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본 금강경

제1장 法會因有分

동산/혜산방 2011. 8. 13. 11:13

本文 (1法會因有分)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16)

한때 세존은 천이백오십 인의 큰 비구 승단과 수많은 보살 마하살들17)과 함께 슈라와스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다다가 바친 승원에서 머무셨다.

 

16) 구마라집의 한역본에 당나라 소명태자가 단락을 나눈 것으로 하면 이것은 [1장 법회인유 분]이다. 앞으로도 해당되는 단락 앞에는 그 분류에 입각하여 주 처리를 할 것이다.

 

17) 금강경의 성립 시기에 관한 견해는 학자들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다. 본 역자는 금강경의 성립시기를 반야부 경전 중에서 초기에 두고자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들고자 한다.

 

(1) 구라라집의 역본에 보면 1250인의 비구만 나타나고 보살마하살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초기 금강경의 모습이 아함경의 분위기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범본금강경은 그 성립이 금강경 내에서는 비교적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초기의 것이 구마라집 금강경으로 보이는데 그곳에서는 분명 보살마하살이 회중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2) 금강경은 그 내부에 (sunyata)의 언급이 일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반야바라밀다가 대표적인 교의 주제로 강조되고 있을 분이다. 그것은 반야부 경전의 초기형태를 유달리 드러내어 준다.

 

漢譯經典에서 시작은 如是我聞으로시작되는데 그 내용은

如是 我聞 一時 佛主 舍爲 國 如大比丘僧1,250

성취 성취 성취 성취 성취 성취

 

라 하여 六成就 라고 하는데 이 에서 一時에 있어서 한때 또는 어느 때 라고 표현한 것이 어떻게 時成就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그보다 더 문제가 있는 것은 如是라는 말을 어떻게 信成就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와 같이라는 말이 믿음을 成就하였다고 하기에는 너무 허황한 것일 것이다.

 

그보다는 산스크리트 原文에는 항상 앞에 귀경문(모든 것을 아는 부처님께 절합니다)이 있음으로 이것을 信成就라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經典을 시작함에 있어서 귀경문은 반드시 있어야하는 분분임을 알 수 있으며 귀경문이 있어야 제대로 갖추어진 經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如是我聞 하면 내가 들었다는 뜻으로서 나라는 것에 힘이 실려 있으므로 들은 나란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므로 해서 중요하지도 않은 들은 사람이 누구냐에 주목하는 弊端(폐단)이 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 原文에는 evan maya stutam 하면서 evan: 이와 같이 라는 뜻. maya: 나에 의해 stutam: 들리었다. 라고 하여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었다.” 라는 수동태의 문장으로 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들었다.”는 무게중심이 나에게 있음에 비하여 내게 들리었다.” 들린 것에 무게중심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 經典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들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들리어졌다는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는 암시가 되는 것이다.

 

또 사위 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설하셨다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장문의 법문을 설한 것은 주로 安居 時한 것이며 기수급고독원 이라는 장소를 나타낸 것으로 보아 55-80세 까지의 부처님 後半部에 주로 安居한 장소임으로 이때에 하신 것으로 보인다.

1,250명의 比丘僧團이 모인 때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가장 많은 때가 500명 정도이므로 1,250명의 阿羅漢이 모였다면 이는 55-80세 중에서도 後半으로 부처님의 가장 全盛 期60前後정도로 추정된다.

아나타핀다다 가 바친 僧園이라는 말에서 다른 經典에는 아나타핀다카라고 되어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anatha-pinda-da에서 anatha: 비천한자. 가난한자. 배고픈 자. Pinda: 주먹밥 da: 주다. 베풀다. ka: 준비한자. 행위자.

anatha-pinda-da: 가난한자에게 주먹밥을 주다

anatha-pinda-ka: 가난한자에게 주먹밥을 준비한자. 가되므로 최초의 이름이 와전되어 임의대로 해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아나타핀다다 가 부처님을 처음 만났을 때 2가지를 질문했다고 한다.

 

첫째 나의 어렸을 때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 수달타야(이는 이름을 알아서가 아니라 대부호인 장자앞에서도 그 장자를 한낱 衆生으로 보았다는 것일 수 있다.)

둘째 잠을 잘 주무십니까?

: 마음을 조절할 수 있을 때 필요하면 언제라도 잠을 잔다. * 阿羅漢色界4의 잠을 언제라도 잔다.(衆生苦痛을 생각해서 勞心焦思하면 如來가 아니라는 뜻)

 

2개의 질문을 하고 질문의 답을 들은 아나타핀다다 가 즉시 부처님의 信徒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이 장자는 부처님에게 보시를 하고 싶은데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물었을 때 부처님은 많은 僧團人員安居 時에 거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면 크나큰 功德을 지을 것이라고 하자 이 제타 숲에 僧園을 지어 바치게 된다.

 

산스크리트 의 머물음에는 2가지가 있다.

stha-sthati viharati 가 있으며 stha는 영원히 머무는 것을 의미하며 viharati는 잠시 머무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이 僧園에 머무셨다. 라고 할 때의 머물다 는 반드시 viharati라고 표기하며 安居 때 잠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viharati般若心經에서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머무나니할 때에 사용된 잠시 머문다.”라는 뜻의 viharati인 것이다.

 

本文

그때 세존은 아침 일찍 하의를 입고 발우와 법의를 들고 탁발하러 큰 도시 슈라와스티로 들어가셨다. 세존은 큰 도시 슈라와스티에서 탁발하러 다닌 뒤 식사를 마치셨다. 식사한 뒤에 탁발을 물리치고는 발우와 법의를 정돈하고 두발을 씻었으며 준비된 자리에 다리를 맺고 앉아 몸을 곧게 하고 정념을 전면에다 확립하셨다.(18)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이 계신 곳으로 왔다. 그리고는 세존의 두발에 자신의 머리로 써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예를 올린 후 한쪽에 앉았다.

 

18) 대개의 대승경전은 대승의 법문이 설해지기 전 부처님이 어떤 특별한 이름의 삼매에 드는 것으로 장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면에 정념을 떠올린다는 표현으로 그친다. 이 표현은 아함경의 표현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여기서 아침 일찍이라는 시간대에 대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다. 原語에는 Purvahna-kala-samaye 라고 하는데 여기서 samayesamaya가 어미변형 된 단어로서 一般的으로 말하는 時間 또는 때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kala時間을 뜻하는 단어는 단어인데 딱 들어맞는 時間 때맞추어 왔다.” 할 때의 時間 즉 그 때를 말할 때 kala라는 말을 쓴다. 그래서 즉시에 또는 딱 맞을 때에 라고 할 때 쓰인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더도 덜도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딱 맞게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용어의 본뜻은 부처님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時間을 어기지 않고 日常的으로 항상 일정한 시간에 일과가 시작된다는 것을 뜻한다.

通常的으로 印度인들은 時間을 표시할 때 밤時間과 낮時間 그리고 각각 3개의 時間帶 6개의 時間으로 나눈다.

 

시간(samaya)

(diva) - purva-ahna(이른 낮)

- madhya-ahna(가운데 낮)

- saya- ahana(늦은 낮) <불교에서는 purva-ahnasaya-ahna만 쓴다.>

 

(ratri)- purima-yama : 밤의 앞 시간 대.

- madhyama-yama: 밤의 가운데 시간 대.

- pascima-yama : 밤의 뒤 시간대.

 

부처님의 日課

南方 上座部에서 오늘날 一般的으로 정돈된 부처님의 日課는 다음과 같다.

 

1) 오전(아침6~ 12)課業 : 탁발 행. 시주로부터 음식을 받음. 시주 자에게 보답의 說法을 베풀음.

2) 식사 이후(12~ 저녁6)의 과업 : 승단에 대한 교계. 각각의 比丘를 위해 적합한 명상을 실행토록 하고 짧은 休息(낮잠). 해탈시킬만한 衆生을 찾기 위해 世間. 오후에는 에게 說法.

3) 밤의 첫 번째 시간대(저녁6~ 10) : 목욕. 짧은 휴식(물기를 말리는 정도). 에 설법함.

4) 밤의 가운데 시간대(10~ 새벽2) : 天神 및 브라흐만 들에게 說法.(문제를 푸는 선정)

5) 밤의 마지막 시간대(새벽2 ~ 아침6) :

새벽2시부터 새벽3시까지는 경행.

새벽3시부터 새벽4시까지는 正智 상태에서 잠을 잔다.

새벽4시부터 새벽5시까지는 阿羅漢의 경지에 들어 涅槃의 즐거움을 누린다.(즐기는 )

새벽 5시부터 아침6시까지는 大慈悲定에 들어 佛眼으로 世間을 관찰함(하루의 계획을 짠다고 볼 수 있음)

 

따라서 아침 일찍 이라는 말은 우리의 시간대로 보아서는 안 되며 통상적으로 오전 8시부터10시사이로 보면 될 것이다.

 

經典에서 說法時間을 추정해 보면 불교에서는 낮 시간을 두 개의 시간대로 나누므로 늦은 낮 즉 오늘날의 시간대로 보면 午後가 되며 늦은 낮 시간대에 說法했다함은 大乘이라는 宗敎的 背景에서 쓰인 것으로 의 관계없이 들을 수 있는 時間說法한 것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般若部 經典阿羅漢에 든 에게 설명하는 내용인데 大乘이라는 宗敎的 背景 때문에 僧團에게만 說法하는 첫 번째 밤의 시간대에 說法하였다고 하지 않고 낮의 늦은 시간대로 규정하고 있다.

 

하의를 입고라는 말에서 下衣는 반드시 입는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nivasya라는 단어를 써서 반드시 입는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벗고 다니는 度社에서 는 밖에 외출할 때는 반드시 위의를 갖추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발우와 法衣를 들고 라는 말은 발우는 드는 것이고 法衣는 두르고 팔에 걸칠 수 있으므로 [adays;“들고”]라는 표현을 쓴다.

탁발하러 다닌 뒤 식사를 마치셨다.” 라는 말은 日常的行事이므로 줄여서 한 말로서 탁발을 한 후 僧園에 돌아와서 식당에서 탁발한 음식으로 식사를 마치셨다는 뜻을 간략하게 줄여서 표현한 글이다.

 

식사한 뒤에 탁발을 물리치고는 발우와 법의를 정돈하고 두발을 씻었으며 준비된 자리에 다리를 맺고 앉아 몸을 곧게 하고 정념을 전면에다 확립하셨다.”

 

여기서 준비된 자리라 함은 법회가 전제된 준비된 부처님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正念을 전면에다 확립하셨다라는 구절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pratimukhim smrtim upasthapya로서 prati~~에 대하여 라는 뜻이며 mukhim은 얼굴의 뜻 그리고 smrtim이라는 단어이고 upasthapya確立하다. 라고 번역된 말이다.

 

따라서 얼굴에 대하여 라는 것은 얼굴 앞에 대면해서 라는 뜻으로서 어떤 생각하는 것을 얼굴 앞에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확립하다. 라는 것은 은 떠올리다. 이미지화 하다 의뜻이다.

 

그러면 이 이란 무엇인가? 이라는 말의 명확한 뜻이 참으로 잡기 어려운 것이다.

이란 가까이에 세우는 것이고 딱 붙여 세우는 것은 三昧이다. 그러므로 smrtim upasthapyaup(가까이에) asthapya(세우다. 서다)의 뜻이므로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서 얼굴 前面에다 놓고 보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에서와 같은 뜻인데 는 장소가 아니며 三念라고 할 때의 도 머묾이 아니라 을 가까이에 세우다의 뜻으로 보아야한다.

身受心法도 그냥 身念處가 아니라 ·에서 대한 을 가까이 세움의 뜻이다. 이하 受 心 法도 같다.

이라는 말은 名詞가 아니라 他動詞에서 온 말이다. 他動詞目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말의 가장 근사치는 되새김(反芻)”라는 말이 가장 근사치에 해당하는 말이 될 것이다.

 

宗敎되새기는 반복하는 것이다. 이라는 말은 부처님 名號반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宗敎는 반복하는 것이다.

relig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relegere에서 온 말로서 relegere는 라틴어 nerelegere 의 반대되는 말로서 nereglere는 무시하다. 소홀히 하다. 잊어버리다. 의 뜻 이므로 relegere의 뜻은 주의하다. 되풀이하다. 다시 읽다. 새겨 읽다 의뜻이 된다.

그러므로 되새김이라는 우리의 말이 가장 종교적인 의 뜻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엇을 되새기실까?

정토부 경전에는 佛佛相念이라고 했다. 부처님끼리만 되새기는 것을 알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法華經三念에서는 부처님은 무엇을 되새겼을 까?

아마도 tathata()를 되새겼을 가능성이 많다. 에는 다시 窮極的眞理되새김으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金剛經에서 부처님은 법을 설하시기 전에 어떤 즉 어떤 되새김을 하셨을 까?

되새긴다는 것은 이미 아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지 전혀 모르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되새기는 것은 三昧이다.

 

그러므로 金剛經에서 부처님이 되새긴 것은 반야바라밀다를 즉 되새김하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되돌려 생각한 다음에 法會에서 어떠한 質問에 대하여도 반야바라밀다를 하실 準備가 된 상태로서 반야바라밀다를 으로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의 이름을 물었을 때 반야바라밀다 法門이라고 해라. 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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