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근본사상은 중도이다/ 성철스님 법문
《불교의 근본 사상은 중도(中道)사상 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하신 뒤에 혼자만 좋은 법을 알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 법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좋은 법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서 그들도 함께 깨닫고 자신과 같이 자유자재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수행하던 중에 고행이 결코 도(道)가 아님을 알고 방향을 전환하였을 때에 부처님을 떠나버린 다섯 비구를 맨 처음에 찾아갔습니다.
처음에 그들 다섯 비구는, 부처님이 타락하였다고 생각하여, 자기들을 찾아오고 있는 부처님에게 인사도 하지 말자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처님이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자, 스스로 한 약속을 잊어버리고, 대법(大法)을 성취한 만덕종자이신 부처님께 오체투지로, 곧 온 몸을 땅바닥에 대고 머리가 깨어지도록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자리에 모셔놓고 “어찌하여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오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을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법을 위해서 찾아왔다”고 말씀하시면서,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것을 맨 먼저 그들에게 소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다시 무엇을 어떻게 성취하셨는지를 물으니, 부처님께서는 “중도(中道)를 정등각(正等覺)하였다”고 그 제일성(第一聲)을 토하셨습니다.
中道, 이것이 불교의 근본 사상입니다. 중도라는 것은 모순이 융합되는 것을 말합니다. 모순이 융합된 세계를 중도의 세계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중도를 정등각 하였다”고 선언하신 것은 바로 그 모든 양변을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곧 나고 죽는 것도 버리고, 있고 없는 것도 버리고, 약하고 착한 것도 버리고, 옳고 그른 것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모두 버리면 시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절대의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듯 상대의 모순을 모두 버리고 절대의 세계를 성취하는 것이 바로 해탈이며 대 자유이며 성불인 것입니다.
모든 대립 가운데에서도, 철학적으로 보면, 유(有) 무(無)가 가장 큰 대립입니다. 중도는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닙니다. 이것을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하니, 곧 있음과 없음을 모두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유와 무가 살아납니다.(亦有亦無).
그 뜻을 새겨 보면 이러합니다. 곧 3차원의 상대적인 유와 무는 완전히 없어지고 4차원에 가서 서로 통하는 유무가 새로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무가 서로 合해집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무가 합하는 까닭에 중도라 이름 한다(有無合故名爲中道).”
불생불멸의 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서로서로 생멸이 없고 모든 것이 서로서로 융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무애자재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라(有卽是無, 無卽是有)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내용을 그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니 그들은 짧은 시일 안에 곧 깨달음을 성취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초전법륜입니다. 이렇듯이 초전법륜의 근본 골자는 중도에 있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완전히 버리고, 옳음과 그름을 버리고, 있음과 없음을 버린다고 해서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구름이 완전히 걷히면 밝은 해가 나오는 것과 같아서, 거기에는 광명이 있을 뿐입니다. 유와 무를 완전히 버리면 그와 동시에 유와 무가 서로 통하는 세계, 곧, 융통한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을 감은 세계에서는 있고 없음이 분명히 상대가 되어 존재하지만, 눈을 뜨고 보면 유와 무, 곧 있고 없음이 완전히 없어지는 동시에 유와 무가 완전히 융합해서 통하게 됩니다. 이렇듯 중도의 세계란 유무의 상대를 버리는 동시에 그 상대가 융합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양변을 버리는 동시에 양변을 융합하는 이 중도의 세계가 바로 모든 불교의 근본 사상이며, 그리고 대승불교 사상도 여기에 입각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에서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실 때는 간단히 중도라 하여 양변을 버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뒤에 가서 부연하여 중도를 다양하게 설하셨습니다. 중도를 설명할 때에는 반드시 연기가 따라오고, 법계가 따라오고, 진여가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진여, 법계, 중도, 연기 이것을 버리고 불교를 찾으려 함은 마치 얼음 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도서 : 영원한 자유(성철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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