라."
아난이 흠칫 놀라면서 자리를 비켜서서 합장하고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것이 저의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앞에 나타난 對象 物質의 虛妄한 모양에 대한 생각이다. 너의 참다운 性品을 현혹시키는 것이니 이는 네가 시작이 없는 過去로부터 지금까지 도적을 아들로 잘못 인정하고 있어서 너의 본래 항상 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고 죽는 世界를 輪回하고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사랑하는 아우입니다. 마음으로 부처님을 사모하였으므로 저를 출가하게 하였사오니 저의 마음이 어찌 부처님만을 공양하오리까?
나아가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國土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훌륭하신 스승님을 섬기는 것과 큰 勇猛을 발해서 行하기 어려운 모든 일들을 行하는 것도 모두가 이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비록 法을 비방하고 훌륭한 根器에서 영원히 물러난다 하더라도 오직 이 마음일 따름인데, 만약 이렇게 발생하는 분명한 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마음이 없는 것이 마치 토목과 같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을 여의면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으리니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까?
저는 참으로 놀랐사오며 아울러 여기 모인 大衆들도 의혹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큰 慈悲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한 저희들을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때 世尊께서 아난과 여러 大衆에게 가르침을 열어 보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나지도 죽지도 않는 法을 아는 智慧를 證得하게 하려고 獅子座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며 말씀하셨다.
"如來께서는 항상 '모든 法이 생기는 것은 오직 마음이 나타내는 것이며, 모든 原因과 結果와 世界의 작은 티끌까지도 마음으로 인하여 實體를 이룬다.'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만약 모든 世界의 온갖 것 가운데 저 풀잎이나 실오라기까지라도 그 根源을 따져 보면 모두 本體의 性質이 있으며, 비록 虛空까지도 이름과 모양이 있거늘 더구나 깨끗하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은 모든 마음의 本性이 되는 것이니 어찌 實體가 없겠느냐?
만약 네가 分別하고 깨닫고 觀察하여 분명하게 아는 그 性品을 '마음'이라고 고집한다면 이 마음은 마땅히 온갖 빛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접촉과 법 등 상대되는 모든 對象을 여의고 서로 따로 온전한 성품이 있겠느냐?
즉, 다시 말하면 네가 지금 나의 法門을 듣는 것 역시 소리로 인하여 분별함이 있는 것과 같으니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모든 것을 없애고 안으로 그윽이 한가함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 또한 法塵을 分別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느니라.
나는 네게 명령하여 마음이 아닌 것으로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마음에 대하여 細密하고 자세하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만약 앞에 나타나는 對象을 여의고도 分別하는 心性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의 마음이겠지만 만약 分別하는 心性이 앞에 나타난 對象을 여읜 후에 實體가 없어지는 것이라면 이는 앞에 나타나는 對象을 分別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데 앞에 나타나는 對象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만약 변하여 없어질 때에는 이 마음이 곧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니, 그렇다면 너의 法身도 함께 끊어져 없어질 것이니라. 그러면 그 무엇이 나지도 죽지도 않는 法을 닦아서 證得하겠느냐?"
그때 아난과 대중들은 묵묵히 넋이 나간 듯하였다. 계속해서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에서 수학(修學)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비록 차례로 이어서 닦는 아홉 가지 禪定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煩惱를 다 끊어 阿羅漢이 되지 못한 것은 모두 저 나고 죽고 하는 허망한 생각에 執着해서 眞實한 것인 양 오인(誤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비록 많이 알기는 하였으나 聖人의 課業을 成就하진 못했느니라."
1권) 참된 견해란 무엇인가?
아난이 그 말을 다 듣고 난 후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엎드려 꿇어않아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을 따라 발심하여 출가하였사오나 부처님의 威嚴과 神靈스러움만 믿고서 늘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애써 닦지 아니하여도 부처님께서 나에게 三昧를 얻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여겼습니다.
몸과 마음은 본래 서로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저의 本心을 잃었으니 몸은 비록 출가하였으나 마음은 道에 들어가지 못함이 마치 가난한 아이가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간 것과 같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제 아무리 많이 들었다 하더라도 修行하지 않으면 듣지 아니한 것과 같음을 알았사오니 이는 마치 사람이 말로만 음식을 말하고 먹지 않으면 결코 배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世尊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두 가지 障碍에 얽매인 것은 진실로 고요하고 항상 한 心性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궁하고 외로운 것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오묘하고 밝은 마음을 발하여 저의 道眼을 열어 주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가슴의 卍자로부터 보배의 빛을 뿜어내시니 그 찬란하고 밝은 빛은 백 천 가지 색으로 어울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빛을 시방의 티끌처럼 많고 넓은 부처님의 세계에 일시에 두루 퍼지게 하여 시방에 있는 보배로운 사찰과 모든 부처님의 정수리에 닿게 하셨다가 다시 되돌려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이르게 하셨다.
그런 후에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法의 깃발을 세우고, 시방의 모든 衆生들로 하여금 오묘하고 은밀하며 비밀스럽고도 깨끗한 밝은 性品을 깨우쳐 깨끗한 눈을 뜨게 하리라.
아난아, 네가 아까 내게 대답하기를 '빛나는 주먹을 봅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주먹의 光明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며 어떻게 주먹이 되었으며 너는 무엇으로 보았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부처님의 온몸은 염부단금이므로 보배의 산처럼 빛나옵니다. 때문에 光明이 있는 것이고 저는 그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또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쥐고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주먹이 되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진실한 말로써 네게 말하나니, 智慧 있는 모든 사람들을 비유로써 깨닫게 하리라. 아난아, 내 손이 없으면 내 주먹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이 만약 네 눈이 없으면 네가 보는 것도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네 눈을 내 주먹과 같은 이치로 비유하면 그 의미가 서로 통하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저의 눈이 없으면 제가 보는 것은 이미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如來의 주먹에 비유하면 사실과 이치가 서로 통할 듯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서로 통한다고 말하였으나 그 이치는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내 손이 없으면 주먹은 반드시 없겠지만 저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으리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네가 시험 삼아 길에 나아가서 소경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면 그 소경은 '지금 내 눈에는 오직 까맣게 어두운 것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이치로 보건대 앞의 대상이 어두울지언정 보는 것이야 어찌 없다고 하겠느냐?"
"모든 소경들이 눈앞에 오직 까맣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을 어떻게 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난아, 모든 소경들은 눈이 멀어서 오직 까맣게 어두운 것만 보는 것과 저 눈을 가진 사람이 깜깜한 방에 있는 그 두 가지 깜깜한 현상이 다르냐? 다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깜깜한 방에 있는 사람과 저 소경들의 캄캄함을 비교해 보면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눈 먼 사람이 대상이 캄캄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눈의 光明을 되찾게 되면 반대로 그 對象의 갖가지 빛깔을 보게 되리니 이것을 '눈이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 어두운 방 안에 있던 사람이 對象이 캄캄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등불을 켜면 역시 對象의 갖가지 빛깔을 볼 것이니 이것은 마땅히 등불이 보는 것이라고 해야겠구나.
만약 등불이 보는 것이라면 이는 등불이 능히 보는 것이므로 등불이라고 이름 하지 못할 것이며, 또 등불이 보는 것이라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등불은 빛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것은 눈이지 등불이 아니며, 눈은 빛깔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性品은 마음이지 눈이 아니니라."
아난은 다시 이 말을 듣고서도 여러 대중들과 함께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으나 마음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如來께서 慈悲하신 音聲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合掌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慈悲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 세존께서는 도라 면처럼 부드러운 그물 모양의 빛나는 손을 들어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편 채로 아난과 여러 大衆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道를 이루고 녹야원에서 교 진여 등 다섯 비구와 너희 四部大衆을 위하여 말하기를, '모든 衆生이 보리와 阿羅漢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모두 客塵煩惱로 인하여 그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너희들은 그때 무엇을 깨달아서 지금 聖人의 課業을 이루었느냐?"
그때 교 진여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금 장로로서 大衆 가운데에서 유독 저만이 '알았다'는 이름을 얻은 것은 '客塵'이란 두 글자를 깨닫고 聖人의 課業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世尊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길 가는 사람이 객주 집에 들어가 잠을 자거나 밥을 먹다가 밥 먹고 잠자는 일을 마치고는 행장을 꾸려서 머물 여가도 없이 다시 길을 떠나지만 객주 집 主人은 떠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머물지 못하는 사람은 나그네이고 머무는 사람은 主人이니 머물러 있지 못하는 이를 '나그네'라고 할 것입니다.
또 비유하면 비가 개이고 밝은 태양이 떠오르면 햇빛이 문틈으로 들어와 밝게 비치는데 그때 虛空에는 떠다니는 작은 먼지가 있어 이리저리 날아다니지만 虛空은 고요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맑고 고요한 것은 虛空이요, 움직이는 것은 티끌이므로 저는 움직이는 것을 '먼지'라고 정의를 내리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대중 앞에서 다섯 손가락을 구부렸다가 펴고 폈다가 구부리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저는 如來께서 온갖 보배로운 수레바퀴 같은 손바닥을 大衆 앞에서 폈다 쥐었다 하시는 것을 봅니다."
"네가 내 손이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 함을 본다고 했는데, 그것은 내 손이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이냐. 아니면 네가 보는 것이 펴졌다 쥐어졌다 하는 것이냐?"
"세존께서 大衆 앞에서 보배의 손을 폈다 쥐었다 하시므로 제가 如來의 손이 스스로 폈다 쥐었다 하심을 본 것이지 저의 보는 것이 펴졌다 쥐어졌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것이 움직였고 어느 것이 가만히 있었느냐?"
"부처님의 손도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습니다만, 저의 보는 것도 오히려 고요하다고 할 것이 없는데 어느 것을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고집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하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손바닥으로부터 한 줄기의 보배광명을 뿜어 아난의 오른쪽에 있게 하니, 아난이 머리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다.
또 한 줄기 빛을 뿜어 아난의 왼쪽에 있게 하니 아난이 또 머리를 돌려 왼쪽을 보거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머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움직였느냐?"
"여래께서 보배의 빛을 내시어 저의 왼쪽, 오른쪽에 보내셨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을 보느라고 머리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아난아, 네가 부처님의 보배의 빛을 보느라고 머리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고 하니, 그것은 네 머리가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보는 것이 움직인 것이냐?"
"세존이시여, 저의 머리가 저절로 움직인 것이지 저의 보는 性品은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조차 없으니 어찌 움직였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널리 大衆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만약 중생들이 동요하는 것을 대상 물질[塵]이라하고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나그네라 한다면, 너희들은 아난의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을 뿐 보는 것은 움직이지 않았음을 관찰하고, 또 너희가 나의 손은 스스로 폈다 쥐었다 하였으되 보는 것은 펴졌다 쥐어졌다 함이 없는 것임을 깨달아라.
어찌하여 지금 너희는 동요하는 것을 몸으로 여기고 또한 對象을 物質이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마다 생겼다 없어졌다 하면서 참다운 性品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짓을 하느냐?
더욱이 性品의 참마음은 잃어버리고 物體를 몸인 줄 알고 있으면서 그 속을 돌고 돌아 스스로 끌려 다니느냐?"
2권) 참된 생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서 가만히 생각했다.
'시작이 없는 過去로부터 本心은 잃어버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物質만을 分別하는 그림자 같은 일만을 부질없이 인정해 오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젖먹이가 홀연히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구나.'
그리하여 大衆들은 모두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서 몸과 마음의 眞實하고 거짓된 것과 虛妄하고 眞實한 것을 나타내 보이신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두 가지 性品에 대하여 분명하게 들려주기를 원하였다.
그때 바사닉 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난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을 때에 말가리와 비라지자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아주 끊겨 없어지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사오니, 어떻게 설명해야 生하고 滅함이 없는 마음의 境地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대중들 속에는 煩惱를 채 여의지 못한 이가 있으니 그들도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大王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몸이 現存하므로 지금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의 肉身이 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고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여깁니까?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깁니까?"
"世尊이시여, 저의 이 육신은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떻게 죽을 것을 아십니까?"
"世尊이시여, 이 무상하게 변하는 제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오나 지금 저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불에 타버린 재처럼 끊임없이 점점 늙어가고 있으므로 기필코 이 몸이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아나이다."
"그렇습니다. 大王이여, 그대는 지금 이미 늙었으나 얼굴 모습이 童子 때와 비교하여 어떠합니까?"
"世尊이시여, 제가 옛날 어렸을 적에는 피부와 살결이 윤택하였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들어 쇠모함에 임박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여 머리털은 희어지고 얼굴은 쭈글쭈글 해져서 오래 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大王이여, 그대의 얼굴은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하므로 제가 眞實로 깨닫지 못했습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제 나이 스무 살 때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열 살 때보다는 늙었고, 서른 살 때에는 또 스무 살 때보다 더 늙었으며, 지금 예순에 또 둘을 더하고 보니 쉰 살 때가 지금보다 훨씬 강장하였습니다.
世尊이시여, 제가 자주자주 변해 가는 것을 보고서 비록 이렇게 쇠락하는 세월을 십 년씩 한정하여 말하였습니다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면 어찌 그 변해 가는 것이 일기(一紀). 이기(二紀)뿐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입니다.
또 어찌 해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찰나마다 생각하는 사이조차에도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마침내 변화해 없어질 줄을 아는 것입니다."
"大王이여,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지 않는 변화를 보고 죽어 없어질 것을 알았노라고 했는데, 역시 죽어 없어질 때에 그대의 몸속에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십니까?"
"저는 진실로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性品을 보여 주겠습니다. 大王이여, 그대의 나이 몇 살 때에 항하 강물을 보았습니까?"
"제 나이 세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에 참배하러 갔을 때 그 강을 건넜었는데 그때 항하 강임을 알았습니다."
"大王이여, 그대의 말과 같아서 스무 살 때엔 열 살 때보다 늙었으며, 예순이 되도록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한 생각마다 변천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세 살 때에 보던 그 강물과 열세 살 때 보던 그 강물은 어떻게 다르더이까?"
"세 살 때와 완전히 같아서 강물은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으며, 지금 예순두 살이 되었사오나 역시 강물은 달라짐이 없습니다."
"그대는 지금 머리털이 희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애달파 하나니, 그 얼굴은 틀림없이 어렸을 적보다 쭈그러졌겠지만, 그대가 지금 항하 강물을 보는 것과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항하강물을 보던 것에는 어리고 늙음의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世尊이시여."
"大王이여, 그대의 얼굴은 비록 쭈그러졌으나 그대의 보는 精氣만은 본래의 性品 그대로이며 쭈그러진 것이 아닙니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는 것이겠지만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겠지만 저 변하지 않는 것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그대가 나고 죽음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저 말가리 등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고 합니까?"
大王이 그 말을 듣고는 진실로 이 몸이 죽은 뒤에 以生을 버리고 다른 生에 태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大衆들과 함께 아직까지 없었던 法門을 들었다고 기뻐하였다.
2권) 참된 성품은 없어지지 않는다.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것이 정말로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世尊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性品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行動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慈悲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우리의 찌든 때를 씻어주시옵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금빛의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켜 보이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나의 모타나 손(母陀羅手)을 보아라. 바로 되었느냐, 거꾸로 되었느냐?”
“세상의 衆生들은 이것을 거꾸로 라고 하겠지만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 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난아,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 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또 어떤 것을 바른 것이라고 하겠느냐?”
부처님께서 팔을 세우시고 도라면 같은 손으로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바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렇게 뒤바뀜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배(倍)나 더 거꾸로 보는구나.
그러니 알아야 한다. 너의 몸을 모든 부처님의 깨끗한 法身과 비교해서 밝혀 본다면, 如來의 몸은 ‘바르게 두루 앎[正遍知]'이라 이름하고 너희들의 몸은 '뒤바뀐 성품[性顚倒]’이라 부른다.
그러니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네 몸을 부처님의 몸과 비교하여 뒤바뀌었다고 한다면 어느 곳을 이름 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때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눈을 크게 뜨고 깜박거리지도 않은 채 부처님을 보았으나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 慈悲하신 마음으로 아난과 모든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어김없이 찾아드는 조수와 같은 음성[海潮音]으로 같은 회상에 모인 大衆들에게 널리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내가 늘 말하기를 ‘物質과 마음의 모든 因緣과 마음에 끌려 다니는 것과 반연(攀緣)되는 모든 현상들은 오직 마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느니라.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되며 정밀한 마음속에서 나타난 것이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본래부터 오묘하고 원만하고 밝은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오묘한 性品을 잃어버린 채 혼미해진 것만을 인정하는가?
밝은 性品(明)을 잘못 아는 어두움(無明) 때문에 虛空이 되고 그 虛空과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物質이 되었나니, 그 物質의 부질없는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을 몸이라 하고, 緣을 쌓아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 나가려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心性이라고 한다.
한 번 잘못 알아 마음이라 認定하고는 이 마음이 결코 내 몸속에 있는 줄로 착각하여 이 몸이나 밖에 있는 山과 江, 虛空과 大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백 천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들뜬 물거품만을 바다 전체인 양 잘못 認識하여 눈앞의 조수를 보고 바다 전체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곧 迷惑한 가운데서도 배나 더 迷惑한 사람이니 마치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가엾은 사람이라고 하였느니라.”
2권) 참된 성품은 되돌아가는 곳이 없다.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자옵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이 오묘한 음성을 듣자옵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자리를 깨달았으나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곧 반연하는 마음이며, 진실로 우러러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기에 감히 본래의 마음자리라고 認定하지 못하겠사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 가엾게 여기시어 원만한 法音을 베풀어 저의 疑惑의 뿌리를 뽑아서 最上의 道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아직까지도 반연(攀緣)으로 생긴 魔音으로 法을 듣고 있으니 그 法도 攀緣일 뿐이라서 法性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攀緣: 어떤 연분 또는 묶음에 매달리는 것
가령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경우, 그 사람은 손가락으로 인하여 달을 보아야 마땅할 것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다만 달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 잃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손가락만 잃을 뿐이겠는가? 밝고 어두운 것도 알지 못하리니, 왜냐하면 곧 손가락을 달의 밝은 性品이라고 생각하여 밝고 어두운 두 性品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 또한 그러하니라. 만약 나의 說法하는 音聲을 分別하는 것으로 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音聲을 分別하는 일을 여의고서도 따로 分別하는 性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나그네가 객사에 기숙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문득 떠나버리면 이는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客舍의 主人은 떠나지 않으므로 主人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터이니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分別하는 性品이 없겠느냐?
그러니 어찌 소리로 分別하는 마음뿐이겠는가? 내 얼굴을 分別하는 것도 모든 物質의 모양을 여의고서는 分別하는 性品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分別함이 전혀 없는 데에까지 이르러서는 物質도 아니고 '空'도 아니므로 구사리 등이 이 眞理에 어두워서 명제(冥諦)라고 주장하느니라.
모든 法의 반연(攀緣)을 여의었으므로 分別하는 性品이 없다면 곧 너의 心性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을 터이니 어찌 主人이라고 하겠느냐?"
2권) 참된 성품은 물들지 않는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저의 心性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묘하고 밝은 本來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습니까?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볼 적에 그 정기의 밝은 根源이 비록 오묘하고 정밀하게 밝은 마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제2의 달인지라 달그림자가 아닌 것과 같으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지금 너에게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리라.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트여서 둥근 해가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나고, 달도 없는 한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저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틈으로는 다시 통함을 보고 담장을 대해서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서는 반연(攀緣)함을 보고 완벽한 虛空 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고 맑게 개여 안개가 걷히면 또다시 맑음을 보게 되느니라.
아난아, 너는 이 여러 가지 변화하는 모양들을 살펴보아라. 내가 지금 각각 本來의 原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무엇을 '本來의 原因이 있는 곳'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 중에서 밝은 것은 둥근 해로 돌아가나니. 이는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은 것의 原因은 해에 속하게 된다.
이렇듯 밝음은 해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아가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며, 통함은 문으로 돌아가고, 반연(攀緣)은 分別로 돌아가며, 완벽한 虛空은 虛空으로 돌아가고, 흙비는 티끌로 돌아가며, 맑음은 개어있는 곳으로 돌아가나니, 이 世上 모든 것들이 이러한 종류에 지나지 않느니라.
그런데 너는 이 여덟 가지를 보는 精氣의 밝은 性品을 어디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왜냐하면 만약 밝은 데로 돌아간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들이야 여러 가지로 差別한다 하더라도 보는 主體는 差別이 없기 때문이니라.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은 자연 네가 아니겠지만 네게서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은 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러니 깨닫도록 하여라.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인데, 네가 스스로 혼미하여 根本을 잃고 輪回하면서 生死 속에서 항상 漂流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가련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비록 보는 性品이 돌아갈 데가 없음은 알았습니다만 어떻게 그것이 저의 참 性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지금 네가 一切 煩惱를 여윈 깨끗한 境地에는 이르니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받들어 저 初禪天을 보는 데 障碍가 없었으며, 아나율은 염부제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 열매를 보듯 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은 백 천의 世界를 보며,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티끌처럼 많은 깨끗한 國土를 통틀어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衆生들이 보는 것은 푼 촌에 지나지 않느니라.
아난아, 장차 내가 너와 함께 四天王이 거주하는 宮殿을 볼 것이니라. 그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에 다니는 것을 두루 볼 텐데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으나 모두가 앞에 나타난 物質을 分別하는 마음이 있으리니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나와 남을 分別해 보아라.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보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너의 몸이고 어느 것이 다른 物體인지를 가려주리라. 아난아, 네가 보는 主體의 根源을 끝까지 추구하여 보아라.
해와 달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物象이지 네가 아니며, 칠금산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아라. 비록 갖가지 빛이 있어도 그것은 역시 物象이지 네가 아니며, 그 밖의 것도 잘 觀察해 보아라.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것과 나무와 산, 냇물과 풀, 사람과 축생이 모두 物象이지 너는 아니니라.
아난아. 이 가깝고 먼 데 있는 모든 物質의 性質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이 모두가 너의 깨끗하게 보는 主體의 精氣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物象은 자연 差別이 있을지언정 보는 主體의 性品은 다름이 없다.
이 보는 精氣의 오묘하고 밝은 것이 眞實로 너의 보는 主體의 性品이니라. 만약 보는 主體 그 自體가 物象이라면 너는 또한 나의 보는 主體의 性品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함께 보는 것을 가지고 나의 보는 性品을 본다고 한다면, 내가 보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도 보지 못하느냐?"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본다면 자연 저것은 볼 수 없는 모양이 아니니라.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物質이 아닌데 어찌 네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또한 네가 지금 物質을 볼 적에 네가 이미 物質을 보았거든 物質도 또한 너를 볼 것이므로 實體와 그 性品이 어지럽게 섞여 너와 나, 그리고 모든 世間이 편안하게 正立하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약 네가 볼 때엔, 이것은 너의 보는 主體이지 내가 아니거늘 보는 主體의 性品이 두루 있는데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참다운 性品을 너에게서는 참되지 못한 性品인 양 스스로 의심해서 나에게 물어 眞實을 구하려고 하느냐?"
2권) 참된 성품은 무량하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만약 이 보는 主體의 性品이 반드시 제 자신이지 남이 아니라면 제가 부처님과 함께 四天王의 뛰어나고 장엄한 보배의 宮殿과 日月宮을 볼 때에는, 그 보는 主體가 두루 圓滿해서 시방 국토에 골고루 퍼졌다가 정사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만 보이고 도량에서는 오직 처마만 보입니다.
世尊이시여, 저 보는 主體가 이와 같아서 그 本體가 본래는 온 世界에 고루 퍼졌다가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오직 온 방 안에만 가득하게 되는데, 그럴 적에 저 보는 主體는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혀서 좁아지고 끊어진 것입니까? 지금 저는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를 위해 설명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온 世上의 크고 작은 것과 안이나 밖,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이 각각 앞에 나타나는 物質에 속하는 것이니, 보는 主體가 퍼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느니라.
비유하면 그것은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빈 空間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는데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인 모난 빈 空間이 모나게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모나게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만약 모나게 정해진 것이라면 따로 둥근 그릇 속에서도 그 빈 空間은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서도 모난 빈 空間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그 이치가 이와 같거늘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만 모난 그릇을 없앨지언정 빈 공간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또다시 빈 공간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물은 것처럼 방에 들어갔을 적에 보는 주체가 축소되어 작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네가 어떻게 보는 주체를 늘려서 해에 닿게 하였으며,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보는 주체가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왜 이은 흔적이 없느냐?
그 이치는 그런 게 아니니라.
모든 衆生이 시작이 없는 아득한 옛적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物質이라 생각해서 本來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物質에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物質을 지배할 수 있다면 부처님과 같이 곧 마음이 圓滿하게 밝아져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도 한 개의 털끝에 시방의 國土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2권) 참된 성품은 차별이 없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만약 이 보는 主體의 精氣가 반드시 나의 오묘한 性品이라면, 지금 이 오묘한 性品이 제 앞에 있어야 하리니, 보는 主體가 반드시 저의 참다운 마음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또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分別하는 實體가 있거니와 저 보는 主體는 分別함이 없어서 저의 몸과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지금 보게 한다면 보는 主體의 性品은 진정한 나이겠지만 몸은 내가 아닐 것이니, 부처님께서 앞에서 힐난하여 말씀하신 '物質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심을 베푸시어 깨닫지 못한 부분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네가 '보는 主體가 내 앞에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그 이치가 옳지 않느니라. 만약 참으로 네 앞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정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主體의 精氣가 있어야 할 場所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숲과 냇물과 강당을 두루 보고,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며 앞에는 항하를 대하였으니, 지금 네가 나의 獅子座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은 허공이니, 이렇게 풀과 나무, 그리고 실오라기와 터럭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것은 비록 다르지만 다만 形象이 있는 것들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다.
만일 그 보이는 對象이 반드시 現在 네 앞에 있다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라. 어느 것이 보는 主體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虛空이 보는 主體라면 이미 보는 主體가 되어 버렸으니 어느 것이 虛空이며, 만약 物體가 보는 主體라면 이미 보는 主體가 되어 버렸으니 어느 것이 物體이겠느냐?
너는 細密하게 온갖 物象을 분석하여 정밀하고 밝으며, 맑고 오묘하게 보는 主體의 根源을 指摘하고 가려내어 나에게 보여주되 저 物質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항하 강까지,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들은 모두가 物質이라서 '보는 主體'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煩惱를 여의지 못한,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聲聞이거니와 나아가 菩薩이라 하더라도 온갖 物象 앞에서 정밀하게 보는 主體를 가려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一切의 物象에서 벗어나야만 別途로 自性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그러하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것처럼 보는 主體를 가려낼 수 없고 一切의 物象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정밀하게 보는 主體가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物象 속에는 보는 主體가 없겠구나.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너는 如來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저 숲과 동산, 나아가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物質을 보아라.
갖가지 物象이 각기 다르지만 반드시 네가 지적한 보는 主體의 精氣가 없을진댄, 너는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物象 중에 어느 것이 보는 主體가 아니더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는 主體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나무가 보는 主體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主體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만약 虛空까지도 보는 主體가 아니라면 어떻게 虛空을 보며, 만약 虛空이 보는 主體라면 어떻게 虛空이라고 하겠습니까?
또 제가 생각해 보니 이 온갖 物象 중에서 정밀하고 자세하게 밝혀 보건대 보는 主體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러하니라."
그때 大衆 가운데에서 阿羅漢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한 채 멍하니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직하고 있던 물건을 잃은 듯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들이 어리둥절해 함을 아시고는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며 말씀하셨다.
"모든 선남자들아, 이는 가장 높으신 法王의 眞實한 말씀이며 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라.
저 말가리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論理와는 결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생각하고 애모하여 욕되게 하지 말라."
그때 법 왕자이신 문수사리보살이 여러 四部大衆을 가엾게 여기어 大衆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밝혀 주신 두 가지의 것, 즉 정밀하게 보는 것과 物質이나 虛空에 대하여 어느 것이 보는 主體이고 보는 主體가 아닌지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 있는 對象인 物質과 虛空의 形象이 보는 主體라면 마땅히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主體가 아니라면 마땅히 보지 못해야 할 터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옛날보다 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 주시옵소서. 이 모든 物象과 보는 주체의 정기가 본래 무엇이기에 그 중간에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의 如來와 큰 菩薩들이 그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에서 보는 主體와 보이는 對象 物質,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虛空의 꽃과 같아서 本來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主體와 그 對象 物質은 本來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實體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있겠느냐?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진정한 문수인데 또 달리 문수라고 할 다른 문수가 있느냐, 없느냐?"
文殊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또 다른 文殊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런 일이 성립된다면 이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바로 저 文殊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할 두 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묘하고 밝게 보는 性品과 虛空과 物質도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으며 가장 높은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 마음 이거늘, 이것을 허망하게 虛空과 物質과 듣고 보는 主體라고 여기는 것이 마치 제2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네가 보는 主體와 그 對象. 物質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혀냄을 허망한 分別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는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性品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니라."
2권) 참된 성품은 헤아려 알 수없는 것.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진실로 法王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각연(覺緣)이 시방세계에 가득하고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性品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닐진대 전에 梵智인 사비라가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여러 外道種子가 말한 '참다운 내가 시방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世尊께서도 일찍이 능가 산에서 大慧菩薩 등을 위하여 이 이치에 대하여 말씀하실 적에 '저 外道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는데 제가 말한 因緣은 저들이 말하는 境界와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觀察해 보건대 깨닫는 性品은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허망하게 뒤바뀐 모든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因緣이 아닌 것 같아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사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만 우리들이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性品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이렇게 方便을 열어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自然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반드시 自然이라고 한다면 그 自然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自然의 本體가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主體 가운데 무엇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밝음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연[自]'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어두운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虛空을 자연의 本體라 한다면 마땅히 막힌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을 자연이라 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性品이 아주 없어져야 할 것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主體의 性品이 자연이 아니라면, 저는 지금 이것은 因緣으로 생긴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마음에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못하여 부처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因緣의 性品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因緣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지금 보이는 대상으로 因하여 보는 主體의 性品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主體는 밝음으로 因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因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因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으로 因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因하여 보는 것이라면 마땅히 어두운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因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허공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으니라.
아난아, 이 보는 主體가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힌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요,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밝음과 어두움으로 인한 것도 이와 같으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은 것은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고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고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一切의 모양에서 벗어나 一切의 法에 나아가느니라.
네가 지금 그 가운데서 어떤 마음을 가지기에 모든 세간에서 부질없는 다른 논리[戱論]과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으로 虛空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虛空이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2권) 참된 성품은 볼 수없는 것.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世尊께서 어찌하여 늘 比丘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는 성품이 네 가지 緣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바 虛空을 原因으로 삼고 밝음을 原因으로 삼으며, 마음을 原因으로 삼고 눈을 原因으로 삼는다.'고 하셨으며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것은 내가 世間에 있는 因緣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말한 것은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또 네게 묻겠는데, 모든 世上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면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지 못한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운 것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운 것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지 않을 뿐이지 어떻게 보는 것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은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고 해야겠구나.
그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主體의 性品은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어진 것이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은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은 것은 아니며, 어두운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운 것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이 아니니라.
네 가지 理致가 성립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主體를 볼 때에 보는 것은 보는 主體가 아니니라. 보는 主體의 性品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主體를 벗어났으니 보는 主體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 라고 말하겠는가?
너희 聲聞들은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깨끗한 實相을 통달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고민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 라."
2권) 허망한 생각에서 참된 생각을 보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오직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합하여 조화된 현상과 합하여 조화되지 못한 것을 설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는 主體를 보는 것은 보는 主體가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慈悲로써 智慧의 눈을 베푸시어 저희들의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다는 것을 열어 보여 주소서."
아난이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聖人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였다.
그때 世尊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큰 다라니와 모든 삼마제의 오묘한 修行 방법을 다시 설명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記憶力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에만 힘썼고, 사마타를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어 보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없으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分別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煩惱를 끊지 못한 여러 사람들에게도 보리의 課業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衆生이 世間을 輪回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뀐 分別하는 妄見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業報에 따라 흘러 轉傳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두 가지 妄見이라 하는가? 첫째는 衆生의 서로 다른 業因[別業]으로 인하여 虛妄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衆生의 동분(같은 분수)으로 인하여 虛妄하게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서로 다른 業因에 의하여 虛妄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병이 생겨 눈이 붉어지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 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나타나 보이느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사람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의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현상을 보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主體의 빛이라면 보는 主體는 이미 빛을 이루었으니 저 눈병 걸린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 따로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主體를 떠나서 또 따로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 걸린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主體가 병으로 인하여 둥근 그림자가 생긴 것이니라. 그림자와 보는 主體가 모두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 보는 것은 병들지 아니했느니라.
그러니 이것은 '등불의 탓이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라고 할 것이 못 되며, 또 그 가운데에서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주체의 탓이 아니다'라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2의 달'은 本體도 아니요,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제2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智慧가 있는 이는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라고 한다거나, '보는 주체이니, 보는 주체가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느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지금 무엇을 이름 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라고 분별하는 것이겠느냐?
또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그 중간에 삼천 개의 섬이 있으니 그 한복판에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 보면 큰 나라가 이천삼백 개가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에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두 나라에서 삼십, 사십, 오십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느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惡한 因緣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 사는 衆生들은 상서롭지 못한 모든 世界를 보는데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혹은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 무리. 해의 귀걸이. 혜성. 패 성. 흐르는 별똥. 부이.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 사람들만 볼 뿐, 저쪽 나라 중생들은 본래 보지도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衆生들이 따로 지은 業障의 虛妄하게 보는 것 때문에 등불 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對象의 物體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이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主體의 피로 때문에 생긴 것이지 物質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것도 마침내 보는 主體의 허물은 없느니라. 예컨대 네가 지금 눈으로 山과 江, 그리고 國土와 여러 衆生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主體가 병듦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主體와 보이는 對象은 마치 눈앞의 境界로 나타나지만 本來는 나의 깨닫는 것이 對象인 物體를 보다가 생긴 병이다. 그러니 깨닫는 것과 보는 主體가 병든 것이지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對象인 物體를 깨닫는 것은 병들지 않았느니라.
分別할 對象을 分別하는 것은 눈병이고, 分別하는 本體는 눈병 속에서 생긴 것이 아니니라. 이는 사실 보는 主體를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간과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주체가 눈병을 앓고 있는 것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主體의 정밀하고 참된 性品은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主體라고 이름 하지 않느니라.
아난아, 저 衆生의 같은 분수로서 虛妄하게 보는 것과 따로 지은 業障으로써 虛妄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를 들어 말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고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는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아서, 상서롭지 못하게 보는 것은 같은 業障 가운데 障惡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것의 虛妄으로 因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 삼천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煩惱가 있는 모든 나라들과 모든 衆生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알고 分別하는 煩惱가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虛妄한 因緣과 서로 어울려 造化를 이루어서 虛妄하게 나고 죽느니라.
만약 化合하는 것과 化合하지 않는 모든 因緣을 멀리 여의면 곧 나고 죽는 여러 가지 原因을 없앨 수 있어서 나고 죽지 아니하는 보리의 性品을 圓滿하게 이루어 깨끗한 본래 마음의 本覺에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性品은 因緣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性品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根源은 서로 어울려 造化되어 생긴 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造化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境界로써 너에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모든 世間의 虛妄한 생각으로, 化合하는 因緣의 性品을 스스로 疑惑하여 보리를 證得하는 마음도 化合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너의 지금 오묘하고 깨끗하게 보는 主體의 精氣는 밝은 것과 化合된 것이냐. 어두운 것과 화합된 것이냐. 통한 것과 화합된 것이냐. 막힌 것과 화합된 것이냐? 만약 밝은 것과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主體가 섞여 있느냐?
보이는 對象과 物質은 分別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主體가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主體라면 어떻게 보는 主體를 본다고 하겠느냐?
반드시 보는 主體가 圓滿하다면 어느 곳에서 밝은 것과 化合할 것이며, 만약 밝은 것이 圓滿하다면 보는 主體가 化合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보는 主體는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였다면, 저 性品이 밝다는 명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性品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化合을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하는 것과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으니라.
또 아난아, 너의 오묘하고 깨끗한 보는 主體의 精氣는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냐. 어두운 것과 합해진 것이냐. 통한 것과 합해진 것이냐. 막힌 것과 합해진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해진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밝은 모양이 이미 없어졌을 것이니, 저 보는 주체가 어두움과는 합하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根本은 相對되는 모든 物質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이 더불어 化合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은 化合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한 보는 主體의 精氣가 化合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化合한 것이라면 보는 主體와 밝은 것이 반드시 境界線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주체이냐? 보는 주체와 밝은 것 사이에 어떤 것이 경계가 되느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主體가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또 오묘한 보는 주체의 정기가 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주체와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접촉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2권) 오음. 육입. 십이처. 십팔계가 여래장이다.
아난아, 너는 아직도 모든 허망한 물질인 허깨비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장소를 따라 생기며 장소를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깨비같이 허망한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 육입. 십이처. 십팔계도 因緣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며, 因緣이 흩어져서 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하는 것, 그 자체가 본래 如來藏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두루 원만하고 오묘하고 참답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 한 가운데에서는 가고 옴과 미혹되고 깨달음과 나고 죽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느니라.
2권) 오음이 본래 진여
아난아, 어찌하여 五陰이 본래 如來藏인 오묘한 眞如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깨끗한 눈으로 맑게 개 인 하늘을 볼 적엔 오직 맑은 하늘만 보일 뿐, 멀리 아무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虛空에서 또 다른 헛꽃이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아무 모양도 없는듯하니 色陰도 그러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虛空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虛空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虛空에서 생겼으니 다시 虛空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그것은 곧 虛空이 아니며, 虛空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리니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쫒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이 헛꽃의 性品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보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인데, 만약 보는 主體가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虛空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는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主體가 없다면 나갈 때에 이미 虛空을 가렸으므로 돌아올 적에도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꽃을 볼 적에 눈에는 마땅히 가리는 것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虛空을 볼 적에만 깨끗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色陰은 虛妄한 것이어서 본래 因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性品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 있음을 잊은듯하여 性品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두 손바닥을 虛空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虛妄하게 껄끄럽거나 미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 가지 현상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受陰도 역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아난아, 이 여러 가지 허깨비같이 虛妄한 接觸은 虛空에서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과 접촉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않느냐? 마땅히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은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해야만 비로소 나타나는 그런 현상은 없어야만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마땅히 들어갈 때 어떤 느낌이 있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인데 어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接觸이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受陰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因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性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열매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오는 듯하니, 상음(想陰)도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라.
아난아, 이러한 매실 이야기는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입을 쫒아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쫒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통해서만 듣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침은 어째서 귓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높은 언덕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매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想陰은 虛妄한 것이어서 본래 因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性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급히 흐르는 물결이 서로 연속되어 앞과 뒤가 차례를 뛰어넘지 않는 것과 같으니 行陰도 역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性品이 虛空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性品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흐름이 생겨서 世界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겨야 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이 급히 흐르는 물의 性品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 물)와 소유(所有, 급히 흐름)의 모양이 지금 당연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性品이라면 맑을 때에는 마땅히 물의 本體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行陰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因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性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 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득히 채워 가지고 천 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식음(識陰)도 역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虛空은 저쪽에서 온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간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온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 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識陰은 虛妄한 것이어서 본래 因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性品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